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흘러간다
경기도 광주에서도 산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구불거리는 산길에는 아직도 며칠 전에 내린 눈이 숨죽이고 쌓여있었다.
폭설이 내린다면 직원들의 발이 묶일 터였다.
그 외딴곳에 사촌언니의 요양병원이 있었다.
언니는 이모부가 군인이셨기에 남부럽지 않은 환경에서 성장했다.
게다가 고명딸이었다.
이모 부부가 애지중지하는 것이 티가 났다.
우리 집은 3남매가 복닥거리는데 이모네에 가면 모든 것이 풍족하고 고요했다.
부럽다.
저렇게 홀로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공주처럼 자라는 언니를 보고 있으면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손재주도 좋아서 그림을 그릴라치면 정말 기대가 되었다.
대표적으로 손재주가 없던 나는 그렇게 그림을 잘 그리는 언니의 손도 부러웠다.
우리와 그림을 그리며 놀아줄 때에는
같은 펜인데 저렇게 다른 결과가 나온다고?
이런 신기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한 가지 석연치 않았던 것은 언니가 이모부부의 생김을 닮지 않았다는 거였지만
유전자의 조화는 하도 기기묘묘한 것이니까 개의치 않았다.
미술을 좋아하던, 그리고 잘하던 언니는 미대를 가고 싶어 했지만
이모부의 반대에 부딪쳐 적성에 맞지도 않는 이과에 가게 되었고
그렇게 들어간 여대에서는 전공도 친구들과도 맞지 않아
(그리고 성인이 되면서 부모에 대한 원망이 더 커지면서)
점점 정상 궤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집을 떠나고 싶다! 나가고 싶다!
그렇다. 내 주변에서 가장 최악의 결혼생활을 보여주는 결혼동기로 언니도 결혼했다.
집이 싫어서 결혼하는 것, 지금 내가 처한 환경에서 탈출하는 출구로 결혼을 사용하는 것.
결혼은 도피처가 될 수 없었다.
그렇게 한 결혼은 언니에게 또 다른 지옥을 보여줬다.
남편이 (물론 내 사촌언니의 수준이 그런 거겠지만) 가관이었다.
한 회사를 오래 못 다니고 사회성이 없고 존재감이 희미하며 제대로 말하는 것을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적어놓고 보니 그런 형부가 한 회사를 오래 다녔다면 그게 더 희한한 일이 될 것 같다.
그렇게 결혼을 했고 남매가 연년생으로 태어났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때부터 형부의 월급은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언니는 가출을 했다.
금지옥엽 키우던 딸이 가출.
이 사실을 알고 이모 부부는 사람을 동원해서 언니를 찾았고
옆에서 보기에 언니에게 분명히 정신적인 문제가 생긴 것 같았지만
그냥 그렇게 혼자 하고 싶은 대로 살게 놔둔 채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성남에서 요구르트 여사님을 하고 있다는 언니는 가끔 이모집에 들렀다.
엄마를 통해 듣기로는 정상은 아니었다.
사람이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 몸이 망가지듯이 정신도 망가진다.
안타까웠다.
조금 더 초기에 정신과 상담을 받았더라면 저렇게 까지 망가졌을까.
하지만 정신과 진료를 꺼리는 어르신들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히말라야 산을 오르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던 언니가 작년 가을에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문병 갔을 때에는 아직 수술 전이었고
몇 개월 못 산다는 의사의 말에 분개하고 있었다.
기분이 나쁘다면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언니에게 '죽음'이라는 선택지 자체가 없다는 거였다.
저런 마음가짐이라면 언니는 분명히 좋아질 거야.
나는 스스로를 위로하듯이 주억거렸다.
횡설수설하고 자유연상법으로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언니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은 더해졌다.
그리고 얼마 전 요양병원으로 문병을 갔다.
수술 후 항암 중이고 어딘가 전이가 된 것 같아 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마음은 눈 쌓인 응달처럼 춥기만 했다.
외진 곳에 있었지만 요양 병원은 다행히 신축이었다.
병원이라는 간판이 없었다면 고급 레지던스라 해도 믿을 외관이라 그 와중에 마음이 놓였다.
병실을 갔는데 노인들 가운데, 언니가 있었다.
언니도 노인이었다. 7차인가 항암을 받은 언니의 몸은 그랬다.
모자도 쓰지 않은 언니의 모습에 골룸이 겹쳐 보였다.
하지만 언니의 눈은 우리에게 종이비행기를 접어주고
놀라운 솜씨로 그림을 그려주던 그때와 다름없었다.
엄마는 또 훌쩍이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누구의 탓인지도 헤아릴 수 없게 된 언니의 현실 앞에서
그저 언니가 몸을 잘 달래서 고통스럽지 않게 퇴원하기를
기도하는 것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유전 얘기를 하다가
사실은......
하면서 엄마가 어렵게 입을 떼었다.
언니는 돌 즈음에 이모부부에게 입양된 아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본인은 모른다는 것도.
언니가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부모를 원망하는 마음 대신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않을까.
하지만 나를 빼고는 다 아닐 거라고 했다.
오히려 더 원망하는 마음이 짙어질 수 있다고.
그래. 그럴 수 있지.
인생은 도대체 몇 번이나 얼굴을 바꾸는 걸까?
병들고 변화를 겪고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고마워하면서
그렇게 구불구불 인생이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