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란?
삶을 살아감에 있어 필수조건인 돈을 버는 수단이다. 그렇다면 나는 돈만을 위해 일할 수 있을까? 그게 충분조건이 될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일이란 내게 어떤 의미였나 생각했다. 퇴근하는 지하철 안의 사람들. 저들은 왜 이 콩나물 같은 지하철을 매일매일 채우는 걸까? 저들도 돈이 전부일까? 일을 하는 이유가 그게 전부일까? 퇴근하는 사람들 속에 섞여 생각했다. 무엇이 저들을 그리고 나를 매일 이 지하철에 몸을 실게 할까? 명확한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일은 내게 생활이다.]라는 것이다.
일은 내게 생활이다. 밥 먹고 물을 먹듯이 일어나면 출근을 하고, 이 놈의 집구석(회사) 되는 게 하나도 없어하며 화를 내며 퇴근을 하고, 또 출근을 반복하는 내게 그냥 숨 쉬는 것과 같다. 나에게 일은 나를 지치게 하기도 하고 또 어딘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하는 그런 의미이다.
나의 첫 직장은 일본 후쿠오카에 적을 둔 유통회사였다. 그곳에서 회계업무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재무회계 그리고 후에는 관리회계로 그 영역을 넓혔다. 두 업무 모두 숫자를 보는 업무였기에 그때의 나는 까칠함과 예민함의 끝을 보여 주었다. 1원이라도 틀리는 날에는 나를 용서하지 못했다. 심장이 칼 끝을 겨누듯이 실수를 한 날에 나에게 나는 몹시 잔인한 말로 상처 주었다. 그런 생활을 10년 넘게 하다 보니 나는 예민하고 까칠한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사실 나는 잘 몰랐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나의 까칠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내가 그랬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은 나도 모르게 나를 변화시키고 있었다.
학교를 졸업 후 한 직장에서 12년간 일하다가 서른 하고도 몇 해를 더 넘긴 나이에 나는 공부를 시작했다. 그때 나는 예민함의 끝에 있었고 감정을 숨기고 사는 것에 지쳐있었던 것 같다.
사수는 내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때의 넌 번아웃이었다고. 그래서 네가 그런 선택을 했다고 본인은 그렇게 생각했다고. 퇴사를 하고 약 3년 만에 만난 사수는 내게 그런 말을 했었다. 나는 그 말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다.
나의 퇴사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반대했다. 나는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올랐고 주변 친구들보다 조금은 높은 연봉을 받고 있었고, 직장은 중견 기업이지만 안정적이었다. 그런 직장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모든 이들이 반대했다. 끝까지 고집을 꺽지 않는 내게 ‘이왕 시작한 공부 최선을 다 해라 ‘라는 이야기로 두 언니는 내 의견에 찬성표를 던졌다. 나는 그렇게 10년 넘게 몸 담았던 직장을 그만두고 공부를 시작했다. 3년간의 긴 수험 기간을 끝내고 내게 남은 건 좌절이었다. 그리고 해보지 않아 남기게 될 미련을 버릴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실업자의 길을 걸으면서 출근에 대한 목마름에 목이 타야 했다. 일이 하고 싶었다. 한동안 나는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걷는 것 같이 늘 목이 말라 있었다. 태양 빛을 받은 모래가 뜨거워 어서 사막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가야 할 곳이 있다는 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건 행복한 거구나. 나는 새로운 직장을 구할 때에 그 생각을 했다.
일이 하고 싶었던 그때의 나는 목이 너무 말랐다. 일이라는 물을 마시지 못해 갈증에 시달라고 있었다. 마시지 못한 물은 나도 자라지 못하게 했다. 생각의 폭은 좁아져 갔고 마음은 더 좁아졌다. 바뀌는 계절을 느끼지도 못했다. 새로운 내 자리를 찾기 전까지 나는 말라가고 있었다.
대학 졸업 때까지 나를 성장시킨 것은 가족이었고 내 생각, 가치관을 만든 것은 내가 읽었던 책들이었다. 학생인 나는 시를 좋아하고, 아리랑, 한강, 토지를 읽으며 눈물을 펑펑 흘릴 만큼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 나는 모든 것을 계산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식당을 가도 얼마나 회전율이 높아야 유지가 되지? 직원은 몇 명이지? 얼마나 남길까? 등등 나는 그런 걸 계산하고 있었다. 밥을 먹기보다는 얼마를 팔아야 얼마를 남길까? 모든 것을 계산하고 있었다. 밥을 먹는 일상에서조차 일에서 하던 습관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일은 그렇게 내 삶에 스며들었다.
일이 나를 만든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1차 성장은 가족과 책이었고, 2차 성장을 시킨 것은 내가 하는 일이었다. 그러니 나를 키운 것은 일이다. 지금도 나는 일이 가르쳐 주는 대로 자라나고 있다. [ 곧은 사람이 되어라. 네가 만들어 내는 숫자처럼 명확한 사람이 되어라. 손익은 따져 보되 누군가에게는 가치 있는 사람이 되어라. 손익이 다는 아니다. 손실이 나더라도 성장하는 사람이 되어라. 간혹 손실을 보더라도 더 가치 있는 일에 너의 시간을 투자하라.]
나는 일로 지금도 자라나고 있다.
일이 가르쳐주는 방향성을 따라서 나도 자라나고 있다. 앞으로 20년 후 내 모습은 지금 내가 하는 일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두려운 것은 일이 나를 퇴화시키게 되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