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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날 작가 Oct 22. 2023

단순함의 미학

어린아이 셋과 함께 사는 집은 조금만 한 눈을 팔아도 금세 아수라장이 된다. 그렇다고 내가 빠릿빠릿 청소를 자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이웃들은 깜짝 놀라곤 한다. "세상에! 아이 사는 집이 어떻게 이렇게 깨끗할 수가 있어요?" 그 이면에는 집이 왜 이렇게 횡-하냐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넓은 거실엔 6인용 테이블과 책장이 전부니까.      


우리 집은 대체로 정신없지만 10분 만에도 깨끗해질 수 있다. 내가 아는 정리 전문가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우리 집은 회복탄력성이 좋다. 청소에 시간을 많이 쏟지 않기 위해 평소 집에 물건을 많이 들이지 않는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사지 않는다. 인테리어를 위해 두는 소품이나 삶의 편리성을 높이는 가전 기구, 수납 가구 등이 그렇다. 없어도 불편하지 않다면 굳이 자리 차지하도록 두지 않는다. 당장 쓸 소모품이 외에 쟁여두는 일도 없다. 그릇 같은 주방 용품도 깨지지 않는 이상 '디자인 적인 요소'를 이유로 새로 사지 않는다. 미적 감각이 없기는 이유가 가장 크다. 취향이 반영된 우드와 화이트로 톤만 맞춘다. 


마찬가지로 불필요한 물건은 두말없이 쓰레기통에 넣는다. 물건 자체에 마음을 담지 않는다. 쓸모를 다했다면 가감 없이 버린다. 유통기한이 지난 약이나 식품들도 오래 두지 않고 버리는 편이다.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만들어 오는 것들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아이와 함께 상의하고 기념사진 하나 찍고 보내줬다. 이런 행동이 아이에게 감정적으로 악영향을 줄지도 모르겠지만, 그 물건들로 내 스트레스가 쌓여 아이에게 안 좋은 감정을 전달하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일 것이다. 이렇게 해도 버리는 물건이 늘 많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사는 것보다 버리는 것이 많은 집이니 청소가 쉬울 수밖에 없다. 집안일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생활에서도 최소한의 에너지를 쓰려고 노력한다. 옷도 원피스를 가장 선호한다. 어떻게 맞춰 입을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대충 입어도 갖춰 입은 느낌이 나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가 그토록 검은색 티셔츠만 입었던 이유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여름엔 시원하게, 겨울엔 따뜻하게. 동네용과 외출용으로 나눠서 몇 벌 구비해 놓고 손이 가는 대로 입는다. 누군가는 화려한 패턴의 옷은 사람들에게 쉽게 각인돼서 두 번은 못 입는다고 하는데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도 그리 신경 쓰지 않는 편이라 화려하고 원색인 옷을 자주 입는다. 비슷한 이유로 긴 머리 파마를 몇 년째 고수하고 있다. 긴 머리는 그 자체로 괜찮은 스타일링이 된다. 뻗쳤을까 눌렸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반영구 아이라이너와 눈썹을 한 이후 비비크림과 립스틱이면 화장도 끝이다. 기본 세팅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서 남편의 외출 준비 시간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나는 내 모습에 꽤 만족하고 산다.     


물론 이렇게 살면 작은 것들을 놓칠 때가 많다. 사소한 것에 눈길을 주는 데 취약하다 보니 관계에 있어 가끔 오해를 사기도 하고, 진심이 잘 전해지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내 한정된 에너지를 늘릴 수는 없으니, 이 안에서 최대한 정성을 다해보려 노력한다.     


단순하다는 것을 취향이 없다는 말과 동의어로 생각하기 쉽다. 내가 그랬다. ‘나는 그런 거 별로 신경 안 쓰니까.’ 아무거나 좋다고 말했다. 그런데 누구보다 예민하고 까다로운 사람이 나였다. 적은 물건으로 살다 보니 취향이 아닌 것을 참기 어려웠다. 무엇이든 일단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몇 번을 질문하며 진짜 원하는 것을 고르는 능력이 생긴다. 그래서 소모품이 아닌 물건을 선물 받을 때가 가장 난감하다. 마음을 받았으니 버릴 수는 없고, 내내 볼 때마다 신경이 쓰인다. 누군가는 단순한 생활을 짠순이와 동의어로 보기도 했다. 물욕이 별로 없고, 소비에 인색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던 지인이 ‘너희 집은 시폰 커튼이 분위기를 만든다. 그건 비싼 거잖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물론이다. 뭐든 하나를 사도 내 취향과 맞고 오래 쓸 수 있는 좋은 것을 사려고 하지, 싼 걸 선호하지 않는다. 누구보다 자신의 욕망에 대해 진지한 사람, 단순하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그래서 내가 소유하는 물건에는 타인의 선호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다. 요즘 인기 있는 것, 유행하는 것에 흔들리지 않는 이유다.     


물건뿐 아니라 생활에서도 나는 심플함을 추구하는 편이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나 읽고 쓰는 시간 같은 것 이외의 일에 내 에너지를 많이 쏟고 싶지 않아 한다. 집안일을 줄이려는 노력도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막기 위함이고, 인맥을 쌓기 위한 관계 늘리기를 하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결국 단순하다는 것은 내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철저한 개인주의자라고 폄하할 수도 있다. 그걸 전부 부정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내가 원하는 곳에 에너지를 ‘몰빵’하고 싶다. 


더 적게 가지며 살려는 이유이자, 단순한 삶이 아름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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