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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계현 Oct 20. 2021

스물일곱, 처음 '나'를 만났습니다

[심리상담 안내서] 나의 첫 상담

[심리상담 안내서] '당연히 그럴 수 있는' 걱정

스물일곱 여름이었습니다. 앞날이 불투명한 이공계 대학원생이었고, 아르바이트로 월 48만 원을 버는 변변치 않은 청춘이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한 상담자의 인터뷰 기사를 봤습니다. ‘상담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살아있지만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몸은 살아있으나 목적이나 의미 없이 살아가는 사람에게 생기를 넣어주는 일이라고, 때로는 진짜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지만 뭔가 대단해 보였습니다. 상담을 한번 받아봐야겠다고 다짐했지요. 이것저것 알아보니 50분 상담을 하는데 10만 원, 망설여졌습니다. 한 주에 한 번씩 상담을 했다가는 번 돈을 다 쓰게 생겼고, 그러면 교통비며 식비를 충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마음을 접기에는 아쉬웠어요. 그래서 딱 한 번 해볼 생각으로 상담을 신청했습니다. ‘그래, 한번 경험하는 것도 좋겠지.’


상담 일정을 예약하고, 당일에 지도 앱을 켜고선 낯선 장소를 더듬더듬 찾아갔습니다. 어찌나 긴장했는지 위치추적을 하면서 따라갔는데도 길을 잃었습니다. 결국 약속 시간보다 10분 정도 늦고 말았지요. 워낙 유명한 분이셔서 시간을 못 지킨 내게 화를 내지 않을까 마음을 졸였습니다. 허겁지겁 자리에 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는데, 상담 선생님이 미지근한 물 한잔을 건네주면서 물었습니다.  


“그래, 어떤 일로 오셨나요?”


지각한 것에만 계속 신경이 쓰여서 잔뜩 긴장해 있는데, 나긋한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금세  차분해졌습니다. “아...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 해서요. 원래 디자이너로 일을 했는데 이게 아닌 것 같아서 다시 심리학 전공으로 편입을 했죠. 근데 어쩌다 보니 이공계 대학원에 오게 됐고요. 근데 졸업 후에 공부를 계속해야 하나, 취업을 해야 하나 고민도 되고, 벌어놓은 돈도 없고, 결혼은 할 수 있을까 싶고...”


무슨 말을 할지 미리 준비해두었는데 다 까먹고 딴 얘기만 늘어놓았습니다. 저도 제가 무슨 말을 하나 싶었지요. 그런데 한번 말이 꼬이기 시작하니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더라고요. 결국 상담 선생님은 제 말을 중간에 자르더니, 가족관계와 어린 시절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했습니다. 몇 마디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선생님은 의미심장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모가 허약해서 울타리가 없다 보니 혼자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네요. 그러니까 시행착오도 많이 겪고...”


‘만난 지 30여분밖에 안됐는데 대체 뭘 안다고...’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눈에는 이미 그렁그렁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고, 목구멍에 뭐가 걸린 듯 아팠습니다. 이후 상담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상담 선생님은 직접적인 위로를 건네진 않았지만, 말 한마디마다 폐부에 찔린 듯 아프면서도 누군가 알아준다는 게 반가웠습니다.


딱 한 번 경험 삼아 상담을 시작했지만, 결국 8개월 간 상담을 지속했습니다. 상담 선생님은 제 형편을 알고 나중에는 상담료를 8만 원으로 깎아 주기도 했지요. 한층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인데 돈 때문에 중간에 그만두지 말라는 의도이셨던 듯합니다. 


상담을 하면서 때로는 선생님께 화가 났고, 때로는 투정 부리고 싶었고, 어쩔 때는 ‘상담을 그만할까?’ 저항이 들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선생님이 상담 중에 립스틱을 고쳐 바르셨는데, '나를 무시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상시에 저 같으면 그냥 속으로 숨겼을 겁니다. '내가 괜히 얘기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요. 그런데 저도 모르게 욱해서 상담 선생님께 쏘아붙이듯이 말했습니다. "제가 말하는데 안 들으시는 것 같아요. 어떻게 그러실 수 있어요?"


말하고 나서 0.000001초 후에 바로 '아차' 싶었습니다. 선생님이 화를 내시진 않을까, 이제는 나를 싫어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울끈불끈 거렸죠. 그런데 상담 선생님은 멋쩍게 웃으면서 그러셨습니다. "그럴 리가~ 난 김선생님한테 더 예쁘게 보이고 싶었을 뿐인데~" 혼이 날 줄 알았는데 농담으로 받아주시는 걸 보면서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건 제게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전 어렸을 때부터 의젓하고 차분한 딸이었습니다. 형편이 좋지 않아 부모님은 늘 돈에 시달리셨고, 크고 작은 부부싸움이 잦았거든요. 그런 부모님께 정서적으로 의지하기 힘들었지요. 불평이 있어도 투정 부리지 않고 꾹 참았고, 힘들어도 힘든 내색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부모님이나 다른 누군가에게 화가 나면 그 감정은 마음 저 깊숙한 곳에 꽁꽁 묻어두어야 했지요.  


상담을 하면서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충족되지 않은 부분이 채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부모에게 그러하듯 의지했고, 언니에게 그러하듯 티격태격 싸웠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내 감정을 표현하고, 그 감정이 부드럽게 수용되는 경험을 하면서 자신감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습니다. 상대방 눈치를 보지 않고 그때그때 감정을 표현하니 후련했습니다. ‘이게 진짜 내 감정이구나' 싶었지요.


상담 회기는 한참 오래전에 끝났지만, 아직도 힘든 상황이 닥칠 때마다 선생님을 떠올립니다. ‘선생님은 지금 상황에서 뭐라고 말씀하실까.’ 그렇게 선생님의 음성과 모습을 떠올리면서 지친 나를 다독이곤 합니다. 부모님은 ‘힘든 상황’에도 먹이고 입혀서 저를 키워주셨고, 상담 선생님은 제가 ‘힘든 상황’ 일 때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스스로 ‘나’를 도울 수 있게 기회를 주신 것 같습니다. 


스물일곱, 비로소 ‘나’를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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