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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Nov 14. 2021

김장, 그 추억의 맛

 나는 5살 때까지 시골에서 자랐다. 그때의 기억은 별로 없으나 어머니의 말씀으로는 밭일을 하실 때 나를 나무에 묶어놓으면 흙을 파먹곤 했다고 한다. 주렁주렁 매달린 자식을 키우겠다고 감을 따다 시장에 내다 팔고,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웠던 어머니. 그 어머니는 시골에서 서울로 터전을 옮긴 후 큰어머니를 따라 시장에서 일을 시작하셨다. 배추 장사였다. 오후에 시장에 나가 배추를 사서 손질을 하고 내다 파는 일이었다. 억척스럽고 정갈한 성격이었으니 남보다 배는 더 바지런히, 깔끔하게 일 했으리라.


 배추 장사를 했던 어머니였으니 배추 입수야 너무나 간단했다. 김장철이 되면 어머니는 트럭에 100포기의 배추를 실어왔다. 오빠들과 내가 총동원되어 배추를 날랐다. 어머니를 도와 마늘을 까고 어머니가 절인 배추에 양념소를 묻힌 뒤, 깨소금을 듬뿍 묻혀 주시면 입을 최대한 아~하고 벌려 받아먹었다. 먹이를 받아먹는 아기새처럼 말이다. 매콤했던 어머니의 김치는 많이 먹으면 얼굴이 발개졌지만 나는 어머니에게 계속 입을 벌렸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남양주 주말농장을 다녔기 때문에 나도 쉽게 배추와 무를 입수했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던 때라 남들 다 수확하고 난 뒤 내 배추, 무만 덩그러니 남았을 때 가서는 살짝 얼은 배추와 무를 수확하기도 했다. 

남양주 주말농장, 배추에 물을 주는 작은애

 100포기와 무슨 연이 있는 건지 나에게도 배추는 무조건 100포기였다. 실은 배추 한 판이 100포기였기 때문이 가장 컸고, 어머니와 오빠들에게 나누어주면 되니까 넉넉하게 심었다. 그렇게 농사지은 배추, 무로 김장을 한 지 거의 10년 정도 되었나 보다.  


첫 전원주택에서 내 배추

  

 양평에서의 첫 전원주택에서는 옆집 할아버지가 내어준 땅에 배추를 심었다. 나의 집도 전원주택이었지만 배추를 심기에는 밭이 작았다. 할아버지 댁 뒷산 넓은 터에서 할아버지의 배추, 나의 배추가 나란히 알이 차오르며 김장철을 알렸다. 나는 수시로 올라가 배추가 잘 크고 있나 보고, 사진을 찍어 가족들에게 올해 배추 사이즈를 보고했다.  

 

 

 양평에서 세 번째 살았던 집은 빌라였지만 그 옆에 텃밭을 만들어 놓아서 배추, 무를 심을 수 있었다. 깜깜한 밤에 나가 달팽이들을 잡아 다른 곳으로 옮겨놓으며 애를 썼다. 원래 너도 먹고 나도 먹자는 주의라 벌레를 잡지는 않았는데 이때의 달팽이는 많이 심각했다. 늦게 심어서 알이 차오르지 못한 배추였는데, 달팽이에게 너무 많이 먹혀 내가 먹을 것이 별로 없었다. 이 해의 배추 농사는 대실패였다. 늘 대충 심어도, 게으른 농부였어도 풍족하게 내어준 자연이었는데... 그리고 올해의 배추도 이때처럼 참으로 소박하다. 


 어렸을 때에는 엄마의 주도로, 어른이 되어서는 내가 수확한 배추로 어머니, 올케 언니가 모여 양념을 버무리고, 수육을 삶고 온가족이 모여 한 끼를 먹었는데, 이제 어머니는 편찮으시고, 언니는 김장을 안 하고, 나도 혼자 몇 번 김장을 하고는 너무 버거워 올해 김장은 그냥 넘기기로 했다. 그래서 느지막이 20개 정도의 모종으로 소꿉놀이하듯 심은 배추였다.


 그래도 텃밭의 실한 무를 보고 가만 있을 수는 없으니 손을 걷어 부쳤다.  


올해 수확한 다섯 손가락 달린 무

  

올해 수확한 튼실한 무
수확한 무들


  수확한 무로 간단히 섞박지를 담갔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무가 얼길래 서둘러 수확을 해서 대충 숭덩숭덩 잘라 양념에 버무렸다. 며칠 뒤 시원하면서도 단맛이 도는 섞박지를 맛보았다. 역시 농사지은 배추, 무는 맛이 다르다!

 

잘 익은 섞박지


 김장 김치가 없어 조금 서운할 뻔 했는데, 때마침 옆집에서 수확한 배추로 담근 김장 김치 두 쪽을 가져다주었다. '김장 김치에는 수육이지!' 하는 아이들 말에 수육을 삶아 김장 김치와 한 상 차려주었다. "옛날에는 할머니, 삼촌들, 숙모랑 같이 김장하고 수육도 먹었는데..."라며 밥을 먹는 아이들. 가족들이 북적북적 모여 함께 일 하고 밥 먹던 그때가 그리웠나 보다. 



 그때는 너무나 '당연한' 김장이었는데, 지금 돌아보니 얼마나 소중한 만남이었던가, 얼마나 따뜻한 노력이었던가, 왜 그때는 모르고 지금만 이것을 알고 있을까. 나도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을 어쩔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달래며 같이 숟가락을 들었다. 지금의 이 한 끼도 미래의 아이들에게는 따뜻한 추억이 되고, 소중한 마음이 될지 모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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