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뭐 하고 지내?”라고 물으며 머뭇거리다 멋쩍게 웃으며 이리 대답한다. “뭘 하긴 하는데 뭘 하는지 잘 모르게 지내.” 뭘 숨기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정말 몰라서 하는 말이다.
아주 작은 것부터 마음이 가는 대로 일을 시작했다. 책을 읽었고, 글을 썼고, 책을 냈고, 책방을 열었다. 요즘은 지원사업에까지 도전하고 있다. 겨우 적응할 만하면 또다시 새로운 곳에서 땅굴을 파는 중이다. 돈도 안 되고, 결과물도 없고, 성과도 나지 않은 일에 나는 왜 이렇게 진심인거지? 나도 나를 모를 때가 있다. 마음이 어려운 날엔 이런 무모한 일은 이제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다 픽, 웃어버렸다.
코로나로 세 아이와 6개월을 집에 갇혀있던 시절, 나는 책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를 글을 매일 새벽마다 써 내려갔다. A4 100장을 가득 채운 글이었다. 그때의 마음은 하나였다. 나의 가장 고되고 아름다운 시절을 기록하기 위해서. 우리 아이들에게 나중에 들려주려고. 무모하고 대책 없이 글을 쓰던 시절이 없었다면 내 인생에 ‘저자’ 타이틀을 얻을 수 있었을까.
한 유명 유튜버가 비슷한 말을 했다. 출간되는 책 중에 만 부 이상 팔려 베스트셀러가 될 확률은 0.4%밖에 안 된다는데 회사 다니면서 3시간 밖에 못 자며 이것을 쓸 가치가 있나? 그때 이렇게 생각했다.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아도 좋다. 다만 내 아이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절 아빠가 이렇게 열심히 살았다는 걸 알려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쓸 만한 가치가 있다고.
설사 결과가 없더라도 흔적을 남기는 마음. 내가 하는 일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일. 그렇다면 세상이 말하는 성공이 아니라 하더라도, 아무 일도 안 하고 뭘 하냐고 손가락질을 하더라도 그 일은 할 만하다. 자랑스레 나는 햇빛을 모으는 중이야,라고 말하던 프레드릭처럼.
누구나 보장된 길을 가고 싶다. 미래가 확실한 길을 가고 무리하지 않고 가고 싶다. 어릴 때부터 열심히 사교육을 하고, 좋은 대학을 가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문직에서 일하며 어느 정도의 사회적 지위를 갖고 돈도 잘 벌면서. 그러나 아무나 그런 길을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그런 길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상상 속에서 그려가며 더듬더듬 걸어가는 사람도 있다. 나를 믿고, 내가 그리는 미래를 믿고 조심조심 내딛는 삶도 그리 나쁘진 않다. 나란 사람은 생각보다 나약하지 않고, 생각보다 게으르지 않고, 생각보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고 다짐하면서 보장되지 않은 길을 걸어갈 용기만 있다면 누구나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다. 아니 그러리라 믿는다. 다만 이 길을 방해하는 것은 실패에 대한 염려, 남들보다 뒤처져 있다는 조급함이나 불안함, 주위의 쓸데없는 짓한다는 시선 같은 것들이다.
이솝우화 <개미와 베짱이>에서 베짱이는 개미가 열심히 피 땀 흘려 일하는 동안 노래나 부르며 딩가딩가 놀다가 얼어 죽을 뻔한 것을 성실한 개미의 도움으로 구사일생한다. 그러나 개미와 베짱이를 패러디한 <프레드릭>에서는 다르다. 성실하게 일하는 다른 들쥐들과 달리 돌 위에서 멍하니 있는 프레드릭을 누구도 질책하지 않는다. 다만 물어본다.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프레드릭은 햇살과 색깔과 이야기를 모으는 중이라고 대답한다. 추운 겨울이 오고 들쥐들은 점점 먹을 것도, 할 이야기도 없어 추위에 웅크리고 있다가 프레드릭을 떠올린다. “네 양식들은 어떻게 되었니, 프레드릭?” 프레드릭은 자신이 모아둔 이야기를 풀어놓고 들쥐들은 넌 시인이라고 박수를 치며 감탄을 한다. 이 우화는 개미와 베짱이를 뒤튼다.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 누구도 그 삶을 질책할 수 없음을. 오히려 그 다름을 존중하고 인정할 때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풍요로워질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시간을 보내는 것은 무모할까?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시간은 없다. 이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의심을 누르고 자기만의 햇빛을 모으다 보면 추운 겨울을 버티게 할 자기만의 이야기가 생길 테니까. 무모해 보이지만 나아가는 용기. 그 용기를 갖고 걸어가는 나를, 너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