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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날 작가 Oct 22. 2023

나답게 살기

중, 고등학교를 함께 나온 친구들과 늘 함께 가던 동네에서 오랜만에 만났다. 서로 살기 바빠 생일이나 겨우 챙기며 일 년에 한 번도 못 보지만, 만나면 항상 반가운 친구들. 지나간 옛이야기들, 현재 사는 이야기들을 나누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깔깔 거리며 웃었다. 친구의 임신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하며 세 아이 키우는 선배로서 이야기를 나누던 때 갑자기 친구가 대뜸 말했다.     


“진영아, 나는 네가 사람들 앞에서 강의하는 거 너무 신기해. 나는 네가 말을 이렇게 잘하는지 몰랐잖아. 이봐, 왜 이렇게 웃겨? 내가 널 너무 몰랐어. 너는 진짜 다른 사람 눈치 안 보고 할 말하며 사는 것 같아. 너 지금 진짜 자유로워 보여.”     


우리 사이에서 가장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친구가 그런 말을 하니 어안이 벙벙했다. 나이가 들어가며 자신은 점점 겁나는 것이 많아졌는데 너는 어떻게 예전과 달라진 거냐고 묻는 친구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소극적이고, 말 수가 적고, 나서지 못했던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주변 눈치 보느라 스트레스받고, 딱히 반박도 못하고 그저 빙그레 웃기만 했다고 아무리 말해도 믿어주지 않는다. 옛 친구들은 이런 내가 그저 신기하다는 듯이 보았다. “어떻게 이렇게 달라졌어?” 친구는 영혼 체인지라며 고개를 저었다. 어쩌다 그랬을까. 무색무취의 사람이 또렷한 색깔을 갖게 된 데에는 이유가 없을 수 없다.     



첫 번째 이유는 ‘인정’이었다. 눈치 보고 말 못 하지 못한 이유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받은 경험이 없기 때문이었다. 무언가 잘 해내야만, 무엇이 되어야만 인정해 주는 세상에서 나는 늘 자신이 없었다. 아무리 애써도 도달할 수 없는 곳만 바라보니 항상 부족한 사람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남편을 만났다. 본인의 생각대로 나를 휘두르려 하기보다 ‘너는 그렇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 나중에 딸이 결혼하다고 할 때 꼭 이야기해 주고 싶다. 능력 있고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너를 그 자체로 봐주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하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보다 형편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꽤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위축되고 긴장된 나를 유연하게 만들었다. 남편이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은 물론 운이 좋은 일이었지만, 꼭 사람이 남편일 필요는 없다. 나를 깎아내리거나,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하는 사람 말고 나를 존재 자체로 인정해 주는 친구를 곁에 두면 된다. 그것도 어렵다면 내가 나를 인정해 준다. 과장 하거나 축소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는 연습을 한다. 그걸 메타인지라고 하더라. 그렇게 연습하다 보면 나답게 살아도 괜찮다는 확신이 들기 마련이다.      


두 번째 이유는 충분히 사랑받는 경험이었다. 위의 이유와 마찬가지로 내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저 나이기 때문에, 나라는 이유로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다. ‘네가 너라는 사실, 네가 너이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고, 사랑스러운 것이고, 가득한 것이다.’ 정밀아의 꽃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내가 나라는 이유만으로 사랑을 퍼주는 아이들이 있었다. 하나만 키우기도 어려운 사람에게 선물처럼 셋이나 와서 몸으로 눈빛으로 보여줬다. ‘나에겐 엄마가 최고야.’ 그 확신에 찬 모습에 나는 스스로를 대단하다 여기게 되었다.     

 

만약 나에게 두 가지 이유가 없었다면 평생 나답지 못한 모습으로 살았을지 모른다. 아니면 더 오래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살았겠지. 스스로 인정하고 사랑하는 일은 참 어려우니까. 자꾸 타인에게 인정과 사랑을 갈구하며 자기답지 않은 모습으로 살게 되는 이유이다. 스스로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타인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는다. 좋은 옷, 좋은 가방, 좋은 집 같은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 남들에게 보이는 것보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멋있는 사람인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 이유로 세 번째는 성장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하는 일, 나의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고 매일 조금이라도 읽고 쓰는 일, 대단치 않아도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 일 같은 것들이 자신감을 주었다. 나의 가치와 목적에 맞는 일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 그래서 ‘나는 이런 사람이지.’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게 되는 것. 이게 자유로워진 이유였다.     


남 보기에 좋은 사람이 아닌 스스로 좋은 사람. 그런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지면 좋겠다. 스스로를 깎아내리지 않고 드러낼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 나의 작은 비밀을 말해준다. 인정받고 사랑받고 성장하는 일 모두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다. 어려워도 시도해 볼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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