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인데도 구름이 잔뜩 끼어 을씨년스러운 날이었다. ‘왜 이렇게 느낌이 별로지?’ 뭔가 꿀꿀한 기분에 마음이 가라앉을 무렵 구름 사이로 햇살이 살짝 비쳤다.
“연아야, 저거 봐. 꼭 엄마한테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아!” 지원사업의 결과를 기다리던 날이었다. 어느 날은 잘 될 것 같고 어느 날은 안 될 것 같고 마음이 갈팡질팡하니 날씨에도 의미부여를 하고 있었다. 엄마의 호들갑에 아이는 눈살을 찌푸렸다.
“엄마, 구름 너머에 얼마나 눈부신 햇살이 있는데, 고작 저 손바닥만큼 작은 햇빛으로 엄마의 미래를 판단하려고 해? 그렇게 자신 없어하는 거 보니 이번엔 안 될 것 같아. 그래도 엄마는 구름 너머 햇살만큼 멋지게 될 거니까 그만 좀 해.”
“야! 안 될 거라니 무슨 막말이야!”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도 얼굴이 시뻘게졌다. 속내를 들켜서 그랬을까? 이제 고작 12살 어린 딸에게 정곡을 찔린 느낌이었다. 언제 이렇게 커서 엄마의 불안을 고스란히 알아채는 걸까. 결국 실패였지만, 아이의 말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나는 요즘 가끔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내 이야기를 들은 친구 A는 '나는 내가 왜 그런 지 몰랐는데 너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알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나의 불안과 그녀의 불안은 묘하게 닮아있었다. 시시각각 감정의 오르내림을 겪으면서 그것들이 고이면 탈이 난다는 걸 알았다. 긍정적인 감정은 붙잡을 새도 없이 사라지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머문다. 의도적으로 흘려보내지 않는 한 내 약한 부분 틈틈이 고여 버린다.
처음은 설렘과 함께 두려움을 동반한다. 설렘은 금세 사라지고 두려움만 남을지라도 익숙한 것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처음'은 생기를 가져온다. 요즘 내 감정의 실체는 여기로부터 왔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거나, 알지 못하는 일들이 산재해 있다. '처음'에서 기인한 불안이 일상을 잠식해버리고 있었다.
처음은 항상 어렵다. 그것의 경중을 따질 필요도 없다. 두려움도 불안도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애써 회피하려고 하기보다 누구도 처음이 쉬운 사람은 없음을 떠올린다. 나처럼 누구나 그렇다. 익숙하기만 한 느슨한 삶을 살 것인지 가끔 팽팽한 줄 위에 올라갈 것인지 오롯이 나의 선택. 선택하고, 받아들일 뿐임을 안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생각을 멈추고 움직인다. 팔이든 다리든 일단 움직이면 감정에 매몰되지 않았다. 스트레스에 짓눌리지 않았다. 이불속으로 들어가 눕고 싶은 마음을 꾸역꾸역 참고 햇살 아래로 나갔다.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고, 일주일에 두 번은 요가를 하러 가고, 성실하게 집안일을 하는 것. 몹시도 불안정한 처음들 가운데에서 익숙함을 채우기 위한 노력. 평소에는 회피하고 싶었던 지루한 일들이 나에게 안정감을 주는 일이 되다니. 아이러니하다.
마음을 다하되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 마음을 다하는 것까지가 내가 할 일임을 분명하게 알았기 때문이다. 그 외의 일은 내 것이 아니라고 무책임하게 손 놓고 있지도 않지만, 결과에 전전긍긍하는 일은 그만두었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처음인 일들에 마음을 낼 텐데 매번 나를 갉아먹을 수는 없으니까.
마지막으로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다독이는 일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두려움으로부터 주저앉고 싶을 때 그곳으로부터 빠져나온 건 필사 덕분이었다. 도덕경 필사를 시작으로 2년 가까이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읽고 쓰는 일을 쉬지 않았다. 외부의 시선이 아닌 나의 시선으로 나를 들여다보는 일은 힘이 세다. 내 상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신을 단단히 붙들고 다시 천천히 걸어간다. 햇빛을, 색깔을, 이야기를 모으는 시간을 가만히 보내본다.
결국 봄은 올 테고, 나는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