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감자 잎)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식재료인 감자는 한때 '악마의 열매'로 불렸다고 한다. 땅 속 어두운 곳에서 자라나기 때문이다. 다른 식물들이 죽어나가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감자였지만, 악마의 열매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먹지 않고 동물들이 주워 먹었다고 하니, 우리나라에서도 구황작물로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주었던 감자의 역사를 보면 이 시기의 감자는 감자계의 흑역사였다고나 할까.
반 고흐가 그린 <감자 먹는 사람들>에서도 어두운 배경에, 가난해 보이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감자를 먹으며 배고픔을 달래는 모습이 보인다. 사람들의 생존에 이만큼 요긴하고 다양하게 사용된 식재료가 또 있을까.
단독으로 먹으면 포슬포슬하고 부드러운 식감에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감자지만, 그 존재감이 무겁거나 특이하지 않아 다양한 조리법으로 요리되며, 보조 재료로 사랑받아온 감자다. 쉽게 떠오르는 대로 나열해 보아도 감자볶음, 감자튀김, 감자탕, 감잣국, 감자옹심이, 감자칼국수, 감자전, 포테이토 피자 등등.
그중에서 최근 새로 알게 된 감자음식으로 '감자빵'이 있다. 춘천의 명물이라는 이 감자빵은 몇십 년째 같은 값인 감자(다른 건 다 올라도 쉽게 가격이 오르지 않는 농산물. 특히 감자)여서 수확을 하면 손해가 날 지경이라 부모님이 밭을 갈아엎게 되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딸이 고심 끝에 만들어냈다고 한다.
나는 남양주 주말 농장을 다니고, 양평에서 농사를 지을 때 늘 감자를 심었는데, 농사를 지으면서 처음 감자꽃을 보았다. 생각보다 훨씬 예쁘게 피어나는 감자꽃인데, 권태응 시인은 그 감자꽃을 감각적이고도 직관적으로, 쉽고 재미있게 동시로 풀어내고 있다.
그나저나 감자꽃을 만나기 위해서는 일단 감자를 심어야 할 텐데, 싹이 돋아난 씨감자는 다른 씨앗들보다 깊이 심어야 한다. 한참을 기다리면 잎이 올라오는데, 자주꽃이든 하얀꽃이든 그 꽃과 잎이 시들어서 누렇게 변해 쓰러질 지경이 되면 감자를 수확할 시기라는 뜻이다. 검은 비닐을 걷어내고 호미로 조심조심 흙을 걷어내야 멀쩡한 감자를 만날 수 있다. 호미로 콱콱 땅을 파다가는 어디 있는지 모를 감자까지 찍어내려 속상할 일을 경험하게 된다. 올해 수확한 감자들을 통에 집어넣으면서 서프라이즈 선물의 포장을 뜯듯 다른 손으로는 부지런히 땅을 팠다. 얼마만 한 감자가 나올까 그 재미에 감자 캐기는 늘 신이 난다.
수확을 마치고 몇 달 동안 큰 감자들은 된장국, 카레, 짜장, 삶은 감자 등으로 먹고, 자잘한 감자들만 남아있길래 올해가 가기 전 이 감자들도 먹어야겠다 했다. 작으니까 감자조림을 해도 좋았겠지만 귀찮으니까 편하게 먹겠다고 에어프라이어에 돌렸다. (이 작은 감자들을 하나씩 솔질을 해서 세척하는데 으메 힘든 거..)
오래 보관한 감자라 혹 싹이 났나 살며보며 손질을 했는데, 푸르스름한 부분이 있었다. 찜찜했지만 도려내자니 감자가 너무 작아 일단 패스. 다 익은 감자를 하나씩 집어먹는데 푸르스름했던 부분이 익으니 잘 보이지 않았다. 아린 맛이 나는 부분은 되도록 안 먹었지만 나머지는 그냥 먹었는데, 두세 시간이 지나니 배가 아프고 두통이 몰려왔다. 구토를 할 것 같은 느낌에 저녁도 못 먹고 8시에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중학생 때 가정 시간에 달달 외웠던 '감자 싹에는 쏠라닌'이었는데, 끙끙 앓으며 검색을 해보니 감자의 푸르스름한 부분에도 쏠라닌 독소가 있단다. 많이 먹으면 사망까지 이른다는 글귀에 식겁을 하며 지쳐 잠에 빠져 들었다.
다음날 다행히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12시였다. 간이 해독을 하느라 지쳐서 힘들었던 걸까. 12시 기상이라니. 간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무식하면 몸이 고생을 한다더니... 나는 이 무식을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리라 결심하며 두 아들을 붙잡고 '감자의 푸르스름한 부분은 절대 먹지 마'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이렇게 올 겨울 감자는 나에게 진짜 '악마의 열매'가 되었다.
감자를 먹을 땐 다시 한번 조심하자. 싹뿐만 아니라 푸르스름한 부분까지 제거해야 감자가 그 순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