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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햇살 Jul 08. 2024

자고로 양반이란

가풍 익히기

"새아가는 앞으로 한 달에 한번 15일씩 내려와 가풍을 익히래이."

결혼하고 아기를 갖기 전까지 한 달에 15일씩 안동에 내려와 가문의 법도를 배우라는 시아버지의 명령이 내려졌다.  아버님 형제의 며느리들은 대부분 안동에서 태어났거나 대구, 포항 등 인근 지역에서 자라난 사람들이다. 당시 시할아버지도 살아계셨으므로 여전히 친척들이 집안의 대소사로 모이는 일이 많았다.  같은 지역에서 나고 자란 며느리가 아니기에 지역 문화를 잘 몰라 행여 친척들에게 책이라도 잡힐까 봐 걱정이 되셨을 것이다. 하긴,  결혼 초에는 아재, 아지매, 할, 할배, 형님 등 촌수에 따른 호칭부터 낯설었으니 시아버지의 걱정은 오죽했을까!



나이는 어리지만 친정엄마가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기 때문에 며느리는 당연히 시부모를 모셔야 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곳은 김포이고 시댁은 안동이니 그것은 불가능했다. 어차피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지 못하니 시아버지 말씀처럼 한달에 2주 정도 안동에서 함께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토요일에 남편이 안동에 내려주고 가면 2주간 시할아버지와 시부모님과 함께 생활했다.

내가 주로 하는 일은 시할아버지와 시부모님 삼시세끼 식사를 해드리거나 청소를 하는 등 그리 어렵지 않은 가사다.


1993년에 결혼했는데 당시 시할아버지 연세가 93세였다. 시어머니는 시할아버지 밥상 차리는 방법부터 알려주셨다. 숟가락과 젓가락의 위치와 간장, 된장 등 상에 올리는 장의 종류와 반찬의 수 등 평소 내가 경험했던 밥상과는 조금 달랐지만 그럭저럭 할 만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른들께 큰절을 드리고 밥상을 차리는 것 외에 딱히 가풍이라고 할 것까지 없었던 거 같다.  오히려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언어였다.

"새아가, 정지에 가서 정구지랑 무꾸  좀 가져 온나."

"네, 어머니!"

일단 대답을 하고

'정지는 부엌이니까 일단 부엌으로 가자.'

그러고는 부엌에 가서 한참을 생각한다.

'정구지? 정구지뭐지?'

진땀을 뻘뻘 흘리고 있으면 구세주 같이 막내시누가 들어온다.

"아가씨, 정구지가 뭐예요?"

"언니, 정구지는 부추를 말하는 거예요."

"아하, 그렇군요, 그럼 무꾸는요?"

"무꾸는 무이고요."

당시 대학생이었던 막내시누마저 없었다면 낯선 시댁에서 2년 같은 2주을 어떻게 견뎌냈을지...

그 덕에 지금도 막내시누와는 뭐든 잘 통하고 좋은 친구처럼 서로 의지하며 지내고 있다.



"느이 시댁도 참 유별을 떤다,  지금 시대에 무슨 가풍이 있다고 어린것을 혼자 내려와 있게 하는지..."

막내딸이 시집가서 고생하는 게 못마땅한 엄마와 언니들은 '그러게, 그렇게 반대하는 결혼 하더니 아주 쌤통이다!'라는 말을 사족으로 달며 언제나 내편 아닌 내편을 들어주곤 했다.  

어린 나이었지만 남편과 결혼을 결정하기 전 시댁에 먼저 내려갔었다. 성격이 강해 늘 시끄럽고 불편했던 친정 분위기와는 달리 시댁은 한없이 고요했고 마음이 너무 편했다.  그 분위기가 '결혼'이라는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가풍을 익히는 것'은 아기가  생기면서 생보다 빨리 끝났지만  그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물 위의 기름처럼 시댁식구들과 영원히 섞이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사랑해서 결혼했더라도 부부로 살다 보면 크고 작은 갈등과 위기를 맞게 된다. 그때마다 나는 짐을 싸서 시댁에 내려갔다. 그렇게 새아기 때처럼 시부모님과  2주 정도 있다 보면 어느새 마음에 응어리가 풀리고 평안을 회복한다. '가풍을 익혀라.' 시아버지의 그때 그 책략은 우리 부부를 28년 동안 지켜준 명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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