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소복이 쌓인 날 눈처럼 흰 봉투 하나가 집 앞에 놓여있었다.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뻔한 봉투를 테이블에 두고 정신없는 주말을 보냈다. 아이들이 잠든 밤, 글쓰기를 하려고 책상에 앉았다가 구석에 둔 봉투를 뜯어보았다. '내가 뭘 시켰더라? 별생각 없이 연 택배봉투 안에는 엽서가 들어 있었다.
아...
곱게 물든 단풍과 엽서 그리고 우표.
그 안에는 한 사람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오롯이 마음만 가득한 선물을 언제 받았었지?
사회생활을 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누군가에게 마음을 표현할 땐 값이 나가는 선물을 하기 시작했다. 상대가 원하는 것이기도, 내가 줄 수 있는 편한 것이기도 했다. 요즘엔 카카오톡에서 선물하는 시스템이 워낙 잘 되어있다 보니 연령대별로 기념일별로 추천해주는 선물들을 골라서 보내기도 쉽다. 그런 세상을 살고 있는 나에게 마치 타임머신처럼 날아온 편지였다.
그녀는 일 년 넘게 온라인에서만 띄엄띄엄 알던 사람이다. 내가 운영하는 모임에서 같이 책을 읽고 필사를 하고 글을 썼지만 큰 교류는 없었다. 그저 서로의 글 속에서 현재의 그녀를 때로는 과거의 그녀를 어렴풋 느낄 뿐이었다. 둘 다 적극적으로 낯선 이에게 다가가는 편이 아니었고 무언가를 표현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거리를 좁히지 않고 서로를 응원하는 사이였다. 그럼에도 떠올리면 웃음이 지어지는 사람. 이런 게 온라인의 매력이고 글이 맺어준 인연인가 보다 느끼게 하는 사람.
그런 그녀에게 온 편지였다. 하고 싶은 것도 전하고 싶은 마음도 참 많은데 속으로만 맴맴맴하다 시기를 놓쳐버릴 때가 많다는 그녀의 이야기에, 저도요... 하고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그녀와 나는 참 닮은 점이 많았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나'를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나는 글쓰기로 그녀는 달리기로 무너지는 나를 애써 일으켜 세웠다. 가진 것도 주어진 것도 많았지만 그것보다 그저 나로서 살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 그것이 우리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가장 강력한 고리였다.
나는 운이 좋게도 나를 찾는 걸음을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나를 온전히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는데 어쩌면 그녀는 그런 나에게서 작은 희망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저는 빨리 늙고 싶어요. 얼른 늙어서 퇴직하면 그때는 정말 자유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정말 진심 어린 눈으로 늙고 싶다가 말하는 그녀가 이해가 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나이가 들지 않아도 지금도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회사에 아이 셋까지 키우는 그녀의 상황을 내가 겪어보지도 않았으면서 쉽게 말할 수는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지금, 현재의 나를 놓지 말자고. 그런 마음까지도 기록하자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기록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
그런 뻔하고 이상적인 말밖에 할 수 없는 내가 아쉬웠지만, 그게 내가 지금처럼 살게 된 유일한 이유란 것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새초롬한 저에게 글쓰기의 고통과 기쁨 그리고 그 너머로 저를 발견해나가는 방법을 가르쳐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문장에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우리는 함께 읽고 쓰는 시간을 보냈을 뿐이다. 고통도 기쁨도 나를 발견하는 방법도 그녀 스스로가 터득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리 말해주는 그녀가 고마워서, 마음을 전해준 그녀가 고마워서 글을 쓴다.
나날은 온라인에 존재하지만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으로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노트에 연필로 글을 쓰고, 엽서를 쓰고, 책방 문을 연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속도가 느리고, 성과가 없어 보이더라도 이렇게 너의 방식이 맞다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계속 나아가도 좋다는 힘을 얻는다. 그래서 오늘도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