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침햇살 Jul 07. 2024

교회, 그만두면 안 되겠나?

그렇게는 못하겠는데요!

지금 생각해도 남편을 만난 건 기막힌 운명의 장난이었다.

지금은 교통이   좋아져 김포에서 안동을 가려면 평균  5시간 정도 걸린다. 31년 전 만 하더라도 김포에서 안동을 가려면 길이 막히지 않으면 7시간~8시간.  명절에 길이 막히거나 눈이라도 오면 24시간을 걸려 도착하곤 했다.  하늘이 정해준 인연이 아니라면 남녀가 만나 결혼할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친구 따라 김포로 오게 된 남편이 직장 선배를 따라 우리 교회 청년부에 오게 되면서 우리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당시 나는 스물둘, 남편은 스물아홉.

"새로 온 청년인데 키도 크고 성실하게 생겼네."

큰 키에 점잖게 생긴 새로운 청년에게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  무엇보다 가볍지 않은  성품과 겸손하고 친절한 매너에 애 어른 할 거 없이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다. 어린 나이었지만 왠지 그를 보면  자꾸 마음이 쓰였고 뭐라도 하나 챙겨주고 싶었다. 게다가 믿음도 좋아 종종 새벽기도를 하고 금요일마다 기도원에 철야기도도 다니니 신앙적으로도 맞는 부분이 많았다.


"상일청년하고 보배청년하고 너무 잘 어울리지 않아요?"

"그러게, 둘 다 결혼할 나이니 괜찮겠는데!"

어느새 교회에서는 남편과 반주자 언니가 공식 커플이 되어있는 게 아닌가?

'어, 이건 뭐지?' 했다가도  어리고  내세울 것 없는 내 상황이 현실로 다가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부유한 집안에 음대를 졸업하고 큰 학원도 경영하며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반주자 언니.

가난한 집에 태어나 나이도 어리고 아무것도 갖춘 게 없는 나. 비교거리도 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현실을 보면 볼수록 내 안에 알 수 없는 불안함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그래! 저 사람과 내가 만나는 게 하나님 뜻이라면 반드시 이루어 주실 거야!'불안함도 잠시, 기도하자는 마음이 강하게 날 몰아갔다.


"아저씨, 나랑 결혼할래요?"

그때부터 당돌한 계집애의 과감한 플러팅이 시작되었다.

장난스러운 말투로 마주칠 때마다 툭툭 내뱉는 말에 숫기 없는 남편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어린 계집애의 장난에 누구 하나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지만  나는 이미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새벽기도를 작정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사랑하는 김상일 씨가 저를 좋아하게 해 주세요. 믿음의 가정을 이루게 해 주세요!"

기도를 하면 할수록 아버지와 정 반대의 성격, 따뜻한 성품, 경제적 안정, 큰 키, 신실한 믿음까지...  나를 위해 예비하신 아담임에 틀림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내 기도는 응답되었고 남편과 반주자 언니의 인연은 시작도 못해보고 막을 내리게 되었다. 물론 지금까지도 반주자 언니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남아있지만 결코 후회는 없다.


"이번에 아버지께서 사촌형 아이 돌잔치에 오신대. 올라오신 김에 큰아버지랑 아버지께 인사드리러 오라는데..."

안동은 너무 멀어 상견례 전에 예비 시부모님과 가까운 친척들께 인사를 드리자는 남편의 말에 흔쾌히 승낙을 하고 토요일에 날을 잡게 되었다. 그 당시 우리 교회는 금요일 밤마다 한얼산 기도원으로 철야예배를 드리러 가야 했기 때문에 밤을 새우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뵙기로 한 것이다.


토요일 아침 떨리는 마음으로 친척들이 모인 광명으로 인사를 하러 갔다. 안방에 큰 아버님과 예비시아버지께서 앉아 계셨고 예를 갖춰 인사를 드렸다.

"그래, 상일이는 왜 어제 안 왔노?"

예비 시아버지께서는 시골에서 부모님이 올라왔는데 당장 뵈러 오지 않은 아들에게 섭섭하다는 듯 퉁명스럽게 물어보셨다.

"네, 어제저녁에 기도원에 가느라 못 왔습니다."

"니도 같이 갔었나?"

예비 시아버지는 나에게도 퉁명스럽게 물으셨다.

"네, 저도 같이 갔어요."

"그래?, 니 그 교회 좀 안 나가면 안 되겠나!"

마치 너 때문에 내 아들까지 망친다는 듯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순간  '사랑하는 이 사람과 어쩌면 오늘이 끝일 수도 있겠구나!' 불길한 생각이 스치 듯 지나갔다.

"그렇게는 못하겠는대요!"

내가 그렇게 원했던 결혼이지만 내 신앙을 저버리면서까지 할 수 없었다.  순간  찬물이 끼얹어진 듯 사방은 고요했고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어린 게 당돌하네!'

이런 표정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으흠,  그래. 오늘은 많이 피곤할 테니 다음에 얘기하자."

예비시아버지는 예상치 못한 내 대답에  당황한 듯 서둘러 상황을 마무리하셨다.


그 일이 있은 후 시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내 신앙에 대해 전혀 개입하지 않으셨다.

뿐만 아니라 상견례 자리에서 우리 부모님께 약속까지 하셨다.

"사돈, 제사는 내가 살아있을 동안 지내고  새 아가에게는 절대로 물려주지 않을끼라예."

물론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어머님의 고집으로 제사는 계속되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며느리를 이해해 주시고 의리를 지켜주신 아버님께 감사한 마음이 크다.





작가의 이전글 신이 있기는 있는 겁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