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지 않는 삶을 위해 정성껏 살아가기
[ 두려움 앞에서 ]
얼마 전, 계엄령이 내렸을 때도 이게 현실이 맞아? 하고 당황했는데,
오전에 여객기 사고는 처음 속보가 떴을 때만 해도
공중에서 폭발을 하거나 추락한 게 아니라 공항에 착륙 중 사고라고 해서
일부 부상이 있겠지만 큰 사고가 아닐 줄 알았다.
아니, 어쩌면 몇 번의 참사를 살면서 뉴스로 접해봤기에
애써 무탈하길 바란 것일지도.
바램과 다르게 큰 사고였고,
여러 가지 개인적으로 복잡한 마음과 함께 하루종일 마음이 가라앉아있는데,
아니다 다를까.
오후에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매번 그러셨다. 이태원 사고 때도, 경기도 폭설 때도, 오늘도...
무슨 일이 있을 때면 혹시나 딸이 그곳에 갔을까 봐, 무탈한 걸 확인해야 안심을 하시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주신다.
매번 그러셨던걸 알면서, 왜 나는 정작 먼저 전화드리지 못했을까.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넘어설 수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
전에 [만약에]라는 글에서 아기새와 만약의 경우에 한 약속을 글로 쓴 적이 있는데,
아무리 계획을 세우고 약속을 해도
그런 상상만으로도 두렵고 무섭다......
사람이 두려움을 느끼는 건 잃을 것이 있기 때문이고,
후회할 것들 투성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건 갑자기 든 생각은 아니고, 지난 8월에 아기새와 놀이동산에 다녀온 날 저녁에 한참 생각했던 주제인데.
나는 원래 태생적으로 겁이 많고 심장이 두근거려서 놀이기구를 아주아주 못 타는 편인데.
그날 아기새가 너무 졸라대는 바람에 평소 절대 안 타던 놀이기구 몇 개를 탔다.
그런데 이십 대, 삼십 대 때보다 무서움이 좀 덜 느껴지는 경험을 했다.
평소 같으면 너무 무서워해야 당연한데,
뭔가 인생을 살면서 "삶이 과연 인간이 계획한 대로, 의도한 대로만 되는 게 있었던가?"라는
생각이 찰나를 스치면서,
내가 두려워했던 건 사실은 놀이기구를 타다 죽을까가 두려웠던 것이 아니라,
아기새의 엄마로서 아이를 혼자 두고 갈 수 없다는, 그런 막연한 두려움이었는데,
참 이상한 게,,,,둘이 함께 있어서인지, 두렵지만, 혼자일 때보단 마음이 평안했던 경험을 했다.
그날 집에 돌아와서
사실 내가 두려워하는 건
막연히 '죽음' 자체가 주는 두려움이 아니라,
'죽음'으로 인해 소중한 이(것)을 잃게 될까 하는 두려움이었고,
'죽음'으로 인해 소중한 이를 아프게하고, 남겨두게 될까하는 두려움이었고,
'죽음'을 앞에 두고, 후회를 남기게 될까 하는 두려움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여름날 밤, 잠들기 전에 후회하지 않도록 더욱 사랑하고, 더욱 정직하게, 더욱 성실하게
아이를, 가족을, 나 자신을 살피고, 또 삶을 살아내야겠다 다짐했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여객기 사고를 보며
애타는 유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에게 말 한마디 제대로 남기지 못했을 고인들의
황망한 상황들에 마음이 무거워지고, 슬픔이 밀려왔다.
감기기운이 있어서 오후에 잠시 누워있다 아빠의 전화를 받고 간단히 끊었었는데,
저녁에 다시 전화를 드렸다. 걱정하시지 말라고, 더더. 안심시켜드리고 싶어서.
아기새에게도 오늘의 사고를 전하며 감사하고, 사랑한다 전했다.
또 나 스스로의 삶에게도 솔직하고, 정직하게 마음을 표현했다.
우리의 삶은 이렇게 한 치 앞을 알 수 없고,
우리의 선택이 옳다 그르다는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고,
우리의 그 선택이 설령 꽃길이 아닐지라도,
당장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스스로 후회가 없도록,
지금 현재에 진심을 다해 솔직하고, 정직하게, 정성을 다해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내게 주신 삶에 대한 나 스스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의무이자, 권리임을
기억하고 새기길.
오늘 밤,
아이에게, 부모님께,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과 감사의 표현 아끼지 않는 밤 되시길,
오늘을 온전하게 살아낸 것이 기적임을 감사하고, 기억하시길,
후회하지 않는 오늘의 마침표를 찍으시길.
여객기로 희생된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