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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Dec 06. 2021

배추, 어디까지 변신해봤니?

 12월 6일, 겨울 느낌이 나는 아침이다. 테크와 마당, 짚단 위에는 하이얀 서리가 해가 뜬 뒤에도 한참을 머물다 사라진다. 오전과 정오에 도로를 달리면서도 음지에 도사리고 있는 서리들을 목격하게 된다. 지난주 작은애는 학교 가는 도중 언덕을 지나 내리막길을 달릴 때 길 옆에 처박힌 자동차를 보았다고 했다. 녹지 않은 서리에 차가 미끄러진 것이리라. 일명 블랙아이스라 불리는 도로 위 무서운 함정, 불청객. 기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나도 눈이 내리면 이 언덕을 어떻게 오르내리나, 눈이 오면 애들을 학교에 보내지 말아야 하나 이러면서 운전을 했다. 날이 추워지니 도로 위에서도 움츠러들게 된다. (양평에서는 종종 논두렁에 빠진 차들이 발견된다. 길이 좁은 경우나 눈이 내린 경우 등에 자주 발생하는 듯하다.)


 그러나 뒷마당 텃밭의 배추는 이 추위에도 이파리를 활짝 펼치며 살아있다. 심어놓은 무는 모두 수확해서 뭇국, 무김치로 맛깔스럽게 먹었는데, 김장 패스를 선언한 올해, 배추는 활용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내내 방치해 두다가 서리를 맞아 얼고 있기에 며칠 전 비닐로 덮어두었었다.


텃밭에서 가장 큰 배추


 김장용 배추가 아니라 속이 덜 차도 상관은 없었는데, 쌈으로 먹으려니 잎이 까끌까끌해서 씹기가 불편했다. 쌈용으로는 포기하고 그냥 두었는데, 더 추워지면 완전히 얼어버릴 테니 얼른 뭐라도 하자고 머리를 굴렸다.



 다음은 나의 옹졸한 상상력의 결과다.  




 가장 먼저 해 먹은 요리는 배추된장국이었다. 물에 멸치, 다시마로 육수를 내어 배추 고갱이와 남아있던 시금치를 조금 넣고 된장, 고춧가루를 풀어 끓였다. 이런 음식은 주로 나만 먹기 때문에 내 입맛에 맞게 간단히 끓였다. 별다른 가미를 하지 않았는데도 국물에서 은은한 단맛이 느껴졌다. 한층 부드러워진 배춧잎이 술술 넘어가니 밥이 없어도 국만 따로 떠서 한 대접 하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갓 수확한 배추로 만든 겉절이

 어제, 오늘 점심에는 배추 겉절이를 해 먹었다. 밭에서 바로 따서 벌레가 많이 잡수신 겉잎은 떼어내고 한 장씩 씻은 다음 작게 잘랐다. 배추 속에서 살고 있던 작은 벌레가 쫄쫄 싱크대를 기어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마늘, 고춧가루, 새우젓, 매실액, 파, 멸치액젓, 깨소금, 참기름을 썰어놓은 배추에 넣고 살살 버무려 접시에 담았다. 국수에 곁들여 먹으니 갓 담근 싱싱함과 아삭함, 그 뒤에 이어지는 단맛이 이게 정녕 내가 만든 음식이란 말인가를 연발하게 했다. 매실액을 조금 넣었는데도 이렇게 단 것을 보니 배추된장국의 단맛처럼 배추가 단 것 같았다.


배추전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프라이팬 위의 봄동전을 집어 먹는 것을 좋아한다. 접시에 옮겨 놓으면 봄동전 아래에 김이 서려서 금세 전이 눅눅해지기 때문이다. 따뜻하고 바삭한 상태 그대로 봄동전을 먹을 때의 맛이란!

 오늘은 배추 고갱이만 골라 노란색 배추전을 해보았다. 부침가루에 소금을 약간 더한 뒤 약간 걸쭉하게 반죽을 만들어 배춧잎에 살짝 묻힌다. 달궈진 팬에서 앞뒤로 살짝 익혀주면 숨은 약간 죽었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배추의 식감을 느낄 수 있다. 간단하게 간장, 깨소금, 후추, 참기름으로 만든 소스에 옷깃만 살짝 스치듯 담가 먹으면 된다.


 그리고 내 비좁은 머리에서 나온 또 다른 배추 요리로는 배추찜이 있다. 배추를 찜기에 찐 뒤 돌돌 말아 롤 형태로 만들어 소스를 부어서 먹는 요리인데 며칠 내로 해먹을 예정이다. 이렇게나 많은 요리를 했는데도 아직 텃밭에는 배추 몇 포기가 남아있으니 얼마나 더 머리를 굴려야 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상상력은 옹졸했지만 맛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겨울에도 이렇게 수확의 기쁨과 요리의 재미, 맛의 즐거움을 가능하게 해 주니 텃밭은 나의 천연냉장고로서, 전원의 행복을 더하는 작지만 큰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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