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생긴 건 둥글둥글 굴러가게 생겼는데 성격이 조금 뾰족한 면이 있어요. 이건 제 두 번째 직장을 다니면서 생긴 후유증(?) 같은 건데요, 보험사에 일하면서 끊임없이 검열해야 하고 검토해야 하는 직업 특성상 저는 업무를 하는 하루종일을 긴장 속에 살았어요. 고객 유형도 너무나 다양하고 가진 담보에 따라 누군 되고 누군 안 되는 비정한 세계잖아요. 그런 걸 고객한테 정확하게 통보하려면 누구보다 객관적이면서 정확하게 내용을 파악해야 하니까요. 주변 사람들이 너무 변했다고 할 정도로 성격도 모나고 제 스스로도 너무 지치더라고요.
그때 입버릇처럼 입에 붙어버린 단어가 바로 '절대'에요. 절대는 '어떠한 경우에도 반드시'라는 뜻을 가졌는데요, 그땐 진짜 절대 여러 사람에 섞여 둥글게 살 순 없겠다 생각했어요. 심지어 제 취향마저 극단적으로 변해가고 절대 oo는 안 하고 살겠다, oo는 답이 없는 인간이니 절대 친해지지 말아야겠다 이런 식으로 그 호불호는 사람에게까지 번져갔습니다. 그러면서 저에 대한 평가도 극단적으로 갈리는 줄도 모르고 살았죠.
앞서 제 동서와도 저는 첫 만남 때부터 가까워질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 낯을 심하게 가리는 편이라 누구와 어떤 자리에 만나든 결국은 친하게 휘감길 순 있지만 그 시간이 필요해요. 조금 더, 달궈지는 시간 있잖아요. 낯은 가리는 주제에 또 관계의 주도권은 제가 가져야 하는 이상한 성격이거든요. 그런데 동서는 정 반대의 성향이더라고요. 워낙에 어린아이들과 주로 많은 시간을 보내고 학부모들과 만나는 일이 주 업무다 보니 성격이 늘 밝고 싹싹해요. 첫 만남 때부터 팔짱을 껴오며 '언니라고 불러도 되죠'라는 그녀는 저에게는 거의 충격이었어요. 뭐랄까, 결이 다른 사람.. 동서는 다가오고 저는 뒷걸음쳤던 기억이 나네요.
그런데 최근, 대한민국을 강타한 이슈가 있습니다. 절대 사과하지 않을 것 같던 전두환의 손자가 5.18 민주화혁명으로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유가족에 사죄하고 본인 일가의 추악함을 들춰내고 있죠. 제가 살아생전 꿈조차 꿀 수 있는 일일까 싶었던 상상조차 못 했던 일들이 벌어지더라고요. 그분이 그렇게 드러내고 어찌 보면 본인을 지탱하던 든든한 백그라운드를 정면으로 들이받으며 대항하는 것이 어떤 계기인지, 더 나아가 혹자들은 진위를 의심하고 있지마는, 그분은 계속해서 광주를 방문하실 계획이라고 했으며 많은 언론기관과 대중 앞에서 큰 변화를 보인건 자명한 사실입니다. 훗날 제 아이들은 역사책에서 이 사건을 어떤 이름으로 익히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한 번 드러난 일은 요즘 같은 세상에 지워지지 않을 굵은 흔적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 사건으로.. 정말 많은 생각을 하였고, 충격을 받았으며 제가 굳게 다짐하고 믿었던 제 가치관들이 좀 가볍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크게 깨달은 게 있어요. 절대라는 게 있을까 하고요.
절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게 있을까요...? 절대 허락해주지 않으실 것 같았던 저와 제 남편의 결혼식도 결국 저희 엄마가 허락해 주셨었고... 절대 가까워질 수 없는 부류의 인간이라 생각했던 동서와 저도 조금씩 그간의 틈을 메우고 있어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자의든 타의든 결국은 진실이 밝혀지고 벽이 허물어지고 있어요. 절대 나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하겠다, 절대 내 테두리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겠다라는 건 어찌 보면 나 스스로의 고집이 만들어 낸 슬픈 늪일지 몰라요. 그런 견고함은 어디에서 왔는지조차 까맣게 몰랐던 엉뚱한 파격이 허물 수 있어요. 그것은 대단한 것도, 비범한 것도 아니에요. 그냥 누구나 무너뜨릴 수 있고 누구나 노크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쉽지 않았을 텐데 엉뚱한 케이크 부탁 사건(?)도 그렇고 뾰족해진 제 성격도 사실 제 고집불통인 성격 탓일 수도 있고요.
아이들 식사시간, 학교 준비물, 대출 이자 내는 날... 이런 절대 어겨서는 안 되는 것들이 아닌, 선으로의 여정, 인간관계, 전두환 일가 중 한 명의 사죄 한마디로 우리들 마음속 빗장을 잠그던 그 '절댓값'이 이제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