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고 생각했지만 몰랐던 것들.
빈야사를 처음 누가 시작했는지를 아는 것의 의미가 있을까? 자료를 뒤적이며 정리를 해보지만 찾을수록 시작점을 알아가는 것이 왜 중요한지가 아리송하다. 대충 정리하면 전해져 내려오는 고서의 내용을 어느 지도자가 전승하여 이어져 오다가 뛰어난 누군가가 정리해서 전파를 시작했고 그 효과를 모두가 인정해서 하나의 고전적인 테마로 굳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아쉬탕가나 빈야사나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요가원의 프로그램의 설명에 빈야사와 아쉬탕가가 일순위과 이 순위를 다툰다. 그리고 수업을 들어보면 빈야사와 아쉬탕가의 동작이 겹친다. 특별히 왜, 빈야사와 아쉬탕가를 다르게 하는 것을 무엇일까. 첨엔 아쉬탕가를 찾아보다가 빈야사가 우선이라 판단한다. 그리고 그 차이는 널리 알려진 아쉬탕가의 특별함일 뿐, 빈야사가 기본임을 발견한다.
빈야사는 호흡과 동작이 결합된 시스템을 의미한다. yogajournal의 consciousness in motion:Vinyasa
( Learn About the Origins and Meaning of Vinyasa Yoga | Shiva Rea)에서는 호흡(들숨, 날숨)과 함께 움직이는 동작들이 마치 흔하게 볼 수 있는 자연의 현상과 같다고 이야기한다. 단순히 유기적인 외형뿐만 아니라 달과 해의 움직임과 같은 자연적인 현상에서도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빈야사의 의미는 모든 것이 타고난 능력을 피워내기 위해 성장하기 위한 순서를 차례차례 밟는 것과 같다. 빈야사를 통해 지금의 내가 가진 본연의 능력을 끌어낼 수 있으며 그리하여 한 단계씩 다음을 향해 가는 것이다. 산스크리트 어로 nyasa : to place이고 앞 단어는 vi:in a special way이다. 빈야사는 산의 정상을 향해 나아가듯이 다음으로 가는 아사나들의 연결을 이야기한다.
아사나가 호흡과 함께 완성되어 빈야사가 이어지면서 탁한 피가 정화되어 몸을 깨끗하게 한다. 피가 끓는다라는 직관적인 표현이 쓰이기도 한다. 확실히 우짜히 호흡과 정확한 아사나로 이어지면 금방 몸이 덥혀진다. 좋은 수련을 하게 되면 그저 동작을 따라 하는 수준과 다르다. 피가 끓는 것까진 가지 못해도 몸의 구석구석에 평소에 움직이지 못하는 곳까지 순환하는 것 같다. 별다른 움직임이 없어도 땀이 난다.
다양한 빈야사들이 존재하는데 그중 가장 효과적이다는 평을 받으며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것이 The six series of Pattabhi Joisʼs Ashtang Vinyasa Yoga이다. Pattabhi Jois의 스승인 the great South Indian master Krishnamacharya는 빈야사를 더 넓은 영역으로 확장시켜 특별한 아사나를 반복하는 수련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요가에 접목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보았다. 아무리 수련을 열심히 한다 해도 요가하는 시간을 벗어나서까지 영향을 미치기가 쉽지 않은데 그는 이를 넘어서서 삶의 순차적인 리듬까지도 빈야사를 반영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스스로를 보살피는 자기 성찰, 일, 인간관계까지도 모든 것에는 빈야사가 있다는 것이다. 아...... 너무 먼 얘기다.
요가 이론 혹은 철학의 끝에 가까이 간 사람들은 해탈이나 도를 득한 사람인 듯 삶에 요가를 적용한다. 그 시작은 몸의 움직임이나 명상으로 이어진다. 이는 또 다른 영역 같다. 종교 같기도 하고 단순히 심리적인 가르침 같기도 하다. 거부감을 갖자면 끝없이 헛소리가 될 것이고 조금씩 받아들이면 인생의 팁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아직은 기, 에너지를 운운하며 인생에 대한 정답을 내는 것은 너무 어렵다. 이건 천천히 받아들이는 것으로.
다시, 빈야사 자체에 대해서 이어가 보자. 특정한 아사나를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고 하자. 그다음 아사나를 이어가며 완벽히 흐름을 끓어가지 않는다면 또 그다음 아사나를 진행하며 성장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매일 몸과 마음이 변화하고 어느 날은 잘 되던 동작이 갑자기 안 되는 날도 더러 있다. 빈야사의 모든 동작을 외워서 정확히 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그 성취감에 몰두하게 되어 스스로의 상태를 제대로 체크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빈야사는 다음으로 이어가는 연결고리 같은 것이다. 가끔 목적에 몰두하다 보면 본질을 잊는 경우가 있다. 완벽한 요가를 하기 위해 기본적인 상태 확인을 잊어서는 안 된다.
빈야사를 통해 키워진 안정적인 힘은 계속 유지하고 지속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모든 동작은 들숨과 날숨은 완급을 조절할 수 있는 동작들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계속적으로 힘을 줘야 하는 동작은 없다는 뜻이다. 아사나는 한 장의 이미지로 표현할 수 있지만 빈야사의 연속적인 동작은 한 장안에 표현하려면 두 가지 색깔로 구분을 하거나 겹칠 수 밖에는 없다. 만일 요가를 하는 내내 힘이 들어가고 기운이 넘치는 것 같다면 언젠가는 그 힘을 내려놓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뜻이다. 불행하게도 내가 이 경우인데 그동안 해온 모든 열정적인 운동의 집합체인 허벅지의 힘이 빠지지가 않는다. 조화로움을 얻기 위해서 강해지는 것보다 약해지는 것이 어렵다.
빈야사는 아사나의 연속이지만 시작과 끝이 있는 완성형이다. 아사나마다 작용하는 부위가 다르기에 완성을 통해 보완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잘 되는 아사나가 다르다. 잘한다고 한 가지만 하다 보면 몸에는 불균형이 온다. 그래서 전체의 빈야사를 통해 상충되는 부분을 잡고 약한 부분을 비슷한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보완을 하는 것이다. 기왕 할 거면 끝까지 자기만의 호흡의 끝을 놓지 말고 완성을 하자.
Eddie Modestini( alongtime student of K. Pattabhi Jois and B.K.S. Iyengar who leads YJʼs online course)가 5 things you didn't know about vinyasa yoga에서 언급한 내용들이다.
1. 운동이 아니다.
: 빈야사를 땀을 많이 흘리는 체력단련용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는 매우 섬세하고 아름다운 내성적인 수련이다. 운동이 되는 것은 부가적인 것일 뿐.
2. 모든 것은 몸의 장기까지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이다.
: 몸의 유연성, 강함에 집중하며 시작하지만 근육이 열리면 다음은 관절이고 모든 관절이 열리면 최종적으로 장기까지 도달하는 것이다.
3. 움직임 안에 명상이 있다.
: 명상의 주안점이 마음에 있듯 빈야사의 주안점도 마음이다. 역동적인 명상이다. 호흡, 자세, 반다와 아사나는 빈야사 요가를 통해 강한 정신집중을 길러낸다.
4. 하타 요가 호흡법이다.
: 모든 호흡은 코를 통해 이뤄지며 한 동작에 두 번의 호흡이 이뤄지지 않는다. 천천히 부드럽게 동작과 일치돼야 한다. 처음엔 어렵지만 익숙해지려면 의식하며 집중하는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
5. 각 자세에는 DRISITI:시선이 있다.
: 호흡, 자세, 시선 세 가지가 각 아사나마다 존재한다. 그리고 시선은 특정한 지정된 곳이 분명히 있다.
5가지 모두 내가 모두 고개를 열 번 끄덕일 정도로 수련을 하며 느꼈던 내용이다. 처음 요가를 접할 때 단순한 운동으로 여기며 한껏 땀을 내며 뿌듯해하였던 내가 떠오른다. 어느 단계까지 올라가야 모든 것을 완벽하다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요즘 수련하며 듣는 얘기나 깨달은 바는 결코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빈야사 수업에 익숙해진 나도 가끔 호흡을 놓치고 빨라지거나 한없이 느려지곤 한다. 갑자기 아득해지며 시선을 잃는 경우도 많다. 모든 빈야사를 다 외울 만큼 똑똑하고 영민한 나이도 지나갔다. 다만 수련을 거듭하다 보면 선생님의 한 번의 눈짓에도 기억할 정도로 익숙해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려면 몸으로 익히기 전에 인터넷의 넓은 바다에서 각종 빈야사를 찾아 눈으로 익히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생각보다 잘 안된다고 조바심 내지도 말고 너무 빠른 동작 전환에 힘겨워하지도 말자. 모든 것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차곡차곡 쌓아 올려가자. 소중한 내 몸과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요즘 점점 더 어려운 아사나를 잘하고 싶은 나야말로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