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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Nov 10. 2021

때 이른 첫눈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나는 눈을 좋아한다. 눈이 내리면 주인을 맞이하는 강아지처럼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다가 결국에는 밖으로 달려가 강아지처럼 뛰어논다. 오늘 양평에도 첫눈이 내렸다. 어제 한라산, 덕유산에 첫눈이 내렸다는 기사를 보고 부러움을 금치 못했었는데, 이렇게 바로 다음날 축복처럼 나를 들뜨게 하는 하이얀 눈을 만났다.


첫눈

 양평에 살  때는 마당이 있는 전원주택에서 주로 살았기 때문에 눈과 연관된 추억이 특히나 많다. 아이들도 역시나 눈을 좋아하니 말이다.


 


 눈 하면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눈사람. 우리 가족은 눈이 내리면 꼭 눈사람을 만들었다. 눈이 적으면 작은 눈사람이, 눈이 많으면 큰 눈사람이 탄생했다. 이 눈사람은 첫 전원주택에서 맞이한 첫겨울에 내린 눈으로 만든 눈사람이다. 잔디밭에 내린 눈을 모아 모아 만들어서 눈사람에도 잔디가 달라붙어 있지만 옷도 입었고, 모자도 썼다. 눈사람이 솔잎 손가락으로 우리에게 인사를 건넨다.  


  

 두 번째 살았던 전원주택에서도 눈이 많이 내린 날, 아이들과 밖으로 뛰어나갔다. 이날 아이들은 이글루를 만들었다. 네모난 벽돌 모양의 눈(사진 속 네모난 눈)을 만들어 견고하게 쌓아 올렸지만, 아쉽게도 눈이 모자랐다. 이글루 뒤에 실종된 눈이 이날의 상태를 보여준다. 어쨌든 이글루라는 거대한 건축물에 도전한 두 아들의 창의력과 실행력이 돋보인 하루였다. 

   


 양평에서 세 번째 살았던 집은 빌라였기에 우리가 놀 마당이 마땅치 않았다. 큰 눈이 내린 날, 큰아이는 친구와 눈썰매를 타겠다고 썰매를 끌고 돌아다녔고, 작은애와 루이, 나는 북한강 산책로로 달려갔다. 도로는 거의 텅 비어 있었고, 우리들의 신나는 목소리가 허공을 가득 메웠다.


 제법 쌓인 눈이었고, 아무도 밟지 않은 숫눈이었다. 아이는 1970년에 나온 영화 <러브스토리> 속 연인처럼 그렇게 깨끗한 눈 위에 벌렁 드러누우며 자유를 만끽했다. 나와 눈싸움을 벌이겠다고 눈을 뭉쳤고, 우리는 서로의 옷에 눈뭉치를 던지며 뛰어다니고 웃느라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그날의 즐거움, 그 잔상이 지금도 선명히 떠오른다.


 

 

 오늘 내린 눈이 장미잎을 살포시 덮었다. 아직 볏짚으로 가려주지도 못했는데 장미가 어는 건 아닐까 걱정했지만 그래도 내리는 눈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사라락 내리는 눈, 천천히 허공을 음미하며 가벼이 내리는 눈송이가 아름다웠다. 함박눈처럼 강하게 , 무게감 있게 수직으로 하강하지 않으면서도, 함박눈처럼 큰 눈송이였다. 그런데 때 이른 첫눈이어서였을까 8시가 지나니 속절없이 눈발이 약해지더니 쌓여있던 눈들도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린다. 


 첫눈 올 때까지 손가락에 봉숭아 물이 남아있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데, 첫눈이 내릴 때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건데... 이 모든 것과 상관없이 첫눈은  짧고 진한 추억을 남기며 사라졌다. 



 그런데 인생에서 만나는 수많은 순간이, 관계가 이와 같지 않을까. 너무나 아름다워서, 함께 하고 싶어서, 붙잡고 싶어서 애를 쓰지만 변해가며, 사라져 버리며,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야 하는 것들, 그런 것들이 인생에는 있다. 더 함께 하고 싶어도 11월의 눈을 내 욕심껏 붙잡아 둘 수는 없듯이. 그러나 12월이 되면, 1월이 되면, 때가 되면 더 오래 머무는 함박눈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이 인연이고 그것이 맞는 '때'일 것이다. 그러니 아쉬워도, 서운해도, 붙잡고 싶어도 떠나가는 것은 떠나보내야 한다. 


 11월의 찬란했던 눈에게도 인사를 건네자. '안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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