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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A Dec 22. 2017

첫 점검,  Novosibirsk

한숨 돌리고 다시 출발을 위해.

모스크바까지 남은 남은 거리가 지금까지 달려온 거리보다 짧아졌다. 

드디어 우리는 첫 번째 점 검지에 도착했다. 금요일 저녁에 도착하게 되면 실례가 될까 봐 일부러 가까운 도시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kemerovo에서 novosibirsk까지는 300km 가 되지 않는다. 아침을 느긋하게 보내고 11시 전에 출발하기로 한다. 

적어도 3시 전에 도착하려고 했는데 도시에 접어들고 나서가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노보시비르스크는 중앙에 큰 강이 흐르고 도시 자체의 면적이 지금까지, 방문했던 도시에 비해 매우 크다. 느낌은 고양이나 일산 같다. 가는 길 중간마다 커다란 쇼핑몰이 있다. 낮고 오래된 아파트들만 봐왔는데 현대적으로 느껴지는 주상복합 아파트들이 제법 보인다. 나중에 러시아 친구에게 들어보니 역사가 짧은 대신 공업도시로 급속도로 발전해서 현대적인 시설이 많고 도시 자체가 젊단다. 

4시에 도착했다. 우리가 지금껏 달린 거리가 6,000km를 넘어섰다. 내 바이크는 10,000km 가까이 주행했다. 오일을 갈아야 한다. 오빠의 바이크에 달린 알루미늄 가방이 자꾸 차체를 쳐서 간격도 좀 봐야 한단다. 이것저것 미리 얘기를 해 놓았지만 현지의 엔지니어와는 직접 연락을 할 방법이 없다. 

모스크바의 니콜라이가 대신 연락을 해준다. 분명 우리의 약속시간은 3시에서 4시 사이였는데, 우리가 약간 늦긴 했다. 간신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날씨가 덥다. 게다가 도시에 들어오는 동안 속도가 너무 느려 땀을 식히지 못한 채 엔진의 열기를 그대로 받아야 했다. 큰 도시답게 도로에는 차들이 가득했다. 도로는 복잡했고 신호체계는 낯설었다. 교통질서를 지키고자 노력을 했지만 운전하는 게 만만치가 않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두카티 사진이 붙어있는 건물에 도착했는데 뭔가 이상하다. 

바이크 사진 한 장 외에는 바이크 관련된 것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뭔가 이상해서 안으로 들어가 확인해보려 했지만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 결론은 어쨌든 이 곳은 아니다. 니콜라이에게 급하게 연락을 한다. 그리고 다시 확인하고 제대로 된 주소가 오기를 기다린다.

더운데 앉을 곳은 없고, 점검을 받으려면 시간이 걸릴 텐데 이제 곧 5시가 된다. 다행히 십 분 만에 연락이 온다. 다시 보내온 주소는 이 곳에서 멀지 않다. 대신 불법유턴을 해야 한다. 가장 긴장되는 게 이런 거다. 높은 속도로 달리는 도로가 아니라 복잡하고 알 수 없는 도심이 불안하고 더 긴장이 된다. 

제대로 도착했다. 그런데 문은 굳게 닫혀있다. 금요일 영업시간은 아직 남았는데 개미새끼 한 마리 없다. 옆의 주유소에 딸린 편의점에서 마실 물과 먹을 것 하나 사 와서 그늘을 찾아 들어간다. 무작정 기다린다. 어쨌든 오늘 약속을 했으니 어떻게든 해주겠지. 

저 멀리서 바이크 한대가 와서 선다. 우리와 똑같은 모양이다. 문을 열어보고 고개를 갸웃한다. 우리와 눈이 마주친다. 기다리는 중이라고 온다고는 했는데 언제일지 모르겠다는 말에 싱긋 웃으며 본인은 다음에 오겠다고 안녕하고 사라진다. 좋겠다. 집이 근처라서.

다섯 시를 넘기고 해가 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한낮처럼 뜨거워 슬슬 짜증이 밀려오는 찰나 드디어 엔지니어가 나타난다. 영어로 이야기했지만 전혀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바이크를 뒤로 옮겨 놓은 후 손짓, 발짓으로 얘기를 해본다. 기다린 시간에 대해 화가 나지 않는다. 그저 나타나 준 것만으로 감사하다. 

두 시간쯤 걸릴 거라고 한다. 소파에 앉아서 천천히 숨을 돌리는데 러시아 바이커가 등장한다. 키도 크고 덩치도 좋고 온 몸에 가드를 붙이고 나타났다. 나에게 인사를 건넨다. 엔지니어의 친구란다. 영어를 할 줄 알아서 우리와 통역을 위해 금요일 밤에 나타난 것이다. 

만세! 

드디어 우리의 이야기가 원활해진다. 앞으로의 우리의 경로와 일정에 관해서도 물어본다. 어느 도시를 거쳐 모스크바까지 갈지 선택의 폭이 많아서 고민 중이었는데 덕분에 정리가 된다. 

"모스크바까지 3일이면 가. 요즘은 날씨도 좋고, 금방 가니까 걱정하지 마."

"도대체 하루에 몇 키로나 가니?"

"하루에 1,000km 이상 가지. 유럽 갔다 오는 게 한 일주일쯤 걸려."

스케일이 다르다. 우리에게 서울-부산을 하루 왕복했다고 하면 미쳤다고 하는데, 하루 천 킬로쯤이야 보통이라고 한다. 그냥 보통의 기준이 다르다. 내가 달린 거리를 얘기하면 다들 대단하다고 엄지 척을 하는데 도대체 이들 앞에서는 아무 얘기도 할 수가 없다. 

그는 오래간만에 얘기가 되는 친구를 만나서 기분이 좋은가 보다. 점검해야 하는 것들을 중간에서 다 통역해준다. 그리고 아주 간단하게 웃으며 얘기한다. 

"이봐, 친구. 이 정도 왔는데 아무 이상 없었다면 앞으로도 걱정 없을 거야. 게다가 이건 아주 새 것인걸."

고물 바이크, 스쿠터로도 횡단을 하는데 사실 우리의 바이크는 성능도 좋고 일단 아직까지 고장이 없으니 뽑기에는 성공한 것이다. 괜히 사서 고생한다고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데 유난히 우리가 이것저것 물어보고 점검해달라고 하는 것 같았나 보다. 그의 낙천적인 말 한마디에 짝꿍은 기분이 금세 풀린다. 

이 곳까지 오고 나니 반절의 성공을 거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모스크바에 도착하면 거의 성공이다. 모스크바를 지나고 유럽으로 들어가면 더 이상 라이딩에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곳곳에 정비소가 있고 병원도 있고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서 근방에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 

횡단을 하면서 가장 걱정이었던 구간을 우리는 막 지난 것이다. 700km 직진이라는 네비의 경로 안내처럼 한참을 달려도 제대로 되 마을 하나 만나기 힘들었다. 물론 어디든 찾아서 마을을 들어갈 수 있었지만 우리는 일부러 모험을 하지 않았다. 선량하고 착한 사람들을 만날 거라는 보장이 없는 데다 여자인 나를 데리고 다니는 게 짝꿍에겐 엄청난 부담이었다. 

우리의 여행 이야기를 듣자 의사 친구가 손사래를 친다. 

"우리도 그 동네는 안가. 거긴 우리에게도 위험한 지역이야. 예전에 어떤 일이 있었냐면 그냥 오토바이가 자동차를 추월했다고 총으로 쏴 죽인 일이 있었어. 그 동네를 둘이서 지나오다니 대단하다. 이제 안심해도 돼."

"도대체 왜 그쪽을 지나온 거야?"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온 거냐는 말에 웃음이 난다. 여행을 준비하다 보면 별의별 얘기를 다 듣는다. 대부분 소개되는 일화는 좋은 사건들이지만 준비하는 내내 마음속에 걸리는 사건들도 있다. 최대한 그 위험요소로부터 멀어지고자 일부러 캠핑도 피하고 하루에 주행거리를 길게 잡았다. 남들보다 일찍 러시아를 횡단하게 된 것도 다 그 때문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다. 다친 곳 없이 고장 난 곳 없이. 

노보시비리스크 두카티 엔지니어, 다른 종류의 바이크도 잔뜩이다. 엔지니어는 촤라락 소리가 일품인 오래된 두카티를 탄단다.

두 시간 동안  걸친 정비가 끝이 났다. 호텔까지 우리를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여기도 퇴근시간대에는 차가 엄청 밀려서 그냥 따라오면 된다고 한다. 그런데 엄청난 칼치기를 한다. 서울에서도 안 하던 차 사이로 끓어 달리기를 낯선 러시아에서 그것도 잔뜩 패인 도로 위를 달린다. 서쪽으로 향하다 보니 노을에 눈이 부셔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우리에게 내일 시간이 되면 근교 라이딩을 하자고 제안한다. 짝꿍 혼자라면 가능하겠지만 나를 달고 다니려면 힘들 것이다. 고맙지만 오랜 여행 탓에 내일은 뚜벅이 관광을 하겠다고 얘기한다. 서운해했지만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들도 안다. 

인사를 한다. 

"행운을 빌어!"

"고마워!"

멀리 사라지는 친구들을 보고 오늘의 숙소에서 체크인을 마치고 나니 온몸이 풀린다. 고작 300km밖에 달리지 않았는데 그동안의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온다. 그제야 우리가 절반 이상을 달렸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수고했다. 신랑아. 수고했다. 너도.  방 안에 들어가서 짐을 풀기도 전에 서로를 꽉 안아준다. 

저녁을 먹으러 나섰지만 무조건 가까운 곳으로 가기로 한다. 강가 가까이 숙소를 정한 탓에 나름 루르 탑 레스토랑이다. 하늘이 감동이다. 일부러 멀리서 이곳을 찾아온 듯, 현지인들의 복장이 매우 핫하다. 그에 비하면 운동복을 입고 등장한 우리가 초라하다. 여행 자니까. 

석양을 배경으로 이 곳 물가를 생각하면 꽤나 비싼 식사를 한다. 노을이 사라지고 밤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사각 거리를 바람 소리가 우리에게 속삭인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으니 오늘을 푹 쉬라고. 맥주 한 잔을 마시자 온 몸이 휘청거린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어둠 덕에 들키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바닥까지 온몸이 내려앉는다. 

돌아오는 길, 호텔 앞에 주차된 우리의 바이크가 사랑스럽다. 밤이 깊어지고 피곤함이 밀려온다. 금세 잠이 든 그와는 달리 깊은 밤이 다 가도록 잠이 오지 않는다. 내일은 바이크를 타지 않는다. 되도록 하루에 많이 달리고 제대로 하루를 쉬기로 했기에 이렇게 쉴 수 있다. 

뚜벅이 관광을 할 생각 때문인지 잠이 오지 않는다. 낮은 코 고는 소리가 들리지만 한참을 뒤척이고 난 후에야 간신히 잠에 들었다. 여행의 고단함과 묘한 안도감이 뒤섞인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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