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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표

마치 어제처럼, 하지만 결코 돌아갈 수 없는.

by 레몬트리

"여보세요"


밤 9시가 다된 시간, 퇴근하고 주차를 하고 있는데,

울리는 전화벨


이제는 낯설지만, 아니 사실은 3초만 지나면 익숙한 번호로,

아무렇지 않게 그가 전화를 걸어와선

아무렇지 않게 부모님의 건강을 묻고, 아이의 안부를 묻는다.


예전의 다정한 목소리로, 평안한 웃음소리를 섞어가며

마치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마치 어제 통화를 했던 사람처럼,


너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노라 본인의 안부를 이야기하며 묻는다.

혹시 시간 되면 저녁이나 먹을래?

혹시 괜찮으면?


벌써 1년이 지났고,

우리의 3년이 넘는 길고 긴 시간은

그 후로도 애도의 기간 1년을 보내며, 나의 마음속에선 이제는 과거가 되었다.


나를 나만큼 아는 사람,

아니 어쩌면 나를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

그래서 1년간 우리는 남들이 흔히 헤어지기로 하고 다시 재회하고,

아니면 미련이 남아 연락을 하고 이러는 일 없이

조용히 이별을 받아들이고, 서로를 떠나보냈다.

아니, 적어도 나는.


후회 없이, 미련 없이

쏟아붓고, 사랑하고, 그리고 마침표 앞에 뒤돌아 보지 않는 것

너는 못내 서운해하고, 냉정하다 했지만 그것이 나의 방식.


그리고 통화를 하다 마지막엔

"O대표님도 건강 챙기시고요, 바쁜 건 사업이 잘된다는 이야기인 거 제가 잘 아니까.

밥 잘 챙겨 먹고, 좋은 일이라 생각하고 파이팅 해요!"라고 했더니

서운해하며 그가 묻는다. "왜 그래?"


웃으며 답했다.

"나에게 오. 빠.라는 의미가 뭔지 잘 알잖아. 이제 그렇게 부를 수 없지!

이제 O대표님이시죠! 하핫" 나의 새초롬한 그 말에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호탕한 웃음소리 속에

사실은 못내 서운함과 씁쓸함이 가득 담겨있다는 걸 안다.

그가 나를 잘 아는 만큼

나도 그를 잘 아니까.


하지만 나는 나에 대해서도 잘 알지.

나는 그를 잘 이해하고 있고, 앞으로도 응원하고 축복하겠지만,

우리는 그때로 다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걸.

그에게 향한 사랑의 감정은 이미 끝이 났다는 걸.

우리는 마침표를 찍고도, 페이지가 넘어간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걸.

우리의 인연은 이제 사랑도, 이별도. 진짜 종지부를 찍었다는 걸.



그래도 통화를 끊기 전 "그래, 언제든 연락해"라는 그의 말은

고맙고 따뜻했다.

그도 나를 잘 알기에 내가 연락을 하지 않을거라는걸 알고 한 말이겠지만,

"나도 너를 응원해 항상" 그런 뜻이 전해져서


그것은 미련이 아니라, 사랑이 아니라,

헤어지고 끝난 인연이지만,

내가 좋은 사람을 만났었구나 하는 안도감과 고마움

그리고 나 역시 너를 예쁘게 잘 보내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하는 마음

우리의 인연이 아름다웠구나 하는 애틋함.


그렇게 정말 과거가 되었다. 너는 내게,



새로운 페이지를 펼치고도

사랑은 여전히 어렵고,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 사람의 마음이 이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고, 하지만 또 운명의 허락이 있어야 하는지

삶 앞에 작아지고, 낮아지는 겸손을 이제야 배운다, 불혹이 지나고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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