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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계현 Oct 16. 2021

나를 이상하게 볼까 걱정돼요

- 상담하기 전에 '당연히 그럴 수 있는' 걱정

똑똑똑. 

“네, 들어오세요.”


상담실에 처음 온 사람들은 대개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 의자에 앉는다. 낯선 장소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이다. 상담자는 내담자를 최대한 편하게 해주려고 차를 권하고, 나긋한 목소리로 응대한다. 상담실에 오기 전까지 ‘올까말까’ 무수히 고민했을 걸 아니까. 그런데 막상 상담실에 도착했어도 여전히 떨린다. ‘내가 오기 잘한 걸까, 괜히 온 건 아닐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는 순간, 상담자가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상담은 그렇게 시작한다. 낯선 곳에 조금씩 적응해가면서,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각자의 속도대로. 처음에 주저하다가도 이내 마음을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분이 있는가하면, 아주, 조심스럽게, 야금야금 속마음을 내비치는 사람도 있다. 각자 ‘자신의 마음에 접근하는 속도’가 다르니까.


그 속도는 존중받아야 한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건, 내가 나를 들여다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심리상담은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마냥 기다려줄 수는 없다. 유료상담이라면 시간이 곧 돈이고, 무료상담이라도 상담 기회가 매번 주어지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상담자는 어떻게든 이야기를 끄집어내려 할 거다. 하지만 상담의 주도권은 내담자에게 있기 때문에, 뭐든 억지로는 안 된다. 내담자의 마음이 움직여야 한다. 어떤 분은 상담자의 손짓에 맞장구를 치면서 ‘마음 탐색’을 시작하는가 하면, 어떤 분은 끝까지 도망 다니다가 상담을 마치기도 한다. 


그렇게 허무하게 상담을 마치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면서 아마 그럴 거다. ‘아, 역시 괜히 왔어. 뭔가 후련하지도 않고 찝찝하네.’ 만약 그런 경험이 있더라도 ‘상담받기로 한 선택’을 후회하거나 자책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차라리 실력 없는 상담자를 욕하시길. 상담자의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마음이 열리지 않았을 수 있으니까. 다음번에, 다른 상담자와는 ‘다른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사실 자신의 ‘진짜 마음’을 이야기하는 데는 연습이 필요하다. 한 번에 잘 되지 않아도 괜찮다. 조금씩, 조금씩,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게 중요하다. 정 이야기를 꺼내기 어렵다면, 우선은 ‘내가 왜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운지’ 먼저 고민해보는 게 좋다. 어떤 두려움이나 걱정이 있지는 않은지. 어떤 걱정이든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는 있으니까. 그렇게 마음을 다독이면서 자기 마음으로 들어가 보는 거다.


혹시 내 이야기를 들으면 ‘상대방이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걱정되는지. 내게 어떤 편견을 갖지 않을까, 나를 흉보지 않을까, 그런 염려 말이다. 언젠가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중3 아이와 상담을 한 적이 있다. 학교폭력위원회 조치로 이루어진 의무 상담이었는데, 첫 상담 시간에 그 친구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묻는 말에 ‘네, 아니오’로 짧게 답할 뿐,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벽을 마주하고 독백하듯이 지루한 50분이 지나고, 첫 상담을 마쳤을 때 막막했다. 앞으로 어떻게 상담을 이어가야하나,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하나 고민이 많았다. 상담을 마치고 아이가 나가려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선생님 우산 쓰고 갈래?”라고 말했더니, 아이는 고맙다는 말도 없이 우산을 들고 쌩 사라졌다.


그런데 그 다음 시간부터 아이는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눈도 잘 마주쳤고, 자기 이야기도 술술 잘하는 편이었다. 첫 시간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라 적잖이 놀랐다. 이렇게 이야기를 잘하면서 처음 만났을 때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선생님이 저를 싫어할까 봐요.”라고 말했다.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되어왔으니 상담 선생님이 자신을 ‘문제아’로 볼 것이라 생각해서, 아예 마음을 닫아버린 거였다.


아이의 말을 들으면서, 조금 부끄럽기도 했고, 안도감도 들었다. 부끄러웠던 건, 아이가 학교에서 벌인 폭력 사건을 전해 듣고 첫 상담에서 입을 꾹 닫은 모습을 보면서, ‘가해자 상담이고 의무교육 시간만 채우면 되니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자.’라고 스스로 다독였던 내가 생각나서다. 나도 모르게 아이에 대한 편견이 있었던 거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아이가 마음을 열고 속마음을 들려준 것에 대해 안도했다. 스스로 자신의 두려움을 드러냈고, 그 두려움 안에 있는 색색가지 마음을 펼쳐냈으니까. 


자신이 나쁜 아이로 비춰질까 염려되었다는 말은 ‘난 나쁜 애가 아닌데 선생님이 안 믿어 줄까봐’라는 ‘의심’과 ‘내가 정말 나쁜 사람이면 어쩌지...’하는 ‘걱정’을 모두 담고 있다. 나아가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소망’과 그렇게 될까봐 ‘불안한 마음’도 함께. 


만약 상대에게 어떻게 비칠까 염려하는 마음 때문에 속마음을 말하기 꺼려진다면, 그 안에 들어있는 ‘의심’과 ‘소망’, ‘걱정’을 한번 찾아보길 바란다. 내가 어떤 부분을 두려워하고, 어떻게 되기를 원하는지.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듣고 상대가 어떤 반응을 보일 거라 예상하는지. 


상담을 시작하기 전에 ‘상담자가 나를 이상하게 볼까’ 염려되어 말하기 두려워진다면, 그런 ‘염려되는 마음’을 먼저 꺼내보면 어떨까 싶다. 상담에서 꺼내고 싶은 진짜 주제에 다가가기 전에 ‘그 주제를 꺼내기를 힘들어하는 내 마음’에 대해 먼저 다루는 것, 그 자체가 상담이 시작되는 첫 관문이자, 대인관계에서의 문제를 해결하는 훌륭한 상담 주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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