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초짜 택배 기사의 고백
저는 요즘 남편과 택배 배송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원래 배송 일을 하고는 있었는데 좀 더 확장해서 한번 해보고 싶다고 이 일을 도와주길 바라더라고요. 아시다시피 저는 사회생활을 다시 해보고 싶었고 또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이 일을 시작한 지 벌써 한 달째입니다.
택배 배송을 하면 참 많은 고객님 댁을 방문하게 돼요. 아파트도 있지만 단독 주택, 다세대 주택, 원룸 등 주거 환경이 제가 살고 있는 이 좁은 지역에 이렇게 많은지 저는 요즘 다시 느끼고 있습니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는 말, 이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요즘 사는 모습은 점점 더 극명하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저도 땀 많은 사람이라 단독 주택이나 엘리베이터 없는 곳은 고객님들을 직면할 일이 거의 없어 오히려 신경 쓰일 일이 없는데 소위 지역 최고 매매가라는 타이틀이 붙은 고급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는 순간엔 저도 모르게 움츠려 들고 제 몸에 땀냄새는 안 나는지 그렇게 신경 쓰입니다. 영화 '기생충'에서의 주인공 가족 중 한 명이 되어 옷냄새를 킁킁거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택배 배송이란 일이 처음 일주일은 너무나 힘들더군요. 말로만 듣던 힘듦의 강도가 이 정도일 줄이야... 거기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몇 층 가는데? 몇 혼데? 우리 집 가는 거 아니야?' 라며 온 짐을 헤집을 때는 정말 멘붕이었습니다. 한참 뒤적이다가 '아, 여기 택배사로 시킨 게 아니지'하며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쏙 집으로 들어가 버릴 땐 집에서 공부하고 혼자 식사 챙겨 먹으며 기다리고 있다는 딸 둘 생각하며 울며 일했습니다. 서러울 일 전혀 아닌데 초짜 배송원은 그렇게 감정 과몰입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 없는 아파트 5층에 무거운 세제 몇 박스를 낑낑거리며 들고 올라가는 길이었는데요, 5층에 들어서는데 저도 모르게 확 감정이 환기되는 거예요. 제가 아는 냄새가 났어요. 음.. 그건 우리 엄마가 저 초등학생 때 끓여주셨던 떡라면 냄새였습니다. 그건 도저히 모를 수가 없는 냄새예요.
우리 엄마는 요리를 참 못하셨습니다. 라면도 찌개도 맛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우리 엄마 손맛이 있는 집밥'의 정의를 아직도 잘 이해를 못 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왜 그렇게 마음과 몸이 힘들 때 처음 가본 낯선 곳에서 우리 엄마의 맛없던 요리 냄새를 맡았던 걸까요?
우연하게 어떤 댁에서 끓이는 라면 레시피가 예전 우리 엄마 레시피와 비슷해서였는지. 아님 제가 너무 힘드니까 헛 게(?) 느껴졌는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제 착각인 건지 모르겠으나 전 고객님 댁에 배송을 끝마치고 내려오며 이 힘든 상황을 조금이라도 타개하려면 방법은 단 두 가지뿐이란 걸 느꼈습니다. 다 관두고 집으로 다시 돌아가느냐, 아니면... 지금처럼 이렇게 선물 같은 순간이 지천에 널렸을 이 택배 일을 한번 다른 마음으로 해볼 것이냐 이렇게 두 가지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야경을 보며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생각해 봤습니다. 사람들은 택배를 대부분 반가워한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들이 좋아할 '기쁜 소식'이 되자, 나는 사람들이 누구든 설레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즐거운 일을 하는 중이다... 사실 이제 만 한 달 정도 되었고 큰 비를 만나거나 숨이 턱턱 막히는 날씨에 서툴게 지번을 찾아 헤맬 때는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지만 그래도 기다리는 고객님께 기쁜 소식이 되어 달려갑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고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