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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작 Jan 31. 2021

핑계인 듯, 핑계 같은 습관

'보리보리 쌀' 놀이가 떠오르네요


일주일 전, 출장을 다녀오느라 피곤했던 '후'는 다음 날 지각을 한다. 차가 밀렸다고 한다. 이유가 당당하다. 주말에 골프를 쳤더니 힘들다며, 월요일에도 늦는다. 어깨 운동을 해 보이며, 웃는다. 어제 늦게까지 세미나가 있었기에, 잠을 못 잤다며 '후'는 오늘도 또 지각이다. 배시시 웃으며 넘어간다. 등산,가족행 사, 회식... 다  이런 식으로다... '후'의 습관...우리와는 거리가 먼 얘기일까?



가끔 지각을 한다. 전철을 놓치거나 차가 밀렸거나... 나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주로 밀어붙이는 핑계들이다. (아닐 경우도 많다) 부끄럽지만 늦잠을 잤거나 꾸물거리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추억 속의 놀이 중에 맨 손으로 할 수 있는 것, 몇 가지가 있다. (묵찌빠, 손병호 접기 게임, 감자 싹, 보리보리 쌀 , 제로게임 등) 오늘은 '보리보리 쌀' 놀이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어린 시절, 친구와 이 놀이를 했던 기억이 난다. 보리... 보리... 한쪽에서 이렇게 말하며, 상대방의 두 손으로 만든 올가미를 향해 주먹을 집어넣는다. 곧 빠져나온다. 두 번, 세 번... 그러더니... 보리는 슬슬 속도를 늦춘다. 눈빛이 심상치 않다. '이번에도 보리겠지' 하고 방심하는 순간, 쌀을 외치며... 넣었던 주먹을 재빨리 빼낸다. 때로는 쌀과 보리를 외치는데 헷갈려서, 주먹에 잡히고 만다. 상대방의 올가미에 걸리면 끝난 거다. 이제 순서를 바꿔서, 같은 방식으로 하는 놀이다.



지각하는 '후'의 속마음을 들여다본다.

난 피곤해요! 내가 일을 좀 많이 했어요!... 이유가 있으니 그냥 좀 넘어가지요.. 자주 그러는 것도 아닌데, 뭘...

하며, 이유도 핑계도 다양하다. 핑계를 대고 있다는 걸 옆사람은 아는데도...


보리... 보리... 하는 모습이 느물 느물하기까지 하다. 상대방의 눈치를 살피면서, 어떻게 하면 잡히지 않을까? 머리 쓰고 있는 것이 훤히 보인다. 몇 번씩 배시시 웃기도 한다. '절대 쌀 일리 없거든... 날 믿어!' 진실인 듯 진실 아닌, 진실 같은 보리는... 어느새 쌀로 둔갑해 버린다.

핑계인 핑계 같은 지각은 어느새  '후'의 습관으로 찰떡같이 붙어버린다.  누가 보리, 보리 하다가는... 보리 인척 쌀이라는 진실을 말해도 상대방에게 잡히고 만다. 놓아주지 않는다. 올가미가 별거냐? 보리였다고 우기면 되지? 한 번만 봐달라고 한다고? 비록 손 게임일지라도, 작은 손일지라도 억지를 써서 이기는 게 마음이 편한가?(편한가? 편하다면...) 



순서가 바뀌어 상대방이 보리보리 할 차례다. '후'가 올가미가 된다. 상대의 말과... 말 아닌 눈짓과 몸짓까지도 놓치지 않을 기세로 올가미를 골대처럼 지키는 '후'... 역시 방심하는 새 놓치고 만다.'후' 승부욕에 불탄다. 화도 난다. 올가미를 보리(주먹)로 바꾸더니, 상대의 팔과 다리를 향한다. 자신의 핑계는 쌓여 있는 느끼지 못하고, 상대방의 핑계로 화를 낸다. 놀이는 끝난다. 상대방은 놀이할 마음이 싹 가신다.




내일 출근 시간이 되면, 또 '후'에게 시선이 모일 듯하다. 그 Who가 내가 아니길... 핑계를 반복하지는 말아야지.


보리보리 쌀은 놀이일 뿐이다. 손은 바닷속 산호가 춤을 추듯, 흐물흐물하며 주먹을 받아준다. 그러던 손이 어느새 조개처럼 입을 닫아버린다. 놓질 않는다. 지금도 즐거웠던 놀이로 떠오른다. 잠시 동안 '핑계와 눈치로 들이대는' 보리보리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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