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계현 Oct 20. 2021

적당한 뒷담화는 찬성입니다

[심리상담 안내서] 속풀이 한 판, 토해내면 시원해요

살다 보면 내 가족인데, 정말 이해되지 않는 때가 있습니다. 수십 년을 함께 살았음에도 ‘대체 왜 그럴까?’하고 느껴지는 순간. 칠십이 넘은 연세에도 한 푼 더 벌겠다고 밥때를 매번 놓치는 아버지, 통화할 때면 상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리는 어머니, 이해하고 싶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입니다. 피가 섞인 사이에도 이럴진대, 하물며 ‘무촌’ 관계인 부부 사이는 어떨까요?




부부상담을 하다 보면 상담 초반에 늘 듣는 말이 있습니다. ‘배우자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그 말은 즉, ‘내가 기대했던 바와 다르다. 내 가치관과 맞지 않다.’라는 말이겠죠. 그래서 상담 초반에는 주로  ‘배우자에게 어떤 부분을 기대했는지,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아서 내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지금 마음 상태가 어떤지’를 다룹니다.


가급적 '나'에 초점을 맞춰서 '감정’을 이야기하도록 합니다. 처음부터 문제 해결로 접근하면 안 됩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나와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해야 하는데, 마음이 다친 상태에서는 불가능해요. 그래서 감정을 먼저 다룹니다. 화가 났든, 짜증이 났든, 딱딱해진 마음이 누그러질 때까지 살살 어루만져주는 게 우선입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게 뒷담화죠.


"결혼 전에는 내 얘기를 먼저 들어주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결혼하더니 시어머니 얘기 한마디면 껌뻑 죽어요. 그런 마마보인줄 알았으면 결혼 안 하는 건데, 왜 효도를 둘이 하냐고요, 지 혼자 하면 되지. 시댁에 가면 전 늘 부엌에서 음식 장만하고 설거지하느라 바쁜데, 저희 친정에 가면 남편은 그냥 앉아만 있어요. 그럼 우리 엄마 힘들까 봐 제가 또 거들거든요. 전 여기 가나 저기 가나 계속 일 하는 거죠. 그래서 지쳐요. 남편이 날 위해줄 줄 알았는데, 속은 기분이예요."


- 상담자에게 뒷담화를 해보세요.


상담 초반에 이런 뒷담화는 솔직하게, 시원하게 하는 게 좋습니다. ‘아, 이렇게까지 말하니 배우자에게 조금 미안해지는 걸…’하는 마음이 들 때까지요. 이때 적당한 수위가 필요합니다. 도가 지나치면 ‘아, 역시, 이런 배우자는 쓰레기야. 바뀔 수 없어.’라는 마음까지 가버리거든요. 친구에게 하는 뒷담화와 상담자에게 하는 뒷담화가 다른 이유는 ‘적당한 수위’를 조절해주는 것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저도 제 친구들에게 남편 뒷담화를 할 때, 소심한 친구는 ‘야, 그래도 니 남편인데 어떡해~’하면서 저를 답답하게 만들고, 좀 과격한 친구는 ‘야, 헤어져. 헤어져.’하면서 저를 ‘아차'싶게 만들거든요.


뒷담화는 속이 시원해지는 정도까지만 해야 좋은 것 같습니다. 흥분해서 더 하다가는 배우자에 대한 ‘부정적 편향’이 ‘확증’이 되어 버려요. ‘마라 맛은 매우니까 조심해서 먹어야지’라고 생각해도 되는 부분을 ‘마라 맛은 독해. 못 먹어. 절대 못 먹는 거!’라고 극단적으로 낙인찍어버릴 수도 있어요.


사람 때문에 힘들 때, 이해하기 어려운 일로 답답하고 괴로울 때, 뒷담화 한 판 어떠신가요? 소문이 날까 무섭거나 상대가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 것 같다면, 은둔의 상담자를 한번 찾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가서 이렇게 대놓고 말해도 좋아요. ‘선생님, 저 남편 욕 좀 실컷 하고 갈게요.’

이전 08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