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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서리 Dec 09. 2024

이혼

김영희


흙탕물에 담갔다가 꺼내서 햇볕에 말리면 저런 생김일까? 어쩌면 저렇게 새까맣지.


아이를 만난 지 이미 여러 번 째인데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도 가난하게 자랐지만 저렇게 지저분하고 더부룩한 머리를 한 생김은 없었던 듯했다.


큰 아이 이름은 화분이랬다. 화분은 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은 날을 떠올리게 하는 면이 없잖아 있었다. 그날 아이를 업은 채로 머리를 뜯겼던 그날, 아이가 행여 다칠까 봐 제일 걱정됐던 날, 안 그래도 먹지 못해서 힘도 없는 아기가 으애앵, 으애앵 하고 울었던 그날. 그날이 생각나게 했다. 밖에서 화분을 만났던 것도 생각났다. 놀러 나가지 않고 험하게 당한 제 모습을 기다려 화웅의 이름을 물었다. 고작 열 살 남짓한 아이의 눈빛으로 동정이 지나는 순간엔 혀를 깨물고 죽고 싶기도 했었다.


 특히 화분은 새까맣고 윤기 나는 피부결을 가졌고, 생모 정순녀처럼 얼굴에 주근깨가 퍼졌다. 거리를 두고 서서 자신을 쏘아보는 눈빛에 김영희는 저도 모르게 움찔 몸이 떨렸다. 하지만 화분의 시선을 피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랬더니 눈빛이 들어온다. 계속 시선을 마주하다 보니 어딘지 다른 면도 보였다. 반지르르한 눈동자는 송준태를 닮았는지 영특함이 엿보였다.


지금 화분은 구석에 몰린 쥐처럼 한쪽에서 서서 앞으로 나서지도 못했다. 몇 번 만나지 않았지만 어쩐지 시어머니라 불리는 김춘덕 앞에서 유독 주눅 든 모습이긴 했다. 과연 저 아이가 나와 같이 살 수 있을까? 어딘지 모르게 어려운 곳이 있는 아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둘째는 화란은 땡글땡글했다. 잘 여물어 속이 꽉 찬 도토리 같달까. 자그맣지만 야무져 보이는 데가 있었다.  생김도 화분보다 예쁜 편이었다.


"쟤는 생긴 건 쬐그만해도 애가 손도 야물지고 지 막내 고모 어릴 적을 쏙 빼닮았어."


말을 더 얹지는 않았지만 시어머니는 그녀를 향한 시선에 애틋함이 묻어났다. 말을 하면서도 입가가 살짝 올라가기도 했다. 대놓고 표를 내지는 않지만 꽤 귀여워함이리라. 큰아들 화철은 아직 어린애여서 할머니 품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은 채 몸빼 바지에 매달렸다. 아직은 어리다. 이제 다섯 살이랬나? 사랑을 받을 때겠지. 우리 화웅이도 앞으로 사랑이 많이 필요한데…. 이제 곧 돌인데 아이는 최근에 부쩍 살이 올랐다. 여름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될 만큼 놀라운 변화였다.


오늘은 새 집으로 이사를 했다. 집이라고 해봤자 세 사람이 누우면 방안이 가득 따스워지는 느낌의 단칸방이었다. 다섯 평이라고 했나? 일단 연탄방이어서 뭘 해도 크게 어렵지는 않으리라. 바로 앞으로 세수를 할 수 있는 수돗가가 있었다.




 사실 김영희는 음식에는 소질이 없었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곤 밀가루 반죽을 밀어 송준태가 좋아하는 멸치를 넣고 끓이는 게 전부였다.


시어머니를 비롯한 아이들까지 대접을 해야 할 상황이 되자, 김영희는 어지러울 정도로 한숨만 나왔다.


"내가 김치랑 좀 싸 왔느니라."


보자기를 푸니 갖은 밑반찬이 나왔다.


"오늘은 괴기나 좀 넣고 김치찌개를 끓여보자."

"네…."

"화철 애비가 멸치를 좋아 혀. 나중에 내가 멸치랑 고추 넣고 조리는 건 갈챠 주마."

"네."

"할 줄 알어?"


고개를 작게 저으면서도 얼굴이 훅 붉어졌다. 시어머니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딱딱한 표정으로 싸 온 찬들에 눈길을 돌렸다. 김영희는 무얼 어째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대답부터도 애교 있게 하는 건 힘들었다.  


"아직 모르지? 할머니가 다 키워줬다믄서. 내한테 이제 잘 배우그라."


시어머니는 배우면 된다며 사람 좋게 말했지만, 모든 과정을 패스하고 누군가의 아내와 내 아이의 엄마, 그뿐이 아니라 며느리, 모르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부담감은 콱 숨을 막히게 했다.


저녁때가 되어 아이들도 시어머니를 따라 돌아가야 하는 때였다.


"새엄마."


부른 건 화란이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작게 웃었다. 그랬더니 와락 허리를 안아왔다.


"여기서 자도 돼요?"

"여… 기서?"


송준태와 시어머니를 번갈아 바라봤다.  같이 자기에는 방이 턱없이 좁았다. 끼여 자면 못 잘 것도 없을 터였다.


"할머니랑 가."


송준태가 반대를 했다. 아무래도 김영희가 불편할 걸 의식하는 것 같았다.


"자고 가도 되는데…."


김영희가 작게 괜찮다고 말했지만 이내 시어머니는 아이들을 끌고 일어섰다.


"주말에 와서 자. 내일은 학교도 가야 허니께."

"여기가 좋은데."


툴툴거리며 화란이 느리게 일어섰다.


"토요일에 와서 자고 가렴."


김영희는 화란의 뒷목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화란이 김영희를 보고 싱긋 웃었다. 그러자 화란이 갑자기 김영희의 허릿춤을 안고 머리를 비볐다.


"새엄마"


뭔가 울컥했다. 아이가 자신을 따른다는 감각이 가슴 밑에서 북받쳐 올랐다. 잘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정말 자신이 없지만 아이들이 따라준다면 좋은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 김영희는 몰래 차오르는 눈물을 꿀꺽 삼켰다.


"토요일에 뵐게요."

"으…으응?"


고개를 돌린 쪽에는 화분이 서 있었다. 화분은 종일 화웅 곁에서 떠나지 않았다. 화웅이 진심으로 예쁜 듯이 안고 손을 잡고 웃었더랬다.


"토요일에 학교 끝나고 바로 와도 돼요?"


화분이 시어머니 눈치를 보면서 물었다.


"응. 끝나면 바로 와도 돼."


김영희는 아이가 서운할까 봐 틈을 놓치지 않고 대답했다. 일 년 넘게 두렵고 검기만 했던 앞날에 빛이 스며드는 순간이었다.


*


"숙제 다 했어?"


화철은 너무 어려서 대부분 시어머니가 데리고 있었다. 유치원도 시어머니 동네와 가깝다고 했다. 화분과 화란은 조금 길이 드나 싶으니, 좁은 방에서 학교를 다니고 싶다고 나섰다. 시어머니는 엄하게 말렸지만, 김영희는 기쁘게 두 딸이 된 아이들을 받아들였다.


그날은 화철도 집에 데려온 날이었다. 시어머니 김춘덕에게 모임이 있는 날이라고 했다. 오래간만에 좁은 방안에 가족이라 불릴 사람들이 모이니 북적거렸다.


"학교에서 다 했어요."


책가방은 한쪽으로 밀어둔 채 입술을 빨면서 공깃돌을 굴리는 건 화란이었다. 화철은 화웅이와 같이 종이로 접은 딱지를 만지작 거리는 중이었다. 화분은 김영희의 말에 책가방을 열어 산수책을 꺼냈다.


"이게 어려워요."


산수책을 펼치니 마침 분수의 통분을 배우는 시기였던지 온통 분수 계산이었는데 틀렸다는 표시가 이곳저곳에 있었다.


"뭐가 안 되는데?"


화분이 울음을 터트린 건 그때였다.


"모르겠어요."


의외로 굵은 눈물 방울이 책 위에 툭툭 떨어졌다. 꽤나 영리하다고 했는데 어디서부터 인지 셈하는 걸 놓친 것 같았다. 그게 분한 걸까. 아이의 울음에 김영희는 의아했다.


"내가 가르쳐줄까?"


그 말에 눈이 조금 커진 아이는 이내 연필과 종이를 꺼냈다. 김영희는 책을 한번 훑어본 후 화분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화분은 정말 머리가 좋았던 건지, 한번 말했는데도 바로 알아들었다. 그러더니 바로 문제를 척척 풀어냈다. 왜 이제까지 못하고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엄청 잘하는데?"


화분은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책에 있는 문제를 전부 풀어나갔다. 그러더니 산수책의 문제를 다 풀고 나서 일어나 앉았다.


"아빠."


화분이 송준태를 불렀다. 송준태는 한쪽에서 화웅을 안은 채 신문을 읽다가 고개를 들었다.


"산수 문제집 사주세요."


화분의 얼굴은 여전히 눈물로 얼룩덜룩했다. 송준태는 큰 표정변화 없이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새엄마 고맙습니다."


화분이 '새엄마'라는 단어를 입에 담았다. 한 달이 넘는 동안 주말에만 찾았던 아이들은 이제 하루 건너 자고 가길 원했다. 그만큼 가까워졌는데도 화분은 '새엄마'라는 단어를 입에 담지 않았다. 그러던 아이의 입에서 말이 터지자 어깨가 으쓱할 만큼 기분이 좋아졌다.


"공기 놀이 할래?"


화분과 화란의 얼굴이 잠시 굳었다가 환하게 펴졌다.


"아빠도 같이 해요?"


화란이 제의하자 송준태도 기분이 좋았는지 얼른 가까이 붙어 앉았다.


"편은 어떻게 짜?"


화분이 송준태를 향해 편하게 물었다. 아이가 이 좁은 방을 좋아하는 것은 진즉 느낄 수 있었다. 특히 화웅을 예뻐하는 건 처음부터 그랬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오늘은 달라졌다.


"아빠랑 화분이 살고, 새엄마랑 화란이 살자."


이제 일어서기도 가능해진 화웅이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공깃돌을 손에 쥐었다. 그 모습에 전부다 웃음이 터졌다.  


"화철이는 동생 꽉 안고 있어야 한다."


송준태가 말했고 공기놀이가 시작되었다. 어른이 된 김영희와 송준태는 손에 공깃돌이 잡히지 않아 여러 번 실수를 거듭했다. 시어머니의 말대로 화란은 손이 야무졌다. 특히나 작은 손으로 아금박 지게 공깃돌을 잡아냈다. 화분은 놀이는 잘하지 못한다 했었는데 의외로 공깃돌은 잘하는 편이었다.


밤에는 가로로 김영희, 화웅, 화철, 화란이 누웠고 발밑으로 송준태와 화분이 누웠다. 정말 따닥따닥 붙어서 자야 하는 상황이었는데도 김영희는 짜증은 전혀 일지 않았다.


자꾸만 가슴이 뛰었다. 이 아이들과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아이들이 자신을 밀어내지 않음에 감사했지만 새엄마라는 단어가 마음 한쪽을 어둡게 만들기도 했다.


새엄마가 아니라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이들을 어엿하게 잘 키웠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 아이들에게 진정한 엄마로서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아이들에게서 정순녀를 지울 수 있을까? 아이들의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정순녀가 살고 있을 텐데. 그 모든 걸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시작한 삶이었을 텐데. 자꾸만 그녀를 밀어내고 엄마라는 자리에 자신을 앉히고 싶어졌다.


가난하지만 이보다 더할 수 없는 행복 속에서 김영희의 마음에는 욕심이 무럭무럭 자라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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