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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A Sep 24. 2017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선택이 내게 있다면

꼭 해야 하는 일이 오늘도 없다. 어제도, 내일도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없는 하루가 계속되고 있다. 먹는 것과 싸는 것을 제외하고는 전혀 피곤할 일이 없는 하루이다. 여행에서 매일 써야 하는 비용의 후덜덜함을 겪은 후라 절약 정신이 갑자기 투철해졌다. 방콕, 집밥의 연속이다.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욕심이 사라졌다. 예쁘게 차려입고 빛나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해가 좋아, 날이 포근해, 바람이 시원해, 갖은 이유를 들어 멀리 나가곤 했는데 이젠 내 엉덩이는 차분히 거실의 소파에서 찌그러지는 것을 선호한다.


온갖 이유로 대며 나가야만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항상 외출에 목말랐다. 탈출 욕구랄까. 회사 안에서도 그랬다. 종일 모니터를 쳐다보다 고개를 들었을 때 회사 복도가 눈에 들어오는 자리에 배치되면 어찌나 속상했던지. 어떻게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볼 수 있는 자리를 고르고 골랐다. 아침 일찍 나가 혼자 있노라면 남들이 오기 전에 블라인드를 모조리 다 올려버렸다. 출근하는 이들은 아침 햇살에 눈부시다고 찡그렸다. 혼자서 사무실 같지 않은 느낌을 만들기 위해 분주했다.  눈부시다는 소장들의 눈총에 어느 순간 그마저도 접어버렸지만. 길가의 트럭에서 죽이기 딱 좋은 화분을 사서 키웠다. 어떻게든 키워낸 아이들이 생생하게 살아서 잎을 펼칠 때면 내가 사무실에 앉아있는 동안 죽어가는 느낌이 지워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얘들도 살아있는데 내가 죽어있을 리가 없다는 유치한 마음이랄까.


매일 사무실에 앉아있는 직장인으로서 살아가지 않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다. 엉덩이와 허리, 목이 비 정상적으로 굽어갈 수밖에 없게 일해 놓고서는 퇴근 후엔 열심히 요가를 했다. 개떡 같은 회사 의자를 어딘가에 치워버리고 비싼 돈 주고 산 허리 디스크 방지용 의자에 앉았다. 컴퓨터에 코를 박고, 도면에 온 정신을 뺏기고, 말도 안 되는 미사여구를 쥐어짜 내던 시절, 머리 속에 조금이라도 다른 것을 채워 넣겠다고 전공과 전혀 상광 없는 말랑말랑한 책을 읽었다. 아무리 경력이 쌓여도 제자리인 업무와 사라지지 않는 역피라미드의 구조에 지쳐 승진 따위 별거 아니라고 겉으론 콧방귀를 뀌었다. 속으론 명함이 바뀌는 게 어디냐고 승진에 온 신경을 다 썼다. 물론 승진을 했음에도 일이 변하지 않았다. 뽐내기 위해 승진한 것이 아닐 터인데 지위가 변했음을 알리고 싶어 새로운 옷을 사고 이미지를 바꾸려고 했다. 그러니까 꼰대다운 포스가 필요했다.  나 실장이야 막 이런 아우라를 뿜어내고 싶었다. 프로페셔널은 일로 말해야 함에도 이미지로 보여주는 것에 더 신경을 썼다. 남들은 왜 외모로 모든 것을 판단하냐고 비아냥 거리던 내가 일 년에 한 번 입을까 말까 한 옷과 브랜드 화장품에 쓴 돈이 얼마였던가.


그러니까 이 모순적인 도돌이표가 지난 나의 일하는 삶이었다. 일하는 시간에 대한 정당한 대우까지는 아니더라도 적당한 돈을 벌었기에 ‘일’ 그 자체에 대해 불만을 갖지 않았다. 일하는 삶에 보람이 사라지니 그 또한 힘든 시간이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다.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일에 대한 가당치 않은 자존심은 어찌나 높았던지, 별 거 아닌 일에 목숨걸며 일했다. 나 자신에게도 포장하는 일이 필요했다. 아주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야 했다. 그마저도 오래 가진 않았지만.


새삼스럽게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건 아무 할 일이 없어 무기력하게 채널을 돌리다 만난 어느 영국 할머니 때문이다. 영국 할머니가 인구의 1/3이 60대 이상인 일본에 여행을 가서 일본 노인처럼 살아보는 것이 골자였다. 요리사인 할머니는 일본의 실버센터에서 면접을 보고 교토의 큰 레스토랑의 식당 주방 보조로 들어간다. 함께 여행하는 할아버지는 서빙으로 채용된다.  같이 일하는 일본 노인들도 그리고 움직이기 힘들어 보이는 영국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죽는 날까지 일하고 싶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아 얘기한다.


매일 놀 수는 없잖아. 일하지 않으면 죽어있는 것과 같아.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내가 해오던 일을 떠올려 보니 더더욱 그렇다. 오히려 일할 때 죽어있었다. 일하는 삶이 반가워지려면 나이를 한참 더 먹어야 하는 걸까. 아니면 내가 너무 큰 욕심을 부리는 걸까.  일에 대한 환상과 기대가 무너졌지만, 모든 것을 만족하는 일을 찾고 싶다. 아니, 오히려 지난날들로 인해 더 좋은 일자리에 대한 소망이 간절해진다. 직장인으로 돌아가는 것을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자 말하지만 그 또한 쉽지가 않다. 까딱 잘못 사업을 벌여 돈, 시간을 버리게 되면 낭패이다. 나는 이제 청춘이 아니다. 돌아갈 시간이 없는 중년이 코앞이다. 돈을 조금 덜 벌더라도, 작은 사무실에서 일하더라도 제대로 된 일다운 일을 하며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주저 없이 선택할 텐데, 중간 지대가 사라졌다. 대기업에서는 중소기업을 착취하고 중소기업은 노동자를 착취한다. 일의 퀄리티는 점점 낮아지고 누가 더 쥐어짜느냐가 관건이다.


공채를 시작한다는 뉴스와 꿈의 직장에서 공공연히 벌어졌던 채용비리에 관한 뉴스가 동시에 쏟아져 나온다. 내가 취업을 하던 그 해에도 교수들은 대기업에 청탁을 했다. 회사에선 부모의 직업을 조사했다. 학연, 지연, 혈연은 모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해준다. 모기업의 임원과 대학교수를 부모로 둔 이들이 흔했다. 서울의 내로라하는 대학에서 합격한 숫자는 몇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채용비리가 대단한 정치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님을 대기업에 입사한 사람을 알 것이다. 그 좁은 문이 누군가에겐 좁지 않았음을. 뉴스에 나오는 정치인 청탁보다 뿌리 깊은 우리만의 리그가 별도로 있음을.  나는 일벌레 내지는 부품으로 소비될 인재였다. 알면서도 입사해 놓고서 매일 탈출을 꿈꿨다.  


내게 일하는 삶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서 똑같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허공에서 맴돈다.  어쩌다가 우리의 일터는 극단으로 치달은 걸까. 대기업 외에는 착취가 기본으로 장착된 곳뿐이다. 사기를 치지 않고 인건비를 축내지 않고 협력업체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회사는 오래가지 못한다. 건전한 일터를 찾아 헤매다 보면 그나마도  대기업이 답이다.


이해찬이 교육부 장관이던 시절, 나는 학원, 방과 후 수업 등의 정규수업을 제외한 나머지 것을 거부했다. 사교육 없이도 공부를 잘했기에 그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했다. 내가 받은 교육방식 중에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정해진 숫자, 상위 몇 명이 되기 위해 모두가 노력하는 것이다.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상위의 정해진 숫자를 늘릴 수는 없다. 그럼 그 외의 나머지를 위한 다른 교육을 해야 하는데 학생도, 부모도 목표는 한 가지만 바라봤다. 모두가 정해진 순위 안에 들어가기 위한 공부를 했다. 이미 순위에 들어가 있던 나의 반항은 남들이 보기엔 그저 가진 자의 횡포였을 뿐이다. 누구도 정해진 순위 외의 교육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당사자인 우리조차 반항하지 않았다. 배경이 고등학교에서 대학교, 회사로 변했다. 내가 일하던 곳 역시 순위 경쟁이다.  모두가 똑같은 자리를 원한다. 그 외의 다른 일자리에 대한 투자도 고민도 아무도 하지 않는다.


내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은 남들 눈에도 좋아 보인다. 그러나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이의 숫자는 정해져 있다. 좋은 자리를 원하는 이들은 내가 그 자리에 앉을 거라는 희망 하나로 그 자리에 앉지 못하는 이를 위한 정책과 대안보다 좋은 자리에 들어가기 위한 훈련을 원한다. 그리고 내가 들어가면 노력에 의한 대가라고 생각하고 낙오되면 세상의 부조리를 탓한다. 자리에 앉아본 이들은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나처럼 중간에 일어서서 다른 문을 두들기고자 하면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다.


나는 어쩌다 그 자리를 경험했다. 업계에서 나름 좋은 대학이라고 꼽히는 곳을 졸업해서 가장 연봉 놓은 회사에 들어갔다. 나 역시도 그들만의 리그에서 빠지지 않는 아이템을 가지고 있었던 거다. 누군가의 부러움 앞에서 으쓱했지만 또다시 경쟁이 시작된다. 우리 안에서도 낙오자가 있었다. 낙오자가 되기 전에 서둘러 이 쪽 업계에서 빠져나오긴 했는데 나와도 딱히 대안이 없다. 일의 질과 불공평한 경쟁체제도 문제이지만 더 이상 위로 좁아지는 지위체계로는 계속 낙오자만 나올 뿐이다. 그럼에도 내부에서는 아무 목소리가 없었다.


나 역시도 그 자리에 앉기 위한 교육을 받고 유지하기에만 급급했다. 그 외의 나머지의 삶, 나머지의 일하는 환경에 대해 무지했다. 그 무지과 무관심이 우리들의 일자리를 흑과 백으로 만들었다. 아주 좋은 조건과 아주 열악한 조건 사이에 중간지대가 없다.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고민조차 하지 않는다. 당장 눈 앞의 숫자에 대한 정책만 나열될 뿐이다. 진짜 일자리의 문제는 숫자가 아니다. 질이다.


열혈적으로 노조를 지지하는 전교조 아빠를 둔 나는 대기업의 차명회사에서 구 년을 일했다. 대기업에 다니며 나 역시도 우월감에 우쭐대며 살았다. 내가 그만두기 전 회사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우리는 치열하게 싸우곤 했다. 노조가 없는 회사에 대해  개인의 이기심이 자초한 결과로 치부하는 아빠와 내부의 어쩔 수 없는 현실에 공감하는 나는 치열하게 싸우곤 한다. 이제는 알겠다. 아빠의 말도 맞고, 나의 말도 맞음을.


성인이 되지 못한 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냐며 나는 학교 교육과 줄 세우기에 반항하기를 포기했다. 대학교의 등록금에 못 미치는 교육환경과 내용에 처음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것을 요구할 생각조차 못했다. 그저 타이틀에 만족했을 뿐. 그리고 회사와 일에 대해서도 같았다.

 

평범한 내가 약간의 우월감에 취해서 나 하나 잘 지내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이에 일터는 극단으로 치달았다. 이제야 내가 쥐고 있던 선택지가 이미 줄어들었음을 깨달았다. 누굴 탓하랴. 나 또한 사회의 구성원이였고 내 이기심 역시 평범한 이의 보통의 마음인 것을.  


단순히 노는 삶과 일하는 삶 중에 고르라면 당연 일하는 삶이다.  

문제는 어떤 일을 어떻게 하냐는 거다. 어떻게 일하고 싶은지 꿈을 꿔본다. 백수는 꿈 꿀 시간이 많다. 그 꿈이 현실로 이뤄지길, 좀 더 많은 선택지가 주어지는 날이 어서 오기를 빌어본다.

오피스들로 가득찬 서울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그들은 어떤 직장인일까. 내가 아는 대기업이 아닌 좋은 일, 좋은 직장이 존재하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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