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끌어안기 10 - 1%의 힘

by Little Tree

학교에 유일한 친구가 한명 있어요.

저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퍼지고 놀던 애들이 저를 떨궜는데 이 친구는 괜찮대요.

자기는 소문 같은 거 안 믿고, 소문이 사실이라고 해도 자기는 상관없대요.

진짜 얘 땜에 학교 다녀요. 다른 애들이 욕하든 말든 신경안쓰려구요.

죽고 싶었는데, 지금도 너무 힘든데 이 친구가 있어서 너무 감사해요.


학교에서 소문이 퍼지는 속도는 바이러스만큼 빠르다.

삽시간에 이웃 학교들로 자신의 이야기가 퍼져나가고

언제 찍혔는지 모를 사진들이 돌고 돌아 자신에게 전달된다.

어제까지 함께 점심을 먹던 친구들이 갑자기 따로 먹자 하고

반 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시시덕거린다.

학교의 노는 학생들이 무리지어 교실로 찾아오더니 ”쟤야?“ 하고는 빤히 바라보고 간다.

길에서 누군가 나를 바라보면 ‘날 아나? 소문 들었으면 어쩌지.’ 라며 빚쟁이도 아닌데 자꾸 숨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나를 지지해주는 친구 한 명이 있으니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학생이

나는 너무 이뻤다.


“너 진짜 최고다. 어떻게 이런 기특한 생각을 했어?”

“어차피 저 싫어할 애들은 제가 뭘 해도 싫어해요. 그냥, 나 좋아하는 친구한테 집중할래요. 그게 제 정신건강에 좋아요.”

”인생은 49와 51의 싸움이라고 하거든. 넌 이미 이 사실을 알았구나. 진짜 멋있다.“


우리는 삶의 1%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 성적, 가족, 꿈, 건강 등등 학생이 가진 1%를 찾아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친구 1명이 있다는 사실에 집중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학생의 뒤꽁무니까지 사랑스러웠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힌 이들은 노동을 하거나 가스실로 보내지는 것, 2개의 길밖에 없었다.

하루 한 그릇의 수프를 제공받았으며, 자는 시간과 수프를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쉴 새 없이 일을 했다.

더러워지고 허약해지는 사람들, 한 그릇의 수프를 먹을 자격이 없는 사람은 가스실로 보내졌다.


숨 쉬는 것만으로도 힘든 수용소에서 가스실로 가지 않기 위해 건강해보이려 면도를 했던 사람이 있었다.

굶주림의 시간 끝에 주어진 스프 한 스푼을 다른 이에게 건내는 사람도, 마실 물을 조금 남겨 얼굴을 닦는 자도 있었다.


이들에게 1%는 무엇이었을까.


수용소로 끌려오면서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던 딸

서로의 고통을 헤아리고 약한자를 돌보는 희생의 고귀함

환경과 상황, 타인으로부터 침해될 수 없는 존엄


고통의 끝자락에서 1%는 결국, 사랑이었다.


가족, 타인, 자신을 향한 사랑이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

학생을 견디게 한 것도 100%의 행복이 아니라 1%의 사랑이었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친구에 대한 고마움과 스스로에게 상처주지 않고 아껴주는 사랑은

99%의 고통 속에서도 견디고 살아가게 했다.


결국 1이 99를 이겼다.


몇일 뒤 학생은 학교에 나오지 못했고, 일주일에 한번 학교에 와서 내 얼굴을 보고 갔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마스크와 모자 안에 숨었다.

"신경쓰지 않을거에요." 라고 당당히 말했지만

곱지 않은 시선들과 선명하게 들리는 비웃음은 칼이 되어 찔렀고

견디다 견디다 지쳐서 맥이 풀린 학생은 모든 것을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학교에 잘 다니면 좋겠다는 나의 욕심.

1%를 찾았으니 교실에서 당당하게 앉아있길 바랐던 나의 실망은 뒤로 하고

이전에 찾았던 1%를 훑었다.


나를 믿어 준 친구, 대학교, 서울나들이, 딸기우유, 노래

가족에게 당당하고 싶은 마음, 괴롭혔던 학생들에게 보란듯이 잘 사는 것..


고통의 무게가 커지면서 저 밑으로 가라앉아 사라진 것 같은 1%를 나는 기어코 끄집어냈다.

그 1%에 나의 온 에너지와 힘을 실어주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견디고, 또 일주일을 견뎠다.

부모님을 설득하여 정신과에 가기도 했고, 잠수를 타서 사람 애간장을 녹이기도 했다.


3개월이 지났을까, 학생은 이전의 당당했던 모습으로 상담실에 들어왔다.

대학교를 가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고 연애를 한다고 했다.


이후 학생은 상담실에 오지 않았다.





해가 뜨거웠던 여름날, 소방훈련을 하기 위해 나갔던 운동장에서 친구와 함께 웃고 있는 학생을 보았다.

나도 학생도 서로를 못본척 했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잘 살고 있구나."

"네. 저 잘 살고 있어요."

라고 말했다.


1%가 이기는 것을 수도 없이 지켜보았다.


아파트 난간에 아슬하게 서있던 학생은 무사히 졸업했고 해외 여행을 갔다.

수도 없이 그어진 빨간 선들만큼 아팠던 학생은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힘겹게 졸업을 하고 대학에 들어갔지만 결국 자퇴한 학생도 살아가고 있다.


1%의 긍정

1%의 기쁨

1%의 선함

1%의 노력

1%의 용기

1%의 사랑


1%의 가치를 안다면 삶의 99%가 고통일지라도 살아낼 수 있다.

의미있는 1%는 그 어떤 것보다 힘이 있다.

나는 1%의 힘을 믿는다.





나는 학교 상담교사다.

작은 한국의 작은 학교, 그 안의 작은 상담실에서

아주 작은 1%를 찾는

나는 아주 작은 상담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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