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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 Dec 25. 2023

해피 화이트 노년

을 빕니다.

8년만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는데,

그래서 낭만은 극을 향해 치닫는데,

주변에 어르신들이 많으니 무작정 낭만만을 논할 수는 없게 되었다.


주말 2주 연속으로 김포 우리 병원에 이모 병문안을 갔다.

이모는, 가부장적인 시대를 살아왔던 분으로

큰아들 바로 밑의 동생으로 태어나 온갖 부당한 불이익을 당하며

그 한을 뼈에 아로 새긴 인생을 살았다.


큰외삼촌은 그 시절 국민학교 담임을 과외선생으로 붙일 정도로,

김치를 따로 담궈 먹일 정도로,

오냐오냐하며 귀하게 기른 자식 답게

게으르고 놀기 좋아하고 공부와는 담을 쌓은 인물이었다.

반면, 운명의 장난처럼 그 밑의 이모는 과외한번 안 했어도

자력으로 우등생의 학창시절을 보냈으나

큰외삼촌은 대학을 보내고 이모는 고등학교가 학력의 마지막이었다.


과외 점철 인생이었던 큰외삼촌은 극성스러운 외할머니의 뒷바라지 덕분에

무사히 한전까지 취직하고 비교적 순탄한 인생을 살았으나

이모는 그렇지 않았다.

과외 선생을 하기도 했으나 똑똑한 사람이 으레(?) 그렇듯이

결혼은 늦었고(50대 였지 아마..) 

젊은 시절에는 바쁜 엄마를 대신해서 우리를 돌봐주기도 했다.


지금도 기억한다. 한여름 외할아버지 생신에 맞춰 외가집에 가면

외할머니를 향한 말하지 못한 서운함과 원망이 뒤섞인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던 이모를.


한국 전쟁을 겪은 세대가 그렇듯이 이모에게 직업적인 성취가 있지는 않았고

자식도 없으니 어떻게 보면 한때 돌봐주었던 조카인 우리가

이모 인생의 현존하는 유일한 결실물인지도 모른다.


40kg도 안되는 몸무게에, 등을 쓸어주면 뼈가 앙상하게 만져지는

종잇장같은 모습으로 이모가 있었다.

그래도 첫주보다는 많이 회복되어 이번주는 안심하긴 했지만

160cm가 넘는 키에 40kg가 안된다니 충격적인 몸무게다.


"많이 드셔야 해요."

"알아. 근데 안 넘어가."


나이가 들면 마르는 부류와 찌는 부류가 있는데 이모와 엄마는 마르는 부류다.

밥 한 끼에도 1~2kg가 왔다갔다 하는 나와 달리

그분들은 1년이 되어도 1kg 찌우기가 미션 임파서블이다.

두 분은 나이가 들면서 살이 마르는 것도, 생김도 영락없이 닮아가는 중이다.

굳이 입맛이 떨어지는 것까지는 안 닮아도 되련만.

나이 들면서 나도 생김이 언니를 닮아가는데

이런 것을 보면 유전자의 강력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태어난 이상, 생로병사를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편안한 노후는, 해피가 넘쳐나는 노후는 만들 수 있다.

물론 노력해야한다.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이모의 노후가 보다 편안하기를, 평화롭기를 다시 한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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