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기였을 때 옆집에 살던 '금자' 언니가 나를 업고 교회에 갔다는 설이 있을 뿐 내 믿음의 시초는 확실하지 않다. 교회에 대한 기억은 여섯 살 무렵부터 간간히 났다 안 났다 하는 정도이다. 동네에 큰 교회가 있었고 옆집에 믿음 좋은 '금자'언니가 살았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태곳적부터 하나님이 날 택하시고 사랑하신 증거로 충분하다.
우리 집은 미신이 강한 집안이었다. 삼십 대 초반 아이 셋을 데리고 청상과부가 된 할머니는 한이 많아서인지 자주 아프셨다. 그럴 때마다 집에서는 큰 굿판이 벌어지곤 했다. 굿을 할 때마다 서슬 퍼런 무당은 칼 춤을 추며 모든 우환의 원인을 찾기에 바빴다. 어느 날은 조상에게 뭘 잘 못했으니 돈을 얼마 들여 더 큰 굿을 해라, 어떤 날은 식구 중 누구 하나를 지목해 귀신을 쫓는다고 난리 법석이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왜 굿을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무당이 나이 어린 큰언니를 지목해 마구 때리고 쌀을 뿌리며 구석으로 몰아 붙였던 사건이다. 그날의 장면이 너무 공포스러워 무당의 '무' 자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리며 두려웠던 기억이 있다.
일 년에 한 번 엄마는 식구들의 점을 보고 왔다. 엄마가 점집에 다녀온 날이면 부적을 태워 그 재를 손으로 비벼 하늘을 향해 날리거나 시루떡을 잔뜩 해서 굴뚝 뒤나 부뚜막 집 주위 사방에 뿌리기도 하였다.
"성희는 올여름에 특별히 물 조심해야 된다. 물가에 절대 가면 안돼."
"경희는 이름에 'ㄱ'자 들어간 사람과 어울리지 말고..."
엄마는 형제들에게 점괘에 따라 부적을 써와서 옷이나 베개에 넣어주기도 하며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바빴다.
"엄마, 나는 요?"
나만 쏙 빼고 형제들만 챙기는 엄마가 섭섭해 철없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엄마는 늘
"너는 점괘가 안 나온단다. 자기보다 더 큰 신을 믿는데 무슨 점이냐고 말도 못 꺼내게 해."
매번 똑같은 대답을 했다.
집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나는 늘 '아웃사이더'였다.
그런 내가 불교집안의 맏며느리가 되었다.
시댁에서 남편도 믿음의 1세대이다. 남편은 가는 학교마다 미션스쿨이었다. 유교와 불교가 강한 집안의 장남이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하나님은 남편을 미션스쿨 학교로 배정받게 하셔서 운명적으로 선택하신 것이다.
대부분 비크리스천들은 결혼 전 '궁합'을 본다.
"엄마가 궁합 봤는데, 용띠랑 돼지띠는 상극이래."
"상극? 상극이 뭔데?"
궁합의 '궁'자도 모르던 나는 '상극'의 뜻도 모르면서 왠지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
"뱀이 승천해서 용이 되는 거래, 근데 돼지가 뱀을 잡아먹으니 용과 돼지는 안 맞는다는 거지."
"그래? 그러면 우리는 결혼하면 안 되는 건가?"
"그런 건 미신이지. 엄마가 궁합은 그렇게 나왔지만 우리는 하나님 믿는 사람들이라 신경 안 써도 된다고 하셨어."
'신경 안 써도 되는 거라면 굳이 궁합은 왜 보셨을까?' '그 말을 전하는 이 사람은 또 뭔가?' 순간 이해 되지 않았지만 '잘 살면 되지!'라고 생각하며 스멀스멀 올라오는 부정적인 감정을 애써 무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