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나의 것, 선택도 내가 하는 것
저는 양평에서 살 거라고요.
1년여를 나들이처럼 양평을 돌아다니면서 좋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그 당시 나는, "아이가 초등학교 가기 전에 양평으로 이사 가려고요. 이제 2년 남았어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누구를 만나든지 이야기했다. 말이라도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못 가게 될 것 같아서 최대한 많이, 아주 많이 이야기하고 다녔다. 친정 엄마는 그런 나를 아주 못마땅해했다. 아마 처음에는 그냥 내뱉는 농담인 줄 아셨던 것 같다.
“그래. 공기 좋은 곳에서 살면 좋지.”
"네가 어릴 때 하도 공부만 해서, 애는 공부시키고 싶지 않은 거구나?"
내 말에 기분 좋게 대꾸하던 엄마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점점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엄마의 회유와 협박이 시작됐다. 처음엔 좋게, 나중엔 화를 내도 고집이 워낙 센 내가 듣질 않으니, 신랑을 붙잡고 이야기 하기 시작하셨다.
"최서방, 쟤가 딴생각 못하게 사위라도 정신 차려."
"한 명이 저렇게 천지분간을 못하면 한 명이 중심을 잘 잡고 있어야 하는 거야. 그래야 부부가 잘 사는 거야."
카톡으로, 전화로, 만날 때마다 점점 반대의 강도가 거세졌다. 그럼 우리 신랑은 늘 이렇게 말했다.
“네~ 알겠어요, 어머니. 생각해 볼게요. 허허허.”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집에서 싸움이 일어났다. 평화롭던 집은 한순간에 전쟁터가 되었다.
"이게 나 혼자만의 생각이야?"
"왜 계속 알겠다고만 해?"
"그렇게 착한 척을 하고 싶어?"
급기야 눈을 한껏 치켜뜨고 못된 말을 폭포수처럼 신랑에게 쏟아내도, 신랑은 늘 느긋하게 말했다.
“내가 더 가고 싶어 하는 거 알잖아. 우리는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돼."
" 뭘 일일이 장모님이랑 싸우려고 해. 그냥 나중에 이렇게 됐다고 말씀드리면 되지.”
“아니, 그게 더 나쁜 거 아니야? 알겠다고 하고 우리 마음대로 하자고?”
잘 생각해봐. 이건 우리 인생이야.
"진영아 잘 생각해봐. 이건 우리 인생이야. 누구한테 허락 맡고 말고 할 것이 아니란 말이야.”
그 순간 나는 머리를 망치로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애초부터 잘못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엄마라는 큰 산을 넘어야만 비로소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아주 유아기적 사고방식에 갇혀있었던 것이다.
1년이라도 세상을 더 산 사람의 경험은 귀하다. 하물며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엄마의 조언은 새겨들을 수 있다. 하지만 참고만 할 뿐, 선택은 나의 몫이었다. 선택도, 책임도 나의 몫인데 왜 나는 그렇게 엄마로부터의 허락을 받으려고 애를 썼던 걸까?
그때 알게 되었다. 나는 여태껏 엄마라는 핑계를 두고 내 인생의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엄마가 싫어할 텐데, 엄마가 반대할 텐데, 엄마가 가만있지 않을 텐데.’
한 번도 그 산을 넘어 볼 생각도, 무시할 생각도 못하고 제 풀에 제가 지쳐버리고 말았다. 나는 여전히 어린아이였음을 깨달았다. 한 번도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제 스스로 해보지 못한 미숙한 어른. 그래서 결심했다. 이제 누구의 뒤로 숨지도 않고, 누구를 핑계 삼아 포기하지도 않고,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해보겠다고.
신랑 회사도 여러 가지 일들이 터져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버티느냐, 이직하느냐로 여러 말들이 오가고 있었고, 입사 동기들은 좀 더 좋은 기업으로 이직 소식을 알렸다. 우리 신랑도 이직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입사 5년 차, 이직하기 가장 좋은 때이기도 했다. 자다가 얼핏 일어나 보면 신랑은 멍하니 구직사이트에 올라온 공고들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선뜻 이직을 결정하지 못했다. 그래도 공채의 후광을 누리느냐, 연봉을 높여서 이직을 하느냐, 그 사이에서 답을 찾지 못했다. 어떤 것도 만족하지 못하는 선택이었다. 이왕이면 지금보다 좋은 회사로 이직을 해야 했고, 그럼 급여가 오른 만큼 더 힘들게 일을 해야 한다. 이 일을 힘들어하면서도 같은 업종으로 갈 수밖에 없는 신랑의 뒷모습이 가여워 나도 한참을 쳐다보았다.
머릿속에 수많은 고민이 가득한 어느 날이었다.
“오빠, 우리 주말부부 하는 것 말이야. 가능하겠어?”
“나는 숙소 생활하기 싫긴 한데 뭐, 어쩔 수 없지.”
“양평으로 출퇴근은 좀 힘들겠지?”
“제일 가까운 현장도 왕복 4시간은 될 걸.”
“애들은 아빠가 주말에만 오는데 과연 행복할까?"
반쪽짜리 행복이겠네
반쪽짜리 행복, 아니 지금보다 더 불행할지도 모른다. 가족 중 한 명이 일방적인 희생을 해야 한다면 그게 행복일까? 내가 아이들을 위해 나의 모든 것을 쏟아내는 것도 신랑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원하지도 않는 일에 12시간 이상 메어있는 것도 결국은 모두 같은 희생이 아닐까? 이 절름발이 행복을 위해 나는 지금 무엇을 포기하는 걸까. 그저 마당 넓은 집, 뛰어노는 아이가 전부가 아니었다. 가족의 행복을 그릴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고집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행복은 누구의 것인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했다. 여태 ‘양평’이라는 지역에 갇혀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현실적인 한계만 계속 부각될 뿐이었다. 이직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 지금, 신랑이 계속 건설 회사를 다녀야 할 이유가 있을까? 건설 회사의 급여는 포기하기 힘든 달콤한 꿀 같은 것이지만, 그만큼 우리 가족은 병들어 가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것은 기회였다. 우리가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우리는 결심했다. 하기 싫은 일을 그만두고 우리가 살고자 하는 지역으로 이직을 하기로.
신랑은 몸값을 올려 이직을 하는 경우와는 아주 이례적으로 몸값을 낮춰 우리가 살고자 하는 지역들에 원서를 넣기 시작했다. 지금 회사에 최종 합격을 한 날, 우리는 얼싸안았다. 비록 우리가 처음 상상했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은 없었지만 우리는 웃었다. 이곳에서 다시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