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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의삶을지원 Aug 15. 2023

개만도 못한 사람...?

 제가 택배 배송일을 시작한 지도 이제 두 달 반이 되었습니다. 초여름에 시작한 계절도 이제 큰 더위는 많이 물러가고 가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사이, 큰 비와 바람도 겪었고요. 살면서 그렇게 긴 시간 옷을 입은 채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았던 건 처음이었습니다. 최근 태풍 카눈이 상륙했을 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기다리는 사람과 기다림에 답을 해야 하는 사람. 어쩌면 태생부터 친하기엔 너무 먼 사이일지도요.


 이 일을 하며 두 달이란 시간 동안(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전 큰 고비를 두어 번 만났습니다. 첫 번째는 장마기간의 일인데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주소를 헷갈린 나머지, 이름이 비슷한 옆 아파트에 잘못 배송을 한 일이었어요. 짐을 비옷 속에 안고 배송해도 들이치는 빗줄기로 이미 박스가 많이 젖어 엉망이었는데 그걸 다시 옮기려니 정말 제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게 땀인지, 빗물인지, 눈물인지. 너무너무 곤욕이었고 울고 싶은 순간이었습니다. 결국 안전 배송 완료했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되었죠.

 두 번째는 급히 들어간 화장실에 휴지가 없던 순간입니다. 택배 분류 업무와는 다르게 배송 업무는 절대다수가 남성분들이 하시잖아요. 그래서 저희 회사 여자 화장실에도 휴지가 구비가 잘 안돼요. 남편 말로는 남자 화장실엔 차고 넘친다는데 여자 화장실은 휴지가 없는 날이 더 많아요. 정말 난감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남편에게 카톡으로 긴급메시지를 보내고 여자 크루분이 오시고서야 저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고비는 얼마 전입니다. 고객이 꼭 확인을 해 주셔야 하는 사항으로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렸는데 확인하고 돌아서는 저에게 왈왈 달려드는 그림자 두 개가 있었습니다. 네... 전 개 공포증이 심한 편인데요, 딱히 관련 사고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엄마 말씀이 저는 아기 때부터 개를 무지 무서워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냥 개보다 무서운 건 짖는 개고, 한 마리보다 두 마리라... 저는 패닉상태가 됐어요. 고객님은 어찌할 바를 모르시고 저도 몸이 굳어버려 속수무책으로 멍해졌는데요, 한 마리는 점프를 하며 저에게 짖었고 한 마리는 다리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짖더군요. 그러다가 엉덩이 쪽이 뜨끔, 다리와 발목 쪽이 뜨끔했는데 저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발목 쪽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한 마리를 향해 발을 들었나 봐요, 갑자기 한 분이,

 "안돼!!! 걔는 사람을 물지 않는 아이야!! 차지마!!!!"

 ....... 겨우겨우 남자분이 개들을 안고 들어가시고 저는 넋이 나가서 내려왔는데 내려오고서야 발목 쪽이 너무 쓰리고 아프더라고요. 양말을 내리니 선명하게 잇자국이 남았고요. 놀라서인지 눈물이 주룩주룩 나는데 참 아픈 것도 서럽지만, 본인 개에게 물어뜯기고 있는 걸 보면서도 개를 차지 말라는 고객, 아니 그전에 견주가 한 말이 너무 모멸스러웠습니다. 정말 '개만도 못한 사람'이 된 기분.


 사실 저는 결혼 전까지 꽤 긴 시간 서비스업에 종사를 해왔고 제 지인 대부분이 같은 직종에서 일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고객과 접점 하는 최전방에서 일을 했어서인지 어느 정도 거친 고객과의 만남에는 이골이 나 있었고 지금 전 아이 둘을 낳은 사람이잖아요. 사실 뭐든 못할 게 없는 상황이지만 이런 순간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어색하게 그 순간을 모면하고 피했는데 제 다리를 보고 난리가 난 남편이 고객과 직접 통화 후 향후 치료비를 받는 것으로 상황은 일단락됐지만 서글프더군요. 평상시에도 택배 기사일은 얼마쯤의 부정적인 시각과 싸우며 내 자격지심을 억지로 잠재우며 하루하루 버텨갔는데 이젠 개 트라우마까지 싸워야 한다니.

 

 이번 여름은 진짜 잊지 못할 것입니다. 여름의 막바지입니다. 저는 아직 적응하고 있고 그리고 겪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많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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