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끌어안기 7 - 행복을 정의하기

잘못 정의 내린 ‘행복’으로 고통스러운 너에게

by Little Tree

“행복해지고 싶어요.”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이유도, 대학을 가야 하는 이유도,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 이유도, 학교를 다니기 싫은 이유도, 지금 친구들과 선 긋고 싶은 이유도 ‘행복’인 A에게

나는 물었다.


“그래서 지금 불행해?”

“네”


아니다. A는 잘 지내고 있다.

소소하게 재미난 것을 하고,

공감력이 부족한 T인 친구들이지만 중간고사 마친 후 롯데월드 다녀와서 신났었고,

성적 올라가서 뿌듯했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거야?”

“쿵짝이 잘 맞아서 말 안 해도 다 아는 친구가 있고, 1등급 받고, 맨날 놀러 다니면 행복할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사고 싶은 것은 다 사고, 즐겁고 기쁘고 재미있게 사는 삶

불편한 상황과 감정이 사라지는 상태를 ‘행복’이라고 정의 내렸으니

A는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고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 불행이나 고통이 사라지면 행복해질 것이라 착각한다.

서은국 교수는 책 ‘행복의 기원’에서 불행의 감소가 행복을 증가시키지 않는다고 말한다.

불행과 고통이 감소하면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사라질 수 있지만 행복을 느낀다고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은 삶을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깨닫지만

'행복 강박'에 사로잡힌 이들, 혹은 행복을 A와 같이 정의내린 사람들은

누군가와의 대화나 강의를 통해 깨달아야 한다.



“샘이 살아보니, 그런 삶은 없더라.”

선생님은 그렇게 살지 않냐는 물음에, 여전히 마주하고 있는 인생의 고비와 스트레스에 대해서 쭉 나열했다.


“돈이 많으면 해결되는 것 아니에요?”

시공간의 제약과 한정된 자원, 삶을 위해 필수적인 노동으로 인해 제한될 수 밖에 없는 삶, 예고 없이 찾아오는 고통에 대해서도 쭉 나열했다.


A의 얼굴에서 약간의 놀람과 거부감, 걱정이 느껴졌다.


최인철 교수는 행복한 감정이란 단순히 기쁨만이 아니라고 했다. ‘관심있는, 신나는, 강인한, 열정적인, 자랑스러운, 정신이 맑게 깨어있는, 영감받은, 단호한, 집중하는, 활기찬 (책 – 굿라이프)’ 등 다양한 긍정 감정들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이다.

자연을 보며 감탄하는 것, 비즈팔찌 만들기에 몰두하는 것, 봉사를 하며 뿌듯함을 느끼는 것, 친구를 돕는 것, 미래를 위해 새벽 2시까지 공부하는 것, 성적이 떨어져 좌절했으나 힘을 내서 공부하는 것, 밥을 먹으며 감사하는 것에서 느끼는 수많은 감정들이 행복감을 결정하며, 이것은 결국 단순한 즐거움과 기쁨을 넘어서 ‘의미’ 있음에 봉착한다.


행복에 대한 설명을 듣던 A는 개운하지 않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전 행복한 거에요?”

“글쎄. 너는 어떤 것 같아? 평안하고, 만족스럽고, 소소하게 즐거운 삶을 사는 것 같아?”

“그런 것 같아요.”

A와 나는 마주 보며 웃었다.


A가 행복에 대해 어떤 정의를 내리며 살아갈지 알 수 없다.

고통 없이 완벽하게 즐거운 삶을 꿈꿀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소소하게 즐거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안 것만으로 충분하다.



글을 쓰면서 생각해본다.

내가 동의하는 행복의 정의를 찾고,

저명한 심리학자의 행복 이론이라는 것을 무기 삼아

누군가에게 행복을 정의 내려주는 것이

기만적이고 월권이진 않을까.

고통 속에 있을 때 행복을 갖고 싶다며 울었던 내가

그들의 삶을 감히 알지 못하는 내가

행복을 정의내려 줄 자격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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