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갈대를 바라보며
[ 나를 믿어 ] ft. 제주 갈대
겨울에 제주를 찾은 건
동백꽃과 갈대를 보고 싶어서였는데
갈대를 마주한 곳마다
갈대를 위해 바람이 부는 것인지, 바람을 위해 갈대가 존재하는 것인지 헷갈릴 만큼
갈대와 바람이 늘 한 곳에 함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갈대는 한없이 연약하게 하늘대며 휘청이고, 바람은 칼같이 차갑고 매섭게 - 그렇게 함께
인자함이라곤, 따스함이라곤 없이 사정없이 몰아치는 매서운 바람에
나는 눈도 뜨기가 어렵고, 귀는 떨어져 나갈 것 같고, 코끝은 얼얼한데
그 수많은 갈대는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바람이 부는 방향대로, 부는 만큼 몸을 뉘이고, 다시 세우며,
흔들리고, 떨고, 휘청이고 있다.
'갈대'를 주제로 시를 많이도 쓰셨던 신경림 시인은
과연 어디 들판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 휘청이는 갈대들을 하염없이 바라봤을까.
연약하고 불안전한 우리의 모습을 '갈대'로 표현했던 시인은
어떤 시에선 갈대가 바람 앞에서 서로 기대어 연대하고, 공감하고, 무리 지어 산다고 표현하기도 했고,
또 어떤 시에선 갈대는 모여있지만 제각기 외로울 수밖에 없고, 서로 등을 돌리고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서로 너무 닮아서라고도 했고,
또 다른 시에선 갈대는 외부의 바람 때문이 아닌 자기 내면에서 스스로의 고독과 불안을 느끼며 혼자 조용히 속으로 운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비슷한 장면을 바라보여, 얼마나 많은 생각을 담았다 흘려보낸 후, '남기고 남긴' 마음으로 쓴 시였을까.
나는 그런 시인에 비할 바가 못 되는 터무니없이 초라하고 부족한 마음그릇이고, 부족한 시선이지만,
나만의 의미를 찾기 위해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갈대를 한참이나 바라보며 귀를 기울이며,
그림 같은 그곳에 섰다.
바람에 서걱대는 것 같기도 하고, 출렁이는 것 같기도 하고,
바람이 지나가는 방향에 시간 차대로 돌림노래처럼 소리를 내며
몸을 눕혔다 세웠다 하는 갈대들을 바라보니,
지나가는 시간에 인생을 맡긴 채,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주저앉았다, 다시 일어서고,
지금도 그렇게 애쓰며 살아가고 있는 너와 내가 보인다.
정말 잘해보려, 행복해지려, 무던히도 애를 썼건만,
냉정하고 모진 바람(운명) 앞에 한낱 연약한 모습으로
속절없이 무너지고, 쓰러지고 휘청이며 살아가는
애처롭기 짝이 없는 너와 내가 보인다.
하지만 그 가냘픈 줄기 속은 비어서
공허한 가슴을 안고, 이리 저리 휘청여도 끝내
갈대는 바람에 쓰러질지언정 부러지지 않았구나.
바람이 매섭고 차갑다고 피하지 않고 그저 그 자리에서 맞서 살아내고 있구나.
내가 너를 보고 싶어 달려온 이유가 이것이었구나!
갈대를 쓰러뜨리는 것도 바람이지만 갈대를 다시 일으키는 것도 결국 바람이었다.
내 삶을 쓰러뜨리는 것도 시련이었지만 그 삶을 다시 일으키는 것도 결국 시련이었고,
나를 쓰러뜨린 것도 사랑이었지만, 마침내, 나를 다시 일으킨 것도 결국 사랑이었다.
갈대가
가장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계절, 바람을 맞닥뜨린 언덕에 자리를 잡고
그렇게 세상 연약하고 불안한 모습으로 휘청이고 있었지만,
사실은 용감하게도, 도망가지 않고, 그저 그 자리에서 가혹한 운명을 마주하며
울음을 삼키는 서걱대는 소리를 낼지언정, 버티고, 버티며 기어이 살아내고 있었다.
너와 나처럼, 우리처럼.
내가 바라본 24년 12월, 제주의 갈대.
내가 간직하며 품고 온 마음.
그 한마디로 충분히 평안해지고 따뜻해진다.
바람 부는 언덕에도 예외 없이 쏟아지고 있는 따뜻한 햇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