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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작 Jan 06. 2021

흐르는 강물처럼4

경험에도 기준이 필요했다.


5학년 '후'는 1년 전에 다니고 쉬었다가 이번에 록을 한 아이였다. 우리 몸의 구조와 기능을 묻는 질문에 적극적으로 발표했던 후는 6학년 과정을 듣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료는 클래인원이 적고 유순한 아이들로 모인 그룹에서 수업을 해야  될 거라고 했다.

" 진짜예요?, 진짜?"

후는 실험 방 문을 열자마자 양말로 미끄러지듯이 다급히 들어왔다. 후가 이렇게 부풀어 있는 건 바로 오늘이 돼지심장을 해부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냉장고에서 해동된 실험재료를 꺼냈다. 해부 접시

와 핀셋, 해부 매스를 차리고 학생들은 눈을 감아

다.  체험 이전에 경건한 의식이 필요해서였다. 생명과 자연에 대해 소중함을 갖고 절대 장난을 치

지 말자는 약속을 했다. 실험 수칙을 반복 강조했고 네 명이 아이들이 되뇌도록 했다. 그리고 심장구조를 화이트보드에  그려

가며 몇 가지 설명을 마쳤다.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핀셋을 잡고 손을 떨고 있는 아이, 코를 막고 얼굴

을 찡그리는 아이, 책상에서 멀찍하게 앉아만 있는 아이...눈에서는 낯설고 코로는 세상 처음 맡아보

는 냄새였기에 당연했다. 그리고는 수시로 마스크

와 장갑을 챙기기에 바빴다. 그러나 '후'는 양손에 구를 들고 신이 나있었다. 설명이 끝나자마자, 후는 앉아는 있었지만 유순한 옆 친구가 부담스러워할 정도로 가만있질 못했다. 150cm 작은 키의 아이였지만 방에서는 단연 ''가 눈에 띄었다.  '후야...제발...

 핵심을 벗어나는? 행동이 이어졌다.  일어날 수 있겠다 싶던 모습이었다. 심방과 심실을 보고 그림을 그린 다음, 침착하게 순환도를 그리고 있는 다른 학생들과는 달랐다. 쓰윽 싸악...음식 마냥 썰어 모양을 내고 씩 웃었다. 다 녹은 심장에서 뻘건 물이 흰 실험복에 튀었다. 의자를 씰룩거렸다.



"후!..."

종종 이런 행동을 하는 아이도 있지만, 난 화가 났

다. 이름을 불러서 보고서를 들이밀었다.

" 실험의 목적이 뭐였니, 후?"

" ......"

그래도 웃고 있었다.

" 음식이 아니라 실험이야. 후!"

그러자, 후는 기구에 재료를 콕 찍어 먹는 시늉까지 했다.



 순간 나는 이 수업의 방향을 잃을 뻔 했다. 아니 수

업목표와 약속을 정했다는 것 자체가 아직 준비

지 않은 시작이었다. 무모한 도전이었다.

아이들에게 당위적인 체험줄 착각을 했구나. 거부감이 들었지만 교육이라니 떠들고 있는 나조차

쥐구멍으로 숨고 싶었다. 비위에 거슬리지만 체험

이라고 앉아있는 학생들은 정말 하고 싶어는 했던

?...


이후 방학특강인 소 눈, 개구리, 붕어 해부가 주4회

로 채워졌다. 머리가 핑돌고 숨 막히는 냄새의 에테

르에도...  피 비린내보다 더 강력한 소 눈의 비릿

함, 그리고 먹어왔던 생선을 다신 먹지 못할 그런 오감을 뒤집는 붕어까지... 아이들은  잘도 참았다. 절대 바꿀 수 없는  '붙박이 꿈'을 위한 투철한 수업

도! ... 그 후  한 달동안이나 실험실을 빡빡 닦았고  고약한 냄새를 환기시키기에 나 혼자 바빴다.



 소문난 특강을 신청하기 위해 대기했던 학부모들

에게 연락이 왔다. 의대를 가야해서 다음 특강도 꼭 열어달라고... 음식처럼 물고 뜯는 시늉을 하는 

습이 뭐가 잘못된 거냐 하는 학부모들도 있었지만 ... 그때 그 방학특강  이후로 해부실험은 다시는 열지 않았다.


분명 다양한 체험은 도움이 되었다. 생명과학을 좋아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의사가 기를 바라는 아이들에게 큰 경험이 될수도 있긴 했다. 특강을 통해서 칼질이 숙련되고 심장이며 눈이며, 생명과

 분야에 박학다식해진 아이도 많아졌다. 이것도 해보았다고...나만 해보았다고... 자랑하는 아이들

도 생겼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됐을런

지는 모르겠다. 멋모르고 꿈이니 체험이니 너무 어

린 나이에 경솔한 도전이 아니었을까 미안한 마음

이 들었다.


미성년자의 동물해부실습은 동물보호법 개정안에 따라 금지되었다. 생명존중교육에 어긋나므로 2009년 초등교육 과정에서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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