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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Nov 04. 2021

나의 자연식물식과 비건식

 오랜만에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자주 연락을 드려야지 하면서도 올해는 신경을 많이 못 써드렸는데, 그래도 엄마는 반갑게 전화를 받으신다. "아이들은 잘 지내지? 학교는 잘 다니고?"는 그런 엄마의 단골 멘트이다. 그리고 요즘 엄마는 이 단골 멘트를 몇 초, 혹은 몇 분 간격으로 물으신다. 당뇨로 인한 혈관성 치매, 엄마가 앓고 있는 병 때문이다.


 아들 둘, 딸 하나를 둔 나의 엄마. 같은 여자니까, 딸이니까 나는 엄마와 추억이 많다. 내가 아이를 낳은 이후 특히 그랬다. 엄마는 연년생 두 아들을 키우느라 아등바등하는 나에게 반찬을 가져다주고, 철마다 아이들 옷을 사러 시장에 데리고 가시고, 아이들도 봐주셨다. 양평에 이사 온 뒤에는 같이 쑥을 캐러 가거나, 나물을 뜯으러 갔다. 그렇게 가까이 지켜본 엄마였는데, 당뇨를 오래 앓아온 엄마에게서 이상한 모습이 발견됐다. 본인이 하신 말씀을 기억 못 하시거나 무언가를 자주 잊으셨던 것이다.  


 검색을 해서 치매센터에 모시고 갔다. 경도인지장애 상태였지만 점점 심해지면 치매가 될 수밖에 없었다. 대학병원에 모시고 가 검사를 받고 약 처방을 받았다. 병의 진행을 멈추게 하고 싶었다. 간절했다. 하지만 변화되지 않은 삶의 모습에서 변화된 결과가 나오기는 어려운 법이다. 엄마는 결국 치매 진단을 받았다.


 기억이 사라지는 병, 그 병의 진행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나에게 당뇨는 공포 그 자체였다. 임신성 당뇨를 앓았던 나도 그즈음 당뇨 수치가 당뇨 전 단계까지 올라가 있었다.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유투버 이레네오의 자연식물식과 황성수 박사의 현미채식 영상을 독파해나갔다.

 

 수업을 하면서 읽었던  <죽음의 밥상>도 식단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실천 윤리학자인 피터 싱어는 '종차별주의'라는 말을 만들어, 우리 인류가 인종차별, 남녀차별, 성차별 등을 하듯이 종을 차별하고 있다며 동물을 학대, 차별하며 고기를 생산하는 공장식 축산의 잔혹함, 폐해, 환경파괴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다. 철저하게 숨겨져 왔던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과 경악은 나를 추동하며 변화하자고 독려하는 힘이 되었다. 그 후 관련 영상을 찾아보았고 그러면서 <우리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이라는 미국 다큐도 접하게 되었다. 공장식 축산과 얽힌 인종차별, 자본 유착의 문제까지 알 수 있었다.


 "안 먹게 된 게 아니라 못 먹게 된 것이다."


 이 말이 맞을 것이다. 알면 알수록 고기를 먹는 게 괴로웠다. 그리고 그 임계점에 도달한 날, 2019년 2월 1일 나는 더 이상 고기를 입에 대지 않았다. 그리고 3월부터 자연식물식을 시작했다. 첫 3달은 철저하게 식단을 지켰고, 몇 달 뒤 당화혈색소 검사를 받아 정상으로 돌아온 당수치를 확인했다. 몸이 질적으로 달라져 최상의 컨디션이 되었다. 몸이 날아갈 것 같았고, 불면증은 사라졌으며, 피부는 더 맑고 촉촉해졌다. 가공이 되거나 해로운 음식을 먹으면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지독한 가스(?)가 분출되며 이 음식의 실체를 바로바로 알게 해 주었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자연식물식에서 조금은 멀어지고, 과일식과 비건식(일반 채식)을 하며 지내고 있다.


 그런데 비건식이라고 하면 콩고기, 비건용 마요네즈, 비건용 00 등이 떠오른다. 일반식을 하다가 비건인이 된 사람들은 기존 식단의 모습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비건용 식재료를 이용해 자신이 먹어왔던 음식과 비슷한 음식을 해 먹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자연식물식은 가공되지 않은 과일, 생채소를 주로 섭취하며, 가공한 경우에는 화식 정도의 가공만 한 현미밥, 삶은 고구마와 감자, 옥수수 등을 섭취한다. 이런 자연식물식에서 비건식으로 옮겨갔기에 내 식단은 과일식/ 고구마, 옥수수, 밤 등의 녹말식/ 채소, 쌀에 기반한 한식 정도이다. 아직도 끊지 못한 가공 식품이라면 마성의 면요리, 쫄깃한 떡, 한식 요리에 사용되는 장 종류, 그리고 아주 드물게 먹는 비건용 빵 정도가 있다.

  

문호리 가는 삼거리 옆 카페

 

붕어부부가 당신에게 던지는 외침


 우리집에서 문호리로 나가는 삼거리 도로에는 하얀 벽에 큰 창문이 달린 카페가 있다. 카페를 운영하는 부부는 티 없이 맑아 보인다. "당신의 영혼이 행복한 일을 하라!(Do what makes your soul happy!)"는 이 붕어부부의 외침을 뒤로하고 나는 집에 돌아와 사온 빵을 풀었다. (사진 찍기 전에 한 입 베어 문 자리가 나의 급한 성질머리를 보여준다.) 



 나는 '팥품은 단호박 케이크'(사진의 아래 왼쪽)가 가장 맛있었는데, 가족들의 원픽은 또 제각각이다. 어쨌든 내가 먹어도 되는 빵이라니 나는 심적부담을 조금은 내려놓고 오랜만에 빵을 음미한다. 



 양평에 살다 보면 환경보호에 앞장서는 사람들, 동물을 보호하려고 사비도 아끼지 않는 사람들, 건강한 음식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이 카페에서는 생분해되는 컵을 사용하고 있는 듯했다.

 


 나의 몸도 지키고, 자연도 지킬 수 있는 선택을 더욱 마음 편히 하며 살아갈 수 있는 곳, 나에게는 양평이라는 곳이 그렇다. 축복스런 공간ㅡ나와 우리의 양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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