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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날 작가 Jul 07. 2021

스무 살 너에게 쓰는 편지

많이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기를

아이였지만 성숙하고, 어른이었으나 미숙했던.

칠흑같이 어둡고 별처럼 빛났던 스무 살의 나.

그때의 나에게 한 통의 편지를 쓰려고 이 글을 시작했다.


스무 살의 네가 지금의 나를 만나면 뭐라고 말할까. 보고 싶었다고 할까. 꾹 다문 입술, 빨개진 코끝. 그렁그렁 맺힌 눈물 한 방울 떨어지면 그제야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겠지. 울다가 깜짝 놀라 묻겠지. “직장은 다녀요?”,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했어요?”, “아이를 낳았어요?” 불안한 너의 날들에 궁금했던 질문을 쏟아내려나. 그러다 너는 묻겠지. 행복하냐고. 지금은 평안하냐고. 언제쯤, 이 불안이 사라질까, 언제쯤 마음 편히 잠들 수 있을까. 언제쯤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때 너를 괴롭히던 수많은 질문의 답을 내가 줄 수 있을까?


나는 이제 마흔을 앞두고 있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스무 살의 네가 그토록 바라던 편안함에 이르렀어. 이제 조금 안심이 될까? 언젠가, 그때의 너에게 다 지나가니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해줘야지, 고생했다고, 잘 견뎌냈다고 머리 한 번 쓰다듬어 줘야지 생각했어. 그날이 오늘인 것 같아. 오랜 시간 혼자 위태롭게 버티고 서있던 너에게 20년 후의 내가 편지를 쓴다.

        





‘자기 연민’이란 단어를 알고 있니? 자기 연민은 자기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야. 때때로 이 자기 연민이 과해서 자기혐오가 될 때도 있어. 자기혐오는 나를 미워하는 마음이지. 나를 불쌍해하고 나를 미워하는 마음, 둘 다 오롯이 시선이 “나”에게 맞춰져 있는 감정이야. 네가 지금 힘들고 아픈 이유도 여기에 있단다. 너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야. 무슨 말이냐고? 자기 연민과 자기혐오의 마음 어느 즈음에서 상황을 바라보면, 그게 무슨 일이 되었든 늘 네가 제일 불쌍하고, 부당하고, 억울하고, 괴로워져.


네가 좋아하던 친구가 세 번째 약속을 취소했던 날,

“괜찮아.”라고 말해놓고는 화가 잔뜩 나서 씩씩거리며 말했지. “걔는 항상 이런 식이야! 나랑 한 약속은 늘 안 지킨다고!”

왜 나는 힘들다고 말할 때 달려 나올 친구가 한 명도 없을까, 왜 내 주위의 사람들은 다들 이기적인 걸까, 나의 어떤 점이 문제이기에 진정한 친구 한 명 없는 걸까. 왜 나는 대체 이 모양일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최악으로 치닫던 날, 그날 너는 친구에게 물었어야 했어.

“왜? 오늘 왜 못 만나? 무슨 일 있어?”

그랬다면 너는 친구의 진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지도 몰라. 그 친구는 네가 늘 괜찮다고 하니 정말 편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사실은 거절이 두려워서 피했을 뿐이잖아. 그런데 상황을 탓하고 문제의 화살을 자신에게 돌려 상처를 내고 말았어.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면 사실 네가 처한 현실이 네가 생각한 것보다 최악이 아닐 수 있어. 오히려 네 이런 생각이 도리어 네 주위에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지도 모르지.

그래, 나는 그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어. 인제 그만 너를 가여워하는 마음에서, 너를 미워하는 마음에서 나오라고. 나와서 주위를 잘 둘러보라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너를 지켜주고 있는지, 사랑하고 있는지, 네가 손 내밀기를 기다리고 있는지 찾아보라고. 너를 상처 주는 한, 두 명의 사람 때문에 그 모두를 잊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었어.


자기 연민과 자존감은 종이 한 장 차이야. 나를 가여워하는 마음도 얼마든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될 수 있어. 오늘부터 자기 연민으로부터 조금씩 빠져나오는 연습을 해볼까?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쌍해.’가 아니라 ‘누가 뭐래도 나는 나를 사랑해.’라고 말이야.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려고 하지 말고 오늘도 잘 지낸 나를 인정해주는 건 어때? 많이 웃고, 많이 울어. 감정을 표현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니까. 그리고 말해 봐.

“이제 후련해. 나는 내가 불쌍하지 않아!”

   

마흔을 앞둔 나는 지금도 여전히 내가 나를 사랑하고 있는지 가여워하고 있는지 들여다볼 때가 있어.

세상이 모두 나에게 등을 돌릴 것 같을 때, 바로 지금처럼 말이야. 어쩌면 그래서 너에게 이 편지를 쓰는지도 몰라. 여전히 나는 두렵지만, 겁이 나지만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과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시간을 견뎌낼 거라고. 똑같지만 똑같지 않은 방식으로 이 시간을 극복할 거라고. 그러니 안심해. 20년 후의 너는 많이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그러니 너도 그곳에서 많이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우리는 충분히 그럴만한 존재니까.     


사랑을 담아,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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