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휴가엔 강화의 이루라 책방에서 북 스테이를 했다. 여행이라 말하고 답사라고 적는다. 원래도 동네 책방 찾아가는 걸 좋아했지만 집에서 책방을 내야겠다는 꿈이 생긴 후론 일부러라도 찾게 되는 곳이 책방이다.
이루라 책방은 이전에 다녀온 괴산 작은숲속책방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처음부터 책방을 염두하고 지은 전원주택이라, 가정집과 책방이 분리되어 있다. 이곳은 열린 책방이라기보다는 프라이빗한 책방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용시간이 제한되어 있고, 시간 내에는 다른 공간을 사용하는 두 팀만 받는다. 오롯이 그 공간을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한다.
"저희는 코로나 시기에 오픈을 해서 처음부터 프라이빗하게 시작할 수밖에 없었어요. 코로나 이후의 모습은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책방을 개방해 볼 생각은 없으신 지 물었더니 책방 지기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사실 이 책방의 형태는 내가 지향하는 모습이 아니다. 나는 누구나 편안하게 오고 갈 수 있는 책방,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마을의 사랑방 같은 곳을 원한다. 거대한 문을 꽉 걸어 잠근 채 인터폰으로 빼꼼 상대를 확인하는 시스템은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다. 그런데 막상 이곳의 운영 방법을 보고 나니 내가 지금 당장 집에서 책방을 열게 되면 이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거실을 공유하는 것의 가장 큰 단점이 무엇일까?
그건 사적인 공간이 공적인 공간이 되는 일이다.
예상치 못한 손님이 불쑥불쑥 찾아올 수 있고, 안전의 문제도 있다. 항시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도심이 아닌 산속에 단순히 책 한 권을 사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고, 그렇다면 공간을 누리기 위해서 발걸음을 하게 될 텐데 가정집을 카페처럼 운영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 나는 아주 큰 맹점을 간과하고 있었구나. 그제야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발견한다. 이래서 벤치마킹은 중요하다. 내가 가는 길을 이미 간 사람들을 맹목적으로 따라갈 필요는 없지만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배울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가정에서 책방을 여는 것이 단점만 있는 건 아니다. 그 단점이 곧 장점이 될 수 있다. 생각해보면 어떤 일이든 단점뿐인 일도 없고, 단점이 그대로 단점으로 남는 경우도 없다.
사적인 공간이 공적인 공간이 되는 일의 가장 큰 장점은 청결함이다. 필연적으로 설거지를 쌓아둘 수 없고, 빨래산을 만들 수 없고, 매일 청소기와 걸레질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화장실 청소는 덤이다. 세상에, 맙소사! 남편은 좋아하겠지?
뜨악스럽긴 하지만, 집안일이 더 이상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비생산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 같다. 인정받지도 못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괴감이 아니라 내 일터를 가꾸는 일이라는 자부심이 생기지 않을까. 내가 바라는 가장 최고의 시나리오는 바로 이것이다. 돈으로 환산되지 않은 주부의 일이,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끝도 없는 집안일이, 스스로에게 기쁨과 보람이 되는 것. 나의 일이 측정 가능한 생산성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집이 사람들에게 재능을 나누고, 수익이 창출되는 공간이 되면 가능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