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계현 Oct 21. 2021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입니다

[심리상담 안내서] 관계를 통한 치유

사람.

세상 어떤 일이든 ‘사람’이라는 가치가 먼저입니다. 당연한 말 같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공계 석사 재학 시절, 2천만 원 연구 프로젝트를 위해 밤낮으로 일했습니다. 조금이라도 게을리하면 교수는 훈계처럼 말했지요. 각자 자동차를 돌리는 부품이라고 생각하라고, 부품 하나라도 빠지면 그 자동차가 굴러가겠냐고. 혼신을 다하는데 ‘부품’ 취급을 당하니 힘이 빠졌습니다.


의류 디자이너로 일을 하면서 회사의 부품이었던 적도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디자이너의 보조였으니, 빠져도 될 ‘부품’이었지요. 내 자리를 갈아 낄 ‘부품’이 널리고 널렸기에, 행여 빠질까 봐 아등바등 살았던 나날이었습니다.


힘들게 사는데, 정말 열심히 사는데, 나아지기는커녕 행복하지가 않았습니다. 노력해봤자 기능을 잘하는 부품이 될 뿐이니까요. 부품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잖아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누가 불러주지 않으면 내가 부품인지, 그냥 동그라미인지, 그냥 쇳덩어리 인지도 모르니까요.


하나뿐인 인생, 무언가의 부속이 아니라 ‘나’이고 싶었습니다. 어떤 역할이나 기능, 도구로서 가치를 발하는 게 아니라, ‘사람 자체로 존중받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사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상담사가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사람됨을 찾아주고,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일이니, 얼마나 좋습니까.




상담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입니다.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는 의미도 있지만, 진짜는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려면 우선 호감이 있어야 합니다. 상담자가 전문가로서 유능을 보여주고 내담자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할 때, 내담자는 상담자에게 호감이 생깁니다. 또한 내담자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진심으로 노력하는 모습이 보일 때,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호감이 생깁니다.


서로 호감을 느끼면 ‘치료 동맹’이 맺어집니다. 한 배를 탔다고 말하기도 하고, 사막에서 함께 길을 찾아 떠난다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요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 ‘우린 함께’라는 마음입니다. 서로 믿고 의지해야 가능한 마음이지요.


평소에도 주변 사람과 관계를 잘 맺는 사람은 상담에서도 ‘치료 동맹’을 맺기가 쉽습니다. 관계를 잘 맺는다는 건, 친구가 많고 활달한 성격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믿을 만한 타인이 있었다면, 사람에 대해 최소한의 믿음이 있다면 가능합니다.


그런데 간혹 ‘관계 맺기’가 정말 어려운 분을 만납니다. 사람에 대한 깊은 상처가 있어, 마음을 여는 게 힘든 분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관계 맺기가 왜 어려운지 아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됩니다. 적어도 '자기 이해'가 되면 '나와의 소통'은 되는 셈이니까요.


사람에게 배신당한 일이 많으면 마음을 보여주는 게 두려워집니다. 당연하죠. 또다시 배신당할까 봐 위축되는 건 자기 보호니까요. 자신이 생각하는 자기 모습이 너무 형편없어서 드러내기를 주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대방이 너무 좋은데 자신의 실체를 알면 싫어할까 봐 겁을 내지요. 그만큼 사람과 가까워지기를 열망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사랑받고 싶은 거고요.


관계를 맺고자 하건 본능입니다. '혼자' 책을 보지만, 책을 보는 행위 자체가 '저자와 관계를 맺는 일'입니다. '혼자' 밥을 먹으면서도, 어느새 유튜브 채널을 검색하면서 누군가와 소통하고 있죠. '혼자'가 좋아서 깊은 산골짜기에 들어간 '자연인'도 외지에서 사람이 찾아오면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더란 말이죠.


관계 맺기가 어렵더라도 사람을 만나는 일에 마음을 닫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관계는 누구를 만나고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거든요. 혹 지금까지는 운이 나빠서, 사람들에게 배신당하고 버림받은 경험만 해왔더라도, 앞으로는 누굴 만날지 모릅니다.


그런데 만약 매번 비슷한 사람만 만나게 되고 비슷한 결말이 반복된다면, 잠시 멈춰서 자신의 관계 패턴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는 자석과 같아서, 내가 끌어당기는 부분이 있고 끌려가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거든요. 상호작용이니까요. 그리고 관계 패턴을 제대로 알려면, 한번 더 관계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상담자와의 관계 속으로요. 하지만 안심하세요. 상담자는 당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만큼만 조금씩 다가갈 테니까요.

이전 07화 스물일곱, 처음 '나'를 만났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