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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작 Dec 19. 2020

흐르는 강물처럼2

구르다가 박히다 박히다가 구르는 우리들


회의도 식사도 모두 지난 시간, 사무실에 이사님이 퍼스널 때를 틈타 비어있는 회의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대학시절의 절친끼 모여볼까 하고 일일이 전화를 거는 중이었다. 까똑도 없고 다자간 통화기술도 없으니 문자를 보내 놓고 마냥 기다리기도 그래서 '되니 안되니?'를 반복하던 참.



B는...

대학 졸업반에 결혼한... '꽃처럼 예쁜 ' B직장을 다니기 때문에 평일에는 시간이 없다고 했다. 공대 우리 과의 사총사 중 동갑내기 셋은 서로 다른 사회적 포지션을 가지고 있었기에 약속의 결정권은 프리 한 우리보다는 B에게 달려있었다. 우리 중에 제일 먼저  시집을 가서 여섯 살 난 딸도 있고  B와 여덟 살인가 차이 나는 아이 아빠가 심각한 게임에 빠져 힘들어했다. 약속 정하기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부모님이 육아를 담당하셨으니 쉽게 빠져나올 수가 없음을 강조했다. 하루쯤은 괜찮겠지, 한 번쯤은 괜찮겠지는 이 착한 딸에게는 통하지 않는 핑계였다. 어찌 만남을 시도할 때마다 같은 걱정과 고민을 하던지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이해가 되기는 했다.




A는...

프랜차이즈 버거를 함께 즐겨 먹던  또 다른  친구 A는  손이 예뻤다. 하얗고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힐 것 같고 늘 샵에서 관리를 받아왔을 것만 같은  뽀동한 손이었다. 그 애는 손이  예쁜 여자가 좋다 하는 회사 선배 남자와 연애 중이었다. A는 설명을 했다. 땅 부잣집 삼남이고 못 생겼고 키가 크다고...신고식은 건너뛰고 나중에 웨딩촬영 때가 돼서야 신랑 될 그 사람을 보게 되었다.  그대로였다. 너무 컸고(183?), 연애 이력 리스트에 새로 쓸 외모였지만 여자에게 평생 다 맞춰주며 집에 큰 소리가 안 날 것 같이 순한 사람 같았다. 웨딩드레스를 얼마나 자기 옷처럼 챙기던지. 그때의 모습은 여전한 듯. 완즈를 든 퀸처럼 살고 있는 A는 지금도 손이 예뻤다.




Y는...

동갑내기들을 뺀 언니 Y는 우리 셋보다 연애경력도 사회경력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같은 실험실에서 '사회초년생'인 나와는 달리 박사님들과도 출근길 에피소드로 대화의 꽃을 피웠고 적절한 처세술로 사회생활을 잘 아는 '능력자'이기도 했다. 이후 영입되는 신참 연구원이나 실습생들은 입지를 굳힌 언니에 힘입어 재미난 수습기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묵직하고 잘 섞이지 않는 시료 같던 룸 분위기가 팔팔하게 돌아가는 스터러(시료 혼합을 위한 마그네틱 바) 하나로 위로부터 아래로 잘 섞이게 되었다. 이후 캐나다 유학생과의 펜팔을 계기로 물심양면 왕성한 지원군을 남편으로 맞이하게 되었다.C-19 직전까지는 국내를 비행기로 오가며 아이들 학교를 보내며 지낸다고 들었다.



I는...

 동갑내기 중 유일한 과 커플로 이 선배는 나의 숏컷 헤어스타일이 좋았다고 했다. 우리만의 자리와 우리만의 편지들을 함께 간직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서로는 순둥 하다가도 고집스러운 면이 닮았다. 뛰어난 말재주는 없지만 소소한 유머는 좀 통하는 것 같았다. 결혼 후 나는 육아도 일도 적성에 맞는 분야라면 뭐든 즐겁고 유쾌하게 하기를 좋아했다. 친구들은 집에 잠시도 가만히 있질 않는다고 뭐라고들 했다. 연애감정은 제일 오래 끌고 온 듯하나 싸우기도 편하게 자주 싸워온 것 같았다.


 키와 피부색과 생김새가 네 여인은 너무 달랐지만 우린 저마다의 매력을 갖고 있다. 가족의 정서를 챙기며 잘들 살고 있었다. 구르며 박혔다가 모가 났을 때는 연락이 되질 않다가 그래도 서로 끌어당길 때  만나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르다 보면 예쁜 돌도 다른 돌과 비슷한 돌이 되어 갔다. 박혔다가도 금세 물살과 함께 잘도 굴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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