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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A Nov 02. 2017

회식, 그 아름다운 시간을 기억하며

술 먹고 미친 듯이 웃고 노래하고 춤추기

오랜만에 노래방에 갔다.


아주 오랜만에 리듬에 맞춰 탬버린을 두들겨본다. 오랜만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기억한다.  두들겨라. 흔들어라. 소리 질러라. 시간이 쏜살같이 과거의 그 시간으로 돌아가버린다. 낡고 오래된 노래방의 벽지처럼 나의 낡고 오래된 기억 속에 분명 똑같은 벽지를 바른 노래방이 있었다. 그 속에 20대의 대학생, 그리고 30대의 직장인이 있다.


기억이 또렷해진다. 흔들리는 조명이 번갈아가며 색을 바꾼다. 촌스러운 파랑과 보라, 자주색 같은 핑크. 그 찬란함만큼 유치 찬란했던 나의 청년시절이 둥실둥실 떠다닌다. 술에 취했던가. 밤에 취했던가. 그렇게도 휘청거리며 홍대, 신천의 뒷골목과 선릉의 뒷골목, 마지막을 장식했던 방이동의 뒷골목까지. 전혀 다른 지역의 이름이 다 다른 술집들이였지만 그곳에는 항상 우리가 있었다. 집에 가지 못해, 뒷골목을 서성이던 나의 중년의 상사들은 아직도 그곳을 서성이고 있을까. 나는 더이상 그 뒷골목을 갈 일이 없다.


대학생일 때 우리는 노래를 부르러 노래방에 갔다.  노래방에서 누가 노래를 잘하는지 서로 뽐냈다. 공강 시간에 노래방에 가며 나의 노래실력은 늘었다.  컨디션이 좋은 날 실컷 내지르고 다시 수업을 들었다. 굳이 술을 먹지 않아도 친구들과 함께 하는 그 시간에 노래를 부르며 지난 인연을 생각하거나 어렴풋이 기억나는 풋사랑을 더듬곤 했다.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실컷 그리워하고 실컷 즐거워했던 시간들. 언젠가부터 노래방에 가는 일이 뜸해졌다. 오래된 유행처럼 노래에 취하던 건 철이 덜 든 풋내기들의 놀이 같았다.  그렇게 노래방과 술집이 지워졌던 대학생으로서의 마지막 해, 나는 직장인과 연애를 했고, 지금은 떠나온 직장의 합격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다음 해, 운동화 대신 구두를 신고 6시 반 출근을 시작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선 나는 늦은 밤, 이른 새벽 집에 돌아왔다. 3차쯤에 노래방에 가곤 했다.  1차는 맥주집, 2차는 소주집, 흥이 오른 우리가 마지막으로 들른 곳이 노래방이었다. 노래방까지 살아남은 이의 숫자는 1차의 거의 반쯤. 그리고 노래방에서 추가로 더해주는 서비스 시간이 끝나고 정말 집으로 갈 시간이 되면 그 반이 남아있었다. 그러다 진정한 고수들이 붙으면 새벽의 어스름한 푸른빛을 보고 들어가기도 했다. 친해진 동기들은 더 이상 어색해진 간극을 메꾸기 위한 3차 노래방을 가지 않았다. 주구장창 술을 마시던 신입사원 연수 시절, 뻔하디 뻔한 인사팀의 농담에 울음을 터트렸던 동기 오빠는 다른 회사를 다니고 있고, 지금 그 회사엔 동기들 중 반을 조금 넘기는 사람들이 남아있다.


꼭 노래방을 좋아하는 상사가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찰랑찰랑을 부르면 나이 지긋하신 분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 노래를 어떻게 아냐며, 언제 배웠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나는 트로트를 잘 불었다. 내 기분이 좋을 땐 진심을 다해 목청껏 내지르는 여성 보컬의 노래도 즐겨 불렀고 가끔 간지러운 아이돌 노래도 불렀다. 술을 먹지 않아도 술 취한 사람보다 더 흥이 넘쳤다. 마구마구 쏟아내는 그 웃음 앞에 나는 그저 즐거웠다. 지겹도록 싫었던 직장 상사의 뻔하디 뻔한 레퍼토리의 분위기 잡는 노래만 빼면, 그럭저럭 모두가 사랑스러운 밤들이었다. 그 사랑스러운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면 지난 날의 친분이 느껴지는 눈인사를 하곤 했다. 서로에게 풍겨지는 술냄새를 모른척 하며.


어느 프로젝트였는지 아직도 기억나는 그 촌스러운 디자인의 건물은 다행히도 똑 떨어졌다. 잘하면 디자이너의 탁월한 능력, 못하면 무능한 영업의 정보력 부족 탓을 해댔다. 누구 잘못인지 아무도 책임을 묻지 않지만 같은 위로를 서로에게 한다. 그 위로는 돌고 돌아  1차, 2차까지 억울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하나같이 한숨을 토해내듯 술잔을 기울였고 최선을 다했던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던 것도 같았다. 물론 나는 아니였다. 내가 좋아하는 상사, 지금은 임원이 된 그분의 헛헛한 웃음에 마음이 아팠다. 진심으로 속상했던 마지막 프로젝트였다. 그 이후로 나는 회사 일로 속상해 하지 않았다.  이런 쓸데없는 감정이라니. 가끔 흔들리는 후배들의 어깨를 다독이며 그 딴일로 속상해하지 말라며, 그 시간에 네 여자 친구이나 챙기라 말하는 쿨한 누나로 바뀌어 있었다. 어쩌면 가장 순수했던 어설픈 직장인 시절은 그 회식의 마지막 장소, 노래방에서 끝이 났다.  어둠이 드리워진 상사의 얼굴에 눈물이 맺히지 않게 즐거운 노래만 불렀고 그때 아, 나는 이런 좋은 사람을 만나서 참 다행이라며 감사했다. 첫 직장, 첫 갈등, 포기와 절망, 지금 뉴스에서 듣곤 하는 신입 사원들의 고민은 직장인이라는 분야가 생긴이래로 변화가 없다. 그 때 회식은 우리의 속상하고 억울한 직장살이의 분출구였다. 지금은 그것마저도 직장인의 버려야할 관습으로 변했지만, 직급과 상관없이 함께 놀았던 그 시간이 아련하다.


오랜만의 노래방이다. 백수와 놀아주는 고마운 사람들은 나와 일로 엮이지 않고 나의 전공과도 전혀 상관없는 그냥 동네 오빠들과 동네 언니와의 노래방이다.  


그 오랜만의 노래방, 짧은 두 시간 동안 진하게 구 년 동안의 직장인으로서의 노래방이 기억났다. 그래서 더 즐겁고 더 아쉽고 더 기뻤다. 내게 기억되는 회식이 매번 괴롭고 귀찮고 힘들지만은 않았음을 깨닫는다. 어렵게 얽히며 서로를 옭아매다가도 술 한잔에 그저 묻어버리고 다시 함께 하자며 형님 소리를 해대던 그들과의 기억이 다시 재현될 일이 없을 것이다. 회사에 들어간다 해도 더 이상 누구와도 갈등을 만들리가 없다. 나는 사회생활이 어려운 초년생도 아니고 유순해서 가슴에 다 쌓아두는 착한 직장인도 아니다. 누군가 때리기 전에 뺨을 내밀고 적일수록 친구가 돼버리는 여우 같은 실장이었다. 고수가 된 것이다.


왜, 선배들이 옛날이 좋았어.라는 말을 하면 그렇게 구닥다리처럼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 옛날이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모순투성이였는지 하나하나 말해주고 싶었다. 내게는 그런 시간이 오지 않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나의 옛날이 이제 진짜 모두가 생각하는 옛날이야기가 돼버린 지금, 혼자서 중얼거리게 된다.


옛날이 좋았어.


내가 다시 직장인이 되는 꿈을 꾼다면 나는 그 옛날을 재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보았던 남루한 우리의 모습이 참 좋았다.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고 너와 나의 화해를 꿈꿀 수 있었던 그 시간이 참 좋았다. 그래도 회사가 가족이라고 믿을 수 있는 잠깐의 착각을 만들어 준 그 시간이 그립다. 비록 그 시간들 때문에 나는 직장인으로서의 시간을 멈췄지만, 가끔 그립다.


아마도 오랜만에 노래방에 가서 그런 것 같다.

 

기억이라는 좁은 틈으로 바라본 그 때의 우리는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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