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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 Jul 03. 2021

차트에 겁쟁이라고 써주세요.

그럴 리는 없겠지만

나는 두려움을 모르는, 용기 있는 자였다. 과거형인 이유는 지금은 슬프게도 아니기 때문이다. 역경이 나타나면 더 힘을 내고 강인한 의지로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는, 철의 여인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허리 MR 검사를 처음 할 때에는 ‘용기 있는 자’의 모습이었다.

“엄마 친구는 거기 뇌 검사 하려고 들어갔다가 도저히 못해서 그 통을 마구 두드리면서 꺼내 달라고 소리쳤대.”

이런 말을 들었어도 공포감이 증가하지 않았다. 그저 아 그런가? 하는 정도의 감상이 들 정도였다. 어쩌면, 몰랐기에 용감했던 것일 수도.

“그저 통에 들어가서 눈을 꼭 감고 기도해. 30분이면 끝나니까.”

엄마의 응원을 뒤로하고 나는 검사실로 들어갔다. 

“절대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검사 선생님의 당부의 말이 끝난 다음 그는 퇴장하고 나는 통 속으로 들어갔다. 눈을 꼭 감은 채.

사실 허리였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어떻게 보면 신체 부위 중에서 가장 움직이기 어려운 부위가 아닐까. 

‘띠~띠~띠~’ 혹은 ‘뚝뚝~뚝뚝~뚝뚝~’ 다양한 소음이 귀마개에 헤드셋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귀 옆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일단 눈을 뜨면 중간에 나오고 싶을지도 모른다는 엄마의 조언에 따라 눈을 뜨고 싶은 것을 나는 꾹 참았다. 왜 뜨고 싶었냐? 단순히 호기심에서. (통에 무슨 레이저 광선 같은 것이 그려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처음이었기에 어디서 나는지 모르지만 그 희한한 다양한 소리도 흥미로웠다. 도대체 이거 무슨 소리야. 다양한 패턴을 선보이면서 변해가는 소리, 왜 나는 것일까? 고주파 소리인가? 아 더럽게 신경 쓰이는구나.

마치 이런 패턴과 같은 소리? 물론 이 패턴은 기분 나쁘지는 않죠.

30분은 상당히 긴 시간이다. 권투선수에게 3분이 긴 시간이듯이 가만히 누워서 시끄럽게 소리를 쏘아대는 통 속에 들어가 있는 30분은 마치 영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 후로도 (2번 정도 더 찍었던 것 같은데) 허리 MR 검사에서는 상당히 ‘강한’ 면모를 보였다. ‘흠, 도대체 그게 뭐라고.’라는 어줍지 않은 생각까지 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수년이 흐른 후 무릎 MR 검사를 하게 되었을 때에도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되레 무릎이 더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반신이니까 통에 들어갈 필요도 없지 않을까? 

“제일 빠른 검사일이 *월 *일 새벽 3시 30분인데 환자 분만 괜찮으시다면……”

말끝을 흐리는 간호사 선생님을 보면서 생각했다. 대한민국은 ‘조인트를 까는’ 아픔을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무릎의 상태를 아는 것이 더 급했기에 나는 그날로 예약을 잡고 새벽에 일어나 차를 몰고 병원에 갔다. 

새벽의 병원은 괴괴했다. 모두 자고 있을 시간이니까. 검사하는 인원, 검사받는 환자를 빼고는 모두 활동을 정지한 채 꿈나라에 있을 시간이니까. 

검사에 대한 익숙한 설명을 듣고 귀마개가 끼워지고 헤드셋을 썼다. 예상대로는 아니지만 다행히 ‘얼굴’ 부분은 통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하반신만 들어갈 줄 알았는데 목까지는 통이 올라왔다. 그리고 다시 익숙한 “딱딱~딱딱~딱딱~’ 혹은 ‘지~지~지~’ 단조로운 기계음이 일정 시간 반복되면서 들려왔다. 사실 딱히 눈을 감을 필요는 없었는데 눈은 감고 있었다. 뜬다고 통 속을 탐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눈을 뜨면 뭔가 징크스가 깨질 것도 같았다. 때는 늦가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늘한 병원의 공기가 (움직이면 안 되는데) 내 몸을 떨리게 만들었다. 게다가 허리 검사 때와는 없었던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두려움이 엄습하는 거다.

‘이거 검사 이대로 받을 수 있을까?’

움직이면 안 된다고 했는데 꺼림칙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소리가 멈췄다. 검사 선생님이 들어왔다.

“환자분, 이거 이렇게 움직이면 검사 못 해요.”

“저 죄송한데 담요 좀 덮어주시면 안 될까요? 추워서 몸이 자꾸 떨려요.”

선생님은 담요를 가져와 덮어 주셨다.

“이제 거의 다 했으니까 조금만 참으세요.”

검사는 다시 재개되었다. 인정사정없는 기계음이 들리기 시작했고 담요를 덮고 깨달은 건 추워서 몸이 떨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두려움에 나는 떨고 있었던 거다. ‘이게 거의 다 했으니까.’ 나는 검사 선생님의 말을 빛줄기처럼 움켜쥐고 사력을 다해서 버텼다. 그리고 가까스로 검사를 끝낼 수 있었다.

병원 밖으로 나오니 차가운 늦가을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휑한 주차장에서 잠을 깨려는지 의사 가운을 나부끼며 자전거를 타고 있는 의사 선생님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 맨 정신으로 MR 검사를 할 수 있을까?’

자유롭게 펄럭이는 의사 가운을 보면서 검사 중에도 마구 움직이고 싶어 하던 내 무릎이 생각났다. 허리보다 무릎이 움직임에 취약했다. 깁스하는 것처럼 꽉 무릎을 묶어주면 안 될까? 그럼 가능할 것 같았는데 검사 도구는 아쉽게도 그렇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헤드셋에서 음악이 나온다는데 그렇다면 나는 좀 더 견디기 수월해질까? 그 지독한 기계음이 들려오지 않는다면? 마음은 심란함으로 뒤덮였다. 

세상은 꽃밭, 마음은 콩밭

왼쪽 무릎을 조심히 사용하고 다시 아프면 찾아오라는 말을 듣고 또 수년이 흘렀다. 그리고 올해 4월, 나는 다시 무릎 MR 검사를 받게 되었다. 일단은 맨 정신으로 받기로 했다. 대한민국의 무릎 상태는 나아졌는지 다행히 저녁 9시가 검사 시간이었다. 시간은 괜찮은데 내 멘털은 괜찮을까. 걱정이었다. 지난번 검사 말미에 갑자기 심박수가 증가하며 검사를 못 받을 것 같았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익숙한 설명을 듣고 검사대에 누웠다. 그런데 심상치 않았다. 심장이 나대기 시작한 거다. 이거 도저히 내 심장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쿵쿵쿵쿵, 마치 클럽에서 테크노 음악을 틀어놓은 것만 같았다. 

‘세상에,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기가 막혔다. 마스크를 했기 때문에 더 그런 것인가?

“저 마스크 안 쓰면 안 될까요?”

“병원 규정이어서 그건 안되고 일회용 마스크로 바꿔드릴게요.”

기계음만큼이나 기계적인 검사 선생님의 답변이었다. 마스크를 바꿨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심장이 쿵쾅되니 무릎도 같이 전율했다. 

‘아 폭망이다.’

기분 탓인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나를 경멸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움직이다니, 선생님이 두 번째 들어왔을 때 이렇게는 검사를 못한다며 나는 검사실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다음번에 하실 때에는 ‘진정’ 검사를 하실 거예요. 보호자분 동반해야 하고요.”

보호자라. 사실 무릎은 부모님께는 알리지 않았다. 그러니 내 보호자는 부모님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친구들인데. 이럴 때 나는 결혼하지 않은 것을 제일 후회한다. 몸이 아픈 것을 나이 든 부모님께는 비밀로 하고 싶을 때. 결혼을 했더라면 보호자가 있었을 것을. (압니다 알아요. 그 남편이라는 작자가 다른 핑계를 대며 오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도. 그러면 더 비참하다는 기혼인들의 푸념도 들리는 듯?)

송파구 벚꽃 둘레길은 절정이었다. 세상에 병원은 완전 미저러블이었는데 여기는 이렇게 러블리하다니. 실내와 실외라는 차이밖에는 없는데. 이 아이러니 앞에서 눈물이 찔끔 났다. 나는 어쩌다가 이런 신세로 전락했나.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에서. 이런 생각으로 자기 연민에 폭 휩싸였지 뭡니까. 

가만있자, 진정 검사를 해? 말어?

사실, 진정 검사를 받기 전까지도 나는 고민했다. 물론 어렵게 선배에게 보호자로서 같이 가 달라는 부탁을 해서 흔쾌히 승낙을 받아놓은 터였다. 하지만, 하지만 수면제 몸에 나쁜 거 아니야? 아니지, 재벌들은 일부러 그렇게 놔달라고 사정하는 약이 아니던가? 그러면 이거 좋은 거 아니냐! 이런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차례 교차했다. 위내시경은 맨 정신으로 하고 한 번 했던 대장 내시경만 수면으로 했었는데 그때 기억은 중간에 깬 기억이 있어서 또 나를 망설이게 했다.

결과적으로 검사 이틀 전에 아는 의사에게 ‘그거 다 배출돼서 나오는 거야.’라는 말을 듣고 ‘그래, 하는 거야, 진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검사 시간은 오후 2시, 금식 6시간. 커피도 없이 물도 없이 오전을? 안 돼.

“껌은 씹어도 되나요?”

“그건 될 것 같아요. 껌만 안 삼키신다면.”

라는 다소 전위적인 답변을 듣고 오전은 껌 씹는데 집중했다. (그런데 역시 안 되겠더라고요. 커피를 안 마시니까 뭘 읽어도 뭘 읽었는지 전혀 머리에 안 들어옴. 일에는 역시 커피?)

그리고 다시 나는 검사대에 누웠다. 담요 덮어주세요. 항상 수면 양말을 신고 온다는 것이 깜박 잊고 맨발인 것을 후회하면서 발 쪽에도 담요를 덮어줄 것을 부탁했다. 진정 주사를 놓아줄 인턴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는데 또다시 심박수가 증가하는 것이 느껴졌다. 

“환자분 괜찮을 거예요.”

이번에는 여자 선생님이 들어왔다.

“네 갑자기 심박수가 증가했죠?”

“네 긴장하신 것 같아서 들어왔어요. 진정 주사 놓으면 괜찮아요. 물론 소리 때문에 중간에 깨시긴 할 거예요.”

다시 살짝 심박수가 증가했다.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 수면인데 소리가, 그 귀찮은 소리가 들린다고? 푹 자는 거 아니었나?

“하지만 진정이 된 상태여서 괜찮을 거예요. 정 못 하겠으면 버튼 눌러주세요.”

“처음부터 좀 세게는 안 될까요?”

“아 그건 좀 곤란하고 중간에 안될 것 같으면 다시 조치를 할 테니까요.”

그녀와 말을 나누는 사이 좀 진정이 되었다. 역시 의술이 아니라 인술인가!

약이 투여되었고 나는 얕은 수면 상태에서 소리를 들으면서 비교적 편안한 상태에서 검사를 마칠 수 있었다. 미친 듯이 심장이 나대지는 않았다. 진정제의 힘이겠지요?

30분을 더 침대에서 안정을 취한 다음에 나는 선배와 온더보더에서 비프 화이타를 먹었다. 기분은, 하도 오래간만에 진정 주사를 맞아서인지 몽롱한 것이 정신을 못 차렸다. (그래, 차리지 말자. 차려봤자 좋을 일도 없다.) 그래도 폴 바셋에서 디카페인 룽고는 마셨다. 정신을 차리고 싶다기보다는 그냥 커피를 안 마시고 하루를 보낸다는 것이 서운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폴 바셋 디카페인 룽고는 처음이었는데 괜찮더군요.

앞으로 또 MR 검사를 할 날이 올까? 그날이 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일단 또 맨 정신으로 하게 될까? 용기를 내어서?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그날은 저녁에도 아주 희한했지 말입니다. 계속 잠이 쏟아지는 거예요. 화장도 지우지 않고 잠들었다가 12시에 일어나서 세수를 했을 정도로 잠이 덮쳐오는 느낌, 요 녀석 봐라 하면서도 싫지 않은 수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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