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끌어 안기 5 - 기꺼이 살아가기

by Little Tree

나는 만성 편두통 환자이다

중학교부터인가 시작된 편두통. 전조증상으로 눈앞에 반달모양의 흔적이 생긴다.

이 흔적이 점점 커진 후 사라지게 되면 누가 내 눈과 머리를 사정없이 망치로 내리친다.

그럴 때면 눈을 뽑아내고 싶어진다.

어떤 날은 치아까지 아파오는데 그 고통이 생각보다 너무 커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약을 먹고 한숨 자고 나면 심한 통증은 사라지지만 눈과 머리를 누르는 듯한 압박(편두통의 그림자라 부른다)으로 속이 울렁거린다.

대형 병원에서 CT까지 찍었고 머리에 이상이 없다는 소견을 받았다.

심리학을 공부한 후 알게 되었다.

스트레스로 인한 근육뭉침과 감정 억압으로 인한 신체화가 내 병명이다.

나는 편두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고1 때였나. 시험이 코앞이었는데 전조증상이 생겼고, 헛구역질이 날만큼 머리와 눈이 아파왔다.

두통약을 먹고, 거실 소파에 누워서 잠을 잘 것인지 공부를 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일어나 책상에 앉았다.

임용시험을 공부할 때는 타이레놀을 6알을 먹어도 아픈 것이 낫지 않아 방에서 데굴데굴 굴렀지만, 다음날 도서관에 갔다.

머리가 아프지만 시험을 잘 보고 싶은 나는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공부를 한다.

어제도 잠을 자던 중에 전조증상이 생기고 두통이 심해 두통약을 먹었고, 아픈 머리를 부여 잡으며 출근을 한다.

나는, 편두통 환자가 아니라 머리는 아프지만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A는 친한 친구들과의 갈등 후 일명 '팽' 당했다.

친구들은 자신의 세력을 모아 A를 공격했고,

A가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면 친구들을 어떻게 알고 현혹했는지, 곧 A에게 욕을 하며 떠나갔다.

1년이 넘는 시간 괴롭힘은 지속되었고, 학폭신고도 112신고에도 교묘한 괴롭힘은 지속되었다.

A는 '견디기'를 선택했다.

그 사이 학교를 못나오는 날은 다반사였고 정신과를 수시로 들락거렸다. 연락이 안되어 마음 졸이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 A가 지금, 경희대를 목표로 공부를 하고 있다.

반짝이던 아이의 불꽃이 꺼질 듯 꺼질 듯 꺼지지 않았던 것은 '잘 살고 싶음' 때문이었다.

대학에 가서 해보고 싶은 것이 많았고, 평범하지만 열심히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 싶었다.

그래서 지옥같은 학교에서 견디었고, 어둠속에 침잠할 때 누군가 내미는 손을 잡고 일어났다.


​"머리가 너무 아파. 이런 내가 너무 싫어. 공부고 뭐고 다 필요 없어."와

"머리가 너무 아파. 어쩌겠어. 그래도 공부해야지." 의 한끗차이.


"학교가 너무 싫어요. 친구들이 왜 나를 버렸는지 모르겠어요. 내 인생이 너무 싫어요."와

"학교도, 외로움도, 나를 비웃는 아이들도 너무 싫어요. 근데 잘 살고 싶어요."의 한끗차이.


한끗차이가 삶의 방향을 바꾸고, 삶의 결과를 바꾼다.

고통을 없앨 수 없지만 기꺼이 내 삶을 살아내게 하는 한끗.

한끗은 곧 '삶의 의미'를 말한다. 더럽고 아픈 삶이지만 지켜내야 하는 것이 있는 사람은 살아낸다.

누군에게는 대학, 누군가에게는 아들 딸, 또 누군가에게는 종교가 '한끗'이다.

또 어떤이는 '붙어 있는 숨', '살아야 하니까'의 한끗으로 삶을 견뎌낸다.


'한끗'이 있는 사람은 고통에 기꺼이 뛰어 든다. 아니 고통에서 기꺼이 살아가기를 선택한다.


작은 상담실로 찾아오는 아이들 저마다 아픈 삶을 살아낸다.

고통을 회피하고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들도 여럿 있다. 이 아이들이 마치 '한끗'이 없는 것처럼 보여 아플 때가 있다.

그러나 삶을 놓아버리지 않는다. 자신도 모르는 '한끗' 때문이리라.

'한끗'을 찾기 위해 잠시 멈추었을 뿐이리라.


그래. 잠깐 멈춘 너희들.

'한끗'을 찾게 되면 기꺼이 고통 속에서 살아갈 너희들. 아니, 지금도 살아내고 있는 너희들.

그렇게 담담히, 기꺼이 삶을 살아낼 너희들을 기대하며, 너희들의 '한끗'을 찾자. 그때까지 기꺼이 기다려 줄게.

작지만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묵묵히 그 자리에서 너를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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