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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A Dec 05. 2017

옛 직장 앞에 선 이방인.

일 년 동안 아무것도 달라진 그곳에서.

마음이 어수선한 어느 날, 머릿속에 맴돌던 나름의 계획을 하나씩 우선순위를 정하며 백수다운 날을 보내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 반복되어도 불안하지 않다. 백수의 내공이 물이 올랐다. 실패를 맛보기 위한 준비가 나날이 무르익어 가고 있는 그 날, 어쩌면 방심했던 탓인지도 모른다.

"아주 좋은 기회가 왔는데, 한번 일해볼래?"

옛 직장에서 연락이 왔다. 프리랜서를 구하기 힘든 지역에서 어느 정도 연차도 있고 일의 특성을 이해하는 사람을 구하는데 나와 상황이 잘 맞아떨어진다는 지인의 추천이 있었단다.  월급은 적었지만 어차피 그 지역으로 이주를 준비하고 있던 데다 예전에 다 알고 지내던 이들로 만들어진 팀이다. 마다할 이유도 없었고 기간도 적당하단다. 오케이.

한 십분 고민을 했을까. 그러나 어딘가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면 차라리 알던 사람들과 익숙한 시스템이 좋다. 그리고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현지의 팀에서는 일이 급했던 모양이고, 이래저래 우선순위를 정리하던 게으른 백수는 졸지에 모든 것을 뒤로 미루고 일단 눈 앞의 일을 잡기로 했다.

그런데, 나름 대기업이랍시고 있다는 인사팀에서 연락이 왔단다. 희망퇴직을 했던 이는 프리랜서로 쓰지 못한다는 내규가 한 달 전에 정해졌단다. 물론 내가 아는 그 직장 내의 누구도 그 내규를 알지 못했다. 심지어 그 인사팀 내의 지인까지도. 한없이 미안해하는 실무자의 전화에 나도 미안해졌다. 그렇게 웃기고 슬프고 어이없는 해프닝으로 끝난 소동 덕에 희망퇴직 후 일 년 만에 옛 직장을 요란하게 방문하기로 했다.


헤어진 옛 연인이 아직 다니고 있는 학교로 복귀하는 복학생의 느낌이랄까.

방문은 소소한 약속들로 시작되었다. 우선 가장 편안하신 웃어른 분부터 찾아뵈었다.

"왜 이렇게 회사를 안 왔어? 잘 놀고 있냐."

"그럼요. 재미나게 노느라고요. 집에서 너무 멀어요."

남편과 함께 떠났던 바이크 여행기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그동안 어찌 지내셨는지 나는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이야기이다. 임원은 임시계약직이다. 매번 계약이 갱신되는 시기가 오면 전전긍긍한다. 그러다가 기분이 확 좋아지는 순간이 있는데 그건 암묵적인 계약 확정을 약속받았을 때이다. 임원들의 평균 나이가 내려가면서 대부분 승진이 예전보다 빨라져서 기뻐하지만 결국 일찍 나간다는 결론임을 곧 깨닫는다. 대기업의 오너 나이가 젊어지면서 임원들도 젊어진다. 문제는 어설프게 젊다는 데 있다. 차라리 아주 젊은 청년들이라면 생각이라도 젊을 텐데, 생각과 자세는 선배들 못지않게 기성세대와 판박이인데 나이만 어려졌다. 그래서 더 열정적으로 스스로를 방어하고 로비한다.


업계 소식에 대한 이야기가 툭 튀어나온다. 세상에 나와보니 내가 몸담았던 프로젝트들이 완공 후 뉴스에 자꾸 나온다. 가끔 생각나서 찾아보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얼굴이 화끈거린다. 대기업이 제일 잘하는 건 우리끼리 거래이다. 그 와중에 서로를 챙긴다는 건 좀 더 높은 위치의 계열사에서 낙오된 이들이 자꾸만 아래 계열사로 내려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엔 투명하게 하겠다며 경쟁을 붙이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돌아오게 돼있다. 그동안의 갑질을 감당할 다른 회사를 찾는 게 쉽지 않다는 걸 경험해보면 실무자들 선에서 어떻게든 하던 곳과 일하게 된다. 업계에서 이제 퇴장해버린 옛 직장은, 대기업의 부속팀 같은 느낌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인데 웃어른은 그걸 또 듣기 좋은 말로 포장하신다.

"내가 입사했을 때로, 본래대로 돌아가는 건데 뭐."

그러니까 과거로의 회귀다. 모두들 미래로, 새로운 세상으로 적폐 청산을 외치고 있는 와중에 거꾸로 가는 기업이라.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이방인이 돼버린 나는 입 밖으로 내뱉는다.

"얼른 먼저 나오세요. 뭐든지 나오시면 잘 하실 거예요."

격려인지, 애정인지 나의 직설적인 말이 적잖이 속상하신 표정이다. 나의 선배, 이제는 은퇴할 날, 혹은 자영업자, 후배 회사의 뒷방 임원쯤이 남은 선택일 것이다. 몇십 년을 한 직장, 그것도 어설픈 대기업의 숨겨진 아들 정도 되는 회사에서 다니면 결말을 대충 이 정도이다.

아마도 아직 그 회사를 다녔다면 솔직하지 못했을 것이다. 누워서 침 뱉으면 내 얼굴에 떨어지니까. 그렇게 옛 직장에 침을 뱉고 나니 자리는 어색해져 있었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터라 바쁘게 들어갔다. 그리고 오랜만에 익숙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익숙한 얼굴들이 바글거리는 사무실로 향했다.


"야!"

"뭐야, 너"

호들갑스럽게 만난 그녀는 몇 년 전부터 자주 만나던 또래 친구들이 다들 나가고 (마지막이 나일 줄 알았건만, 그녀였다) 혼자 남아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지만 할 수 있는 얘기가 넘친다. 오랫동안 한 회사를 다녔던 터라 욕할 사람도 많다. 너무나도 변한 게 없는 사무실과 사람들 가운데 친근한 얼굴을 보니 마치 작년 어제가 아니라 바로 어제 출근을 했던 것 같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 얼굴이 좋아졌어."

여기저기 들러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모두 일 년 만에 만나는 얼굴들이다. 반가운 얼굴들도 있지만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이들의 얼굴도 보인다. 어설프게 인사하느니 대차게 얼굴을 외면한다. 일 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이 놈의 회사는 변한 게 없다.


"아직도 다니고 계세요? 얼른 나와요. 자기 이름 걸고 하면 잘 할 사람이 뭐 하고 있는 거야."

희망퇴직의 소식을 알리자 그 누구보다 펄쩍 뛰었던 선배는 마지막까지 망설였으나 포기했단다. 보자마자 약 올리자 얼굴에 친근한 짜증이 올라온다. 그만큼 가깝기에 말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말이다. 예전 같았으면 그런 마음을 알기에 조심스러게 아주 조용히 내뱉었을 이야기이다.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어. 아, 근데 올해 왜 안 하냐. 그냥 나갈 순 없잖아."

틀린 말도 아니다. 2년 연속으로 위로금을 받고 나간 이들이 있는데 퇴직금만 받고 나갈 순 없는 일이다. 더 나은 조건으로 이직이라면 모를까. 자포자기한 얼굴엔 오히려 여유가 넘친다. 마음이 떠난 회사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이들이다.


"왜 이렇게 소식이 없었어."

"저야 이제 바깥사람이니까 얼마든지 편안하지만 지금 이 곳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잖아요. 제가 너무 웃어도 불편하고 그렇다고 울자니 그건 거짓말이고. 얼른 그만두세요."

"야, 야, 나는 그게 쉽지가 않아."


쉽지 않은 일, 그러나 그들에게는 가지 못한 길, 그래서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부러움에 지는 것 같은 마음에 억울할 것이다. 바로 일 년 전 나 역시도 퇴직하기 전에 느꼈던 감정이다.


오늘도 여기저기서 퇴사를 준비하라. 이직을 준비하라. 나오면 더 춥다. 그래도 구관이 명관이다. 별별 이야기들이 난무한다. 누구에겐 좋은 일이 나에겐 해당되지 않는다고 아직도 그 옛 회사에 운명을 맡긴 이들은 오히려 나에게 자신감을 내비친다. 백수가 된 지 석 달이 지나지 않았던 그 시절에는 분명 각자에게 맞는 옷이 있다고 나 역시도 말했다.


지금까지 쌓아놓은 모든 것, 전문직종으로서의 경력, 위로금으로 받은 몇 천의 돈, 다시 오지 않을 삼십 대 중반의 내 자궁까지도 다 소비한 프로페셔널 백수로서 다시 내 생각을 바꿔본다.


대기업이 맞는 이는 없다. 맞을 거라고 욱여넣는 이들은 평생 자신의 몸을 억지로 고쳐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미 만들어진 견고한 성안에 들어가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보겠다고 하는 건 아직 세상을 모르는 무지한 철부지들이나 하는 일이다. 물론  대기업이 지금 당장 경제적으로 나은 건 분명하다. 객관적으로 평가되는 모든 부분에서 그 어느 형태의 회사보다 월등하다. 그리고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의 세계는 그보다 나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까 어떤 형대의 회사든지 단점이 있다. 그러나 굳이 선택해야한다면 내 일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어느 금수저의 주머니를 채우는 것보다. 일 년공안의 백수생활을  통해 그나마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은 적게 벌어서 적게 쓰는 것이 제일 행복하다는 것이다.


일 년이 지났다.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옛 직장은 그대로였고 나는 그들 앞에서 완벽한 이방인이다.

각자의 삶의 방식을 얘기하며 서로를 격려하며 떠났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하루빨리 나와보라고 얘기한다.


가장 친한 친구의 하소연을 듣다가 화가 났다. 육아휴직을 다녀온 그녀는 모든 것에서 예외 되었다. 한 두해, 한 두명에게 있던 일이 아니다. 아이를 낳고 돌아온 선배보다 일찍 승진한 나는 특히나 그들 앞에서 죄지은 것마냥  불편하였다.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진 모습이다.  나는 아무도 그녀를 이렇게 대우할 권리는 없다며 대꾸할 가치도 없는 인간들이라고 거칠게 시원하게 말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곳을 벗어났고 그녀는 아직도 그 회사를 다니고 있다. 그 속에 속해진 채 하루하루 살아가야 한다. 더 이상 위로가 될만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함께 욕해줄 수밖에, 뒤돌아서면 다시 혼자가 되는 친구에게 미안할 뿐이다.


회사를 다니며 행복하다는 것, 월급을 받는 만큼 일하고 그 외의 생활에 충실하다는 것과 다른 이야기이다. 직업과 직장, 그리고 일은 돈을 버는 것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 9년의 직장 생활, 1년의 백수 생활이 가르쳐주었다. 돈을 벌기 위한 직장은 이제 더 이상 다닐 필요가 없다고. 인생은 길고 도전할 일은 많다. 실패를 하게 된다 해도 지금의 나에겐 그 또한 도전 중 하나에 불과하다.


타인의 불행을 보며 나의 행복을 확인했다.

그리고 하나 더, 우리 사회의 문제는 대기업, 그 자체의 추악한 진실이 아니라 대기업을 다니며 괴로워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수많은 일반 직장인들과 그들을 위한 여유롭고 안정적인 백수의 길을 열어주지 못하는 국가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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