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오픈

wide open

by 루시

26년 테니스 시즌이 시작되었다.

남반구의 호주에서 목하, 열리고 있다.


작년 11월에 현대카드 슈퍼매치 예약을 하려고 했다.

큰 맘을 먹은 거였다. 한 장당 가격이 100만 원이 넘었지만

그랜드슬램 티켓 가격은 거기서 공 하나가 더 붙는다.

내적 갈등을 수만 번 한 끝에 후덜덜 결정 했다.

Once in a lifetime이라는 생각으로

숨을 크게 들이쉬고 결심을 한 날,

낭비가 아니라 절약을 한다는 생각을 스스로 세뇌시키기에 바빴다.


이런 눈물겨운 결심을 뒤로하고 드디어 예매 당일이 되었다.

나는 예매에 집중할 여건이 안되어서 동생에게 부탁했다.

정오에 티켓 오픈이었고 당연히 그전부터 접속 대기 했다고 했다.

하지만 오픈 전부터 대기하면 뭐 하나.

결국 들어간 예매 사이트에서는 표가 매진이었다.(믿기지 않았다.)

들리는 말로는 10분 만에 매진되었다고 했다.

한편으로 슬며시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던 건, 역시 부담스러운 가격 때문일 것이다.

(언제쯤 돈 부담을 안 느끼게 될까? 힝;)


그렇게 미리 보는 호주오픈 결승으로 불렸던

야닉 시너와 카를로스 알카라스의 이벤트 경기 직관을 날리고 난 다음,

나는 레슨을 시작했다.

테니스 레슨.

23년 6월 하노이에서 시차 때문인지 잠을 못 자다가 홀거 루네의 게임을 보고 빠져들었다.

홀거 루네는 예전 외화의 금발 미남 리키 슈로더를 연상시켰다.

모자를 뒤로 돌려 쓰고 북구의 미남이 날리는 샷을 보고 있자니 짜릿했다.

그렇게 타고 들어가다 보니, 오잉?

나달, 조코비치와 같은 영웅들이 저물어 가고

프리츠, 드미노, 드레이퍼, 쉘튼 등 바야흐로 테니스의 새 시대가 열리려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야닉 시너를 보게 되었고 팬덤 자동 입문 되었다.


사실 야닉 시너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테니스 플레이 때문이 아니고

그가 등장할 때 구찌 커스텀 백을 들고 들어오는 Scene을 보고 첫눈에 반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뭐 이런 초현실적인 장면이 다 있지?

190cm가 넘는 압도적 피지컬에 구찌 로고가 촘촘히 박힌 커스텀 백을 메고 코트로 들어오는데

코트를 바로 런웨이로 만들어버리는 매력에 환장.

그런데 플레이도 준수.

24년만 해도 화려한 카를로스 알카라스에 비해서 플레이가 단조롭다고 느꼈는데

그도 플레이를 거듭할수록 탄탄하고 안정적인 플레이에 더해서 다양한 변주를 시도하며 상대의 허를 찔렀다.

(아마도 대런 카힐 코치의 덕이 크겠지?)


작년에는 그랜드 슬램 결승에 모두 시너가 올라서 새벽에 일어나서 보느라 힘이 들었다.

올해도 상황이 허락하면 여러 번의 피곤한 월요일을 맞이하게 될 예정이다.

테니스를 좋아하는 마음은 점점 커졌고 그러다 작년에는 '나도 한번 배워볼까?'의 생각이 들었다.

야닉 시너 이전에도 테니스를 좋아하던 시기가 있었고 무엇보다 테니스는 플레이가 재미있다.


회사 동료가 명동의 오리엔스 실내 테니스장의 리플릿을 갖다 주기도 했다.

신축이래요!

지인들은 주로 말리는 쪽이 많았다.

테니스 엘보 몰라?

부상 위험이 너무 커.

화면으로만 봐라.

이런저런 걱정의 말을 들으며

그리고 ATP 투어를 보면서 보는 걸로 만족하고 있었는데......


새해에는 어찌 된 일인지 돌연 배우자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등록했고 엊그제 두 번째 레슨을 마쳤다.

'학교 다닐 때 운동 잘한다는 말은 못 들었죠?'

라는 코치의 굴욕적인 말을 들었지만

역시 뭔가를 배운다는 것은 항상 신선하고 재밌다.

마음은 탑시드의 플레이어인데 몸은, 이제는 코치가 하는 말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참 희한한 일이다. 이것도 혹시 노화, 네가 주범인 거니?


그리고 어제는 나이키 매장에서 테니스화를 샀다.

149,000원이다. 더 확신이 들면(?) 라켓을 살 생각이다.


이번 호주 오픈은 누가 우승할까? 다음 주면 우승자가 가려진다.

내 사랑 시너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으면 좋겠다.

이제 그도, 나도 시즌 오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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