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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작 Feb 25. 2021

규칙이 깨져도 그 안에 규칙은 또 있으니까 1





꼬리에 꼬리를 물어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Dig(디그)라는 단어는 수능 볼 때도 한번 나왔을까 말까 하는 단어였지만 접할때마다 그랬다. 해운대 백사장에 눌러앉아서 두더지처럼 파내다가 딱딱한 돌이 만져질 때쯤 손이 아파서 그만 팠던 기억이 났다. 우물을 파내는 것도 아닌데 바닷물이 적셔지니까 잘 파지다가도 웅덩이는 물어졌다.



어릴 적 동네 구멍가게에 가면 '껌 사탕'이라는 걸 팔았다. 사탕도 아니고 껌도 아니어서 몇 번 망설이다가 드디어 맛을 보게 된 날. 이물감이 드는 가루가 사르르 녹더니, 새콤한 침과 달콤한 향이 입안에서 버무려졌다. 언제 다 사탕을 빨지? 에잇... 깨물어가며 껌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껌은 마침내 입안의 온기를 업고 입속을 둘둘 굴러다녔다. 이런 맛이었구나.




작년 봄에 컨텍했던 교육사업이 재개되었다. 이제나 저제나 팬데믹이 잠잠해지려나 더 이상은 기다릴 수가 없다고 했다. 오프가 어려우니 온라인으로 시범사업을 거쳐 동영상으로 진행을 함께 하자는 것이었다. 일단 시나리오 원고를 일주일 안에 달라고 했다. 5일 동안 초안을 잡았는데 좀 더 쉽게 써달라는 요청을 해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을 해야 했다. 그리고 검토를 해주겠다며 설날이 다돼서야 최종본을 받았다.



이제부터 혼자 땅을 파야할 단계였다. 디그, 두더지, 백사장, 껌 사탕...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 꼬리를 물고 늘어져야겠다 생각이 드는 순간 ... 낮밤을 밥-원고 읽기-잠-밥-원고 읽기-잠을 반복했다. 아니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새벽 4시에 잠들어 아침 7시에 깨거나 저녁 8시에 잠들어 새벽 1시에 깨거나 규칙이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드디어 리허설하는 날이 다가왔다. 학예사분들과 논의를 하던 중 부자연스러운 부분을 다듬고 원고 수정에 들어갔다. 이틀 후면 촬영인데 잠시 멍~하니, 숨좀 돌린 후에 다시 눈과 귀를 바짝 긴장시켰다.




이틀 후, 07시 반부터 메이크업에 들어갔다. '아차' 하고 마스크팩도 못하고 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티스트께서 한 소리 하셨다. 안 그래도 피부가 건조해지고 1일 1팩을 마음먹고 있었는데, 한소리 듣길 잘했다. 시력이 안 좋아서 아이라인 말고는 하지 않던 소중한 눈이 오늘만큼은 시달렸다. 아니 호강하였다. 스크루, 블러셔, 퍼프가 눈코 뜰 새 없이 '바닷물 웅덩이로 밀려들듯' 얼굴을 차분히 채워주었다. 새 사람이 되었다. 누가 인플루언서인지 나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인플루언서들의 준비가 길어져 촬영은 한 시간이 미뤄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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