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계현 Oct 19. 2021

누구를 찾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 상담하기 전에 '당연히 그럴 수 있는' 걱정

팔다리가 부러지면 정형외과에 가고, 감기에 걸리면 내과나 이비인후과에 간다. 증상이 명확할수록 어디에 가야할지 뚜렷하다. 하지만 마음에 난 상처는 찬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판단하기가 어렵다. 얼마나 아픈 건지도 잘 모르고, 언제 어디로 찾아가야할지 알기 어렵다. 대체 뭘 보고 판단해야하며, 어떤 전문가를 찾아가야 할까?


아리송한 마음에 인터넷 검색을 뒤적여보기도 할거다. ‘우울, 상담, 정신과’ 등의 검색어를 들이밀고 누군가의 후기도 읽어본다. 누군가의 경험담은 읽을 때는 도움이 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사람의 이야기’, 내게도 적용될까 의심스럽다.


인근에 병원이 몇 개 있는데, 막상 찾아가려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괜히 갔다가 ‘뭐 이런 걸로 왔냐’는 시선을 받으면 어쩌지, 보험 기록에 남지는 않을까, 나중에 취업이나 진학에 불이익이 가지는 않을까, 이런 저런 고민에 주저하게 된다. 


그렇다고 상담센터에 가자니 이상한 상담사를 만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뉴스에 보면 자격 없는 허울뿐인 상담사도 많다는데, 사기꾼에게 걸릴까 두렵기도 하다. 게다가 시간당 10만 원이라는 상담료도 상당히 부담이다. 이래저래 고민하다가 시간은 가고, 바쁜 생활에 쫓기다 보면 결국 문제는 흐지부지. 그냥저냥 살아지는 거에 만족하거나 심각한 문제 패턴에 적응해버리고 만다.


어디를 가야할지 모르겠다면, 지금 뭐가 문제인지도 헷갈린다면, 일단 어디든지 간에 지금 만날 수 있는 전문가를 찾아갔으면 한다. 병원이어도 괜찮고, 상담센터여도 괜찮다. 찾아보면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상담기관도 꽤 여럿이다. 학생이라면 교내 상담센터가 있을 것이고. 복지가 좋은 직장이라면 사내 상담사 혹은 협약이 된 외부 상담기관이 있을 거다. 각 시군구에 정신건강복지센터나 건강가정지원센터, 청소년상담복지센터도 있다. 


혼자 고민 말고, '근처에' 있는 정신건강 전문가를 찾아서 현재 상태를 점검하고, 어떤 방법이 좋을지 의논했으면 한다. 검사만으로 끝낼지, 심리상담을 지속할지, 약물치료를 할지, 여러 방법을 병행할지 함께 결정하는 거다. 마음은 찬찬히 들여 보지 않으면 어느 정도 아픈지 잘 모를 때가 많다. 어디에서 상담해야할지 혼자 정하지 말고, 그러한 치료계획을 세우는 것부터 전문가와 함께 했으면 한다.


만약 주변에 당장 이용 가능한 전문기관이 없다면, 우울감이나 스트레스 관련해서 기본적인 자가 검진을 해보는 것도 좋다. 한두 가지로 판가름하기 어렵다면, 여러 검사를 중복해서 실시해본다. 검사 항목을 통해서 자신이 겪고 있는 증상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면, 그 증상이 ‘수일간 지속되는지, 생활에 불편을 줄 정도인지, 자제할 수 없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주관적으로 느끼기에 괴롭고, 직장 생활이나 가정생활에 영향을 줄 정도라면 비용을 들여서라도 전문가를 찾아야 하니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vs 상담전문가


병원을 찾아갈지, 상담센터를 갈지 고민이라는 질문을 의외로 많이 받는다. 어디든 가고 싶은 데로 가라고 말해준다. 보통 병원은 중증의 정신질환을 다루고, 상담센터는 그보다 경미한 수준의 문제를 다룬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구분이 뚜렷하지는 않다. 무엇보다 찾아가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문제가 중증인지 경미한 수준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으니까.


한 번은 병원에서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약물치료를 하다가 전문의 추천으로 상담센터에 온 분이 있었다. 약을 먹으면서 공황 증상이 차츰 완화되고 있었지만, 약에 대한 의존을 줄이기 위해서는 ‘완벽해져야 한다는 강박관념’, ‘실패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을 이겨내야 했다. 


반대로 심리상담을 원해서 왔다가 병원으로 의뢰되는 경우도 있다. 증상이 뚜렷해서 사회생활에 막대한 지장을 줄 정도라고 판단될 때, 인지능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상호작용이 어렵다고 판단될 때, 그 외 증상의 심각도와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상담치료보다 약물치료가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될 때 내담자에게 병원치료를 적극 권유하고, 내담자의 동의를 얻은 후에 병원에 의뢰한다. 


또 어떤 경우는 병원 약물치료와 심리상담을 병행하기도 한다. 우울 증상과 불면증이 심각했던 50대 여성분이 있었는데,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니 예민해져서 가족과 부딪치는 일이 많아지고, 무단결근으로 직장에서도 잘릴 위기였다. 빠른 시일 내에 증상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심리치료로 개선되는 것보다 삶이 무너지는 게 더 빠를 것 같아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했기에, 약물치료를 하면서 가족 모두 심리상담을 했다. 


약물치료가 효과적인지, 심리상담이 효과적인지, 병행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에 대해서는 개개인에 따라 다르다. 각 방법은 장단점이 있고 개인의 상황과 증상에 따라 달라지니까. 무엇이 더 효과적인지 일대일 비교는 어렵다. 그런데 임상현장에서 체감하기로는 치료방법보다 더 중요한 요인이 있다. 바로 ‘치료자와의 관계’. 어느 기관을 방문하든 간에, ‘사람’이라는 치료제가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된다. 


약물치료를 하다 부작용을 겪을 때, 평상시 의사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면 의사의 권고를 받아 다른 약으로 바꿔서 복용한다. 그런데 의사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약물 부작용을 핑계로 치료 자체를 거부하려 한다. ‘나랑 약물치료는 안 맞아. 약은 믿을 게 못돼’하면서. 


상담도 마찬가지다. 상담자와 내담자가 서로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하면서 ‘관계’라는 게 맺어지는데, 그 관계가 어떤 지에 따라 상담 성과가 달라진다. 사람에게 상처 받은 마음은 결국 사람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서 치유되는 건지. 자신이 겪는 증상에 가장 효과적인 치료방법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방법을 행하는 사람도 결국 사람이기에, 결국은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가 가장 중요한 변수다. 


그럼 수많은 정신건강 전문가 중에서, 나와 잘 맞는 사람, 내가 신뢰할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전문가는 어떻게 찾아야하는 걸까? 학력이나 자격, 경력은 전문성을 가늠할 수 있는 밑바탕일 뿐, 그것만으로는 알기 어렵다. 고학력과 높은 연봉을 받는 배우자와 무조건 행복하게 살아지는 게 아니듯이, 학력이나 경력으로 잴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있다. 내가 눈을 마주치고 싶고, 내 마음을 받아줄 것 같고, 내가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 그런 정신건강 전문가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아쉽게도 왕도는 없다. 유일한 방법은 ‘일단 만나보는 거다’. 시행착오를 무릅쓰고, 나를 위해서 노력해보는 거다. 


누구든, 만나보고 느끼고 경험해야 알 수 있다.

이전 04화 죄송한데, 그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