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영 Dec 03. 2023

꿈을 쓰다.

그녀를 남기고 싶다. 세상에.

내 꿈은 소설가였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소설을 처음 접했다. 그때 처음 읽었던 책은 ‘이광수의 흙'이었다. 소설에 빠져든 건 허숭이라는 주인공이 주는 무해한 영향력 때문이었다. 어릴 때는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주인공의 삶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막연하게 그의 삶을 동경했었던 것 같았다. 그저 좋은 어른 같아서….


12살의 나이에는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애정 소설이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었을 때 다시 본 [흙]이라는 소설은 숭고한 인간의 인품이 담겨 있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어른이 되면서 이익 없이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그의 모습에서 참된 인간성을 엿보기도 했다. 나는 그럴 수 있나? 현재를 살아가는 누구라도 숭고한 일이다.
그렇게 소설을 접했고 그 이후로 나는 한동안 이광수에 빠져있었다. 그의 책을 거의 읽었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까지 나는 아마 이광수 작가에게 빠져 지냈던 것 같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나는 박경리 작가를 만났다. 처음 시작은 김약국의 딸들이었다. 그리고 내 삶의 한 부분을 뒤흔들어 놓은 ‘토지'를 만났다. 아마 그때 나는 미쳐있었던 거 같다. 서희의 삶에 길상이의 삶에 봉순이의 삶에 동화되어 현실 속의 나를 잊고 지냈다. 토지를 읽으면 눈물 흘렸던 날들이 쌓여 갈수록 나는 꿈은 더 짙어졌다.  
그리고
혼불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모두 나를 키운 책들이다. 삶에 대한 고찰을 하게 했던 책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내게 가르침을 준 책들이다. 나는 그 책들을 읽으며 세상을 배웠고 삶의 의미를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깊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재능이 많은 사람은 아니다. 그저 학생 때 학교에서 글 좀 쓴다는 축에 들었고, 교내에서 몇 번 상을 받은 게 전부이다. 전공을 선택할 때에 글로 먹고살기 어렵다는 거에 다른 전공을 택했다. 밥을 먹고산다는 것은 그 당시 나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IMF로 우리 집은 휘청했었고, 형제는 많았고, 다들 학생이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생활전선으로 뛰어들어 내 앞길은 내가 개척해야 했기에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
다만, 직장을 다니면서 늘 허전함을 안고 살았다. 채우지 못하는 가슴을 늘 안고 살았고 먹어도 먹어도 배고픔은 늘 나를 따라다녔다. 나는 그랬다. 완전해지지 못했다.

그저 꿈. 이룰 수 없는 현실이라고 생각했다. 소설가가 되는 건 내가 잡을 수 없는 구름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꿈을 꿈으로만 두고 살던 어느 날 나는 누군가의 마지막에 시작을 했었다. ’ 내 삶은 앞으로 80까지는 계속될 거야 ‘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내게 몇 번의 죽음은 가르쳐 주었다.
삶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언제 끝날지 모르는 거,
시작은 정해져 있었지만 끝은 정해져 있지 않다고 그러니 현재의 삶에 충실하라고….
그렇게 나는 꿈을 현실을 만들기 위해 도전을 시작했다. 알고 있다. 얼마 없던 재능은 세월의 흐름 따라 희미해졌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떨어지는 낙엽에, 돌 틈에 홀로 핀 야생화에 감동받던 나는 없어졌다는 거… 나는 알고 있다. 계절 따라 물들기보다 회색빛으로 1년 365일을 산다는 것도 알고 있다.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지 않고 시간이 가면 가는 대로 흘려보내는 삶을 살았다. 그런 내가 꿈을 쓰기 시작하고 물들고 있다. 노란 은행잎들이 가을을 성숙하게 하듯, 꿈은 내게 생기를 주고 있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은행이 가을을 물들이기 시작하면 이쁘다는 생각보다는 ‘윽 냄새‘그리고 떨어진 은행을 밟지 않기 위해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계절의 변화는 몰랐다. 봄이 여름이 가는지 오는지 중요하지도 않았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랬던 내가 오늘 운동을 다녀오면서 옷을 벗기 시작한 나무들을 보면서 앙상한 가지가 애처로워 울컥 눈물을 삼켰다. 저들은 또 이 계절을 버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날들을 인내해야 할까? 애처로워 꼭 안아 주고 싶었다. 나는 그렇게 변화해가고 있었다. 꿈을 다시 만나면서.


나의 꿈은 소설가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깊은 밤 홀로 삶에 대한 고민을 누군가에게 하게 하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다. 따뜻한 이야기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런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성숙한 인간이 되었을 때 인간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었을 때 쓰고 싶은 이야기도 있다. 21살 어느 겨울에 내 곁을 홀연히 떠난 외할머니의 이야기이다. 그녀의 삶은 늘 흙과 함께였다. 그녀를 떠올릴 때면 손톱에 낀 흙이 먼저 생각난다. 거칠었던 손만큼 팍팍했던 그녀의 삶을 나는 알고 있다. 어쩌면 7명의 자식들보다 내가 더 그녀를 잘 안다고 나는 감히 자신할 수 있다.
함께한 시간은 짧았지만 나는 그녀의 삶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있었다. 그녀의 밤을, 그녀의 아침을, 그녀의 아궁이를, 그녀가 남몰래 흘린 눈물을 나는 알고 있다. 자식들에게 차마 보이지 못한 눈물을 나는 몰래 들었다. 늦은 밤이었고 겨울이었다.


나는 그녀의 삶을 남기고 싶다. 누구도 기억해 주지 않는 시골 노파의 삶이었던 그녀는 내가 끝끝내 버리지 못하는 기억이기에. ( 어릴 때 일은 거의 잊었다. 끝내 잊히지 않는 건 그녀다.)
꿈을 이루고 싶다. 그녀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


머지않아 나는 그녀를 남기려고 한다. 세상에.

작가의 이전글 2023년 은 나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