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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작 Jan 19. 2021

흐르는 강물처럼 5

경험으로 충전되는 사람


큰 아이가 일곱살 쯤이었다. 세살 터울인 두 아이와 나는 집안에서 다양한 것들을 했다. 소다와 빨간 색소를 담은 요구르트병을 세워두고 갈색 클레이로 두둑하게 산을 만들어 놓았다. 병 입구로 식초를 부어 화산을 폭발시켰다.걸죽한 용암이 식탁을 뒤덮었다. 괜찮다. 괜찮아야 한다. 호기심이 너무 많은 엄마 스스로 달랬다. 투명한 유리잔 여덟개를 한 줄로 늘여놓고 물의 양을 다르게 해서 실로폰을 연주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아이 친구들과 거실에 둘러앉아  신문을 깔고 세수 비누를 미술 조각칼로 조각을 했다.  " 이런 거 처음 해 봐요 " 라며 한 친구는 머뭇거렸다. 어쩔을 몰라했지만 어느 순간 비누 삼매에 빠져들었다. 아이들은 딱정벌레, 자동차, 사람, 딸기 등 몇 시간을 공들여 만든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서 집으로 가져갔다. 며칠 동안 조각하고 남은 비누 조각들을 물에 뭉쳐 양말을 빨았다. 재미있었겠지? 그럼 괜찮은거다.


한때는 시조를 외우게도 했다. 오후가 되고 퇴근하는 아빠 앞에서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하며 나란히 서서 읊기도 했다. 일상에 작은 이벤트였다. 시조를 A4 종이에 적어 거실의 전신거울 옆에 붙여두면, 둘이 거울 앞에서 열심히 연습을 하기도 했다. 점점 아이들도 나도 발상이 흥미로워져 갔다. 생일에는 '스케치북 러브레터'로 아빠에게 감동을 주었다. 요즘의 방탈출 카페처럼 방마다 암호를 풀어야 선물을 하나씩 획득할수 있었다. "내가 헛살지 않았네" 라며 남편은 그 오월의 저녁을 커피의 향미처럼 음미했다. 어느 저녁에는 식사를 준비한다며, 큰 아이는 모양이 마음에 들때까지 계란프라이를 부쳤고 부치다 보니 다섯개를 부쳤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둘째는 간의 의자에 올라서서 물을 튀고 그릇을 깨가면서 설거지를 했다. 둘은 밀가루 1kg을 반죽을 만들어 그릇을 만든다며 축축한 밀가루 발자국을 곳곳에 남겼던... 체험을 핑계로 한 주방살림 대소동의 날이었다.


둘째가 열두살, 활동반경이 넓어진 뒤로는 둘씩 짝을 지어 자전거를 타고 호수공원에 먼저 도착하는 경주하기, 보카(보드게임카페)에 가서 실컷 먹고 실컷 게임하기, 밤에 잠이 안 온다면서 편을 먹고 실뜨기로 1차전, 소음매트를 뒤집어 그려넎은 사방치기 2차전으로 진 팀이 다음 날 아침 식사 준비를 하기도 했다. 밤잠도 참을 수 있을 시기에는 한 교육대학교에서 밤샘독서캠프를 열어 우리는 참가했고 오후 여섯시부터 다음 날 새벽 네 시까지 온통 책으로만 시간을 보냈다. 선택한 책을 읽거나 런닝맨, 골든벨, 영화감상도 했다. 그 영화가 '라라랜드'였다. 명작으로 너무도 유명하지만 우리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미션완료 두 시간전에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다. 영화줄거리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다시 보진 않았다. 지인들과 함께 참가한 가족캠프 캠핑장에서 MBTI유형을 찾아가고 며칠이나마 가족 서로를 이해하고 챙겨주는 소소한 일상의 전환이 된적도 있다. 이 모두는 두 어른의 투박하고 모난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려주었던 이야기들이다.


아이들과의 쏜살같은 경험은 내 생애 첫 엄마 역할의 탄탄한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거실 벽에 표시되어 있는 아이들의 '키' 눈금만큼 우리 어른들의 지혜도 조금씩 자라고 있다. 어쩔 땐 아이들로 인해 끓는 냄비처럼 화가 날때도 조잘거리는 아이들의 말소리에 화가 누그러지기도 하고, 아이들 웃음소리로 몸 구석구석의 에너지가 충전되고 있는 듯하다. 그날그날의 하루는 머릿 속 한 장의 그림들로 남아 있다.

요즘엔 아이들이 혼자만의 시간을 누리기 좋아하는 시기이다. 이 그림 또한 아이들이 성인이 된 후 꺼내보고 싶은 그림이려니, 참고 성장하고 지혜로워지는 충전을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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