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시장에 쪼그려 앉아 나물을 팔던 상인은 저녁이 되면 생선가게로 향합니다. 그날 번 돈으로 고등어 두 마리를 사지요. 약국에 들러 무릎에 붙일 파스도 삽니다. 제일 센 놈으로 달라고 해요. 내일도 장에 나가려면 무릎이 성해야 하니까요. 고등어 반찬은 온종일 집에 처박혀있는 큰 딸 주려고 샀습니다. 이혼 후 함께 살게 된 마흔넷 딸내미는 집에서 뭘 하는지 통 나가지를 않습니다. 집 안에는 소주병과 담배 꽁치만 나 뒹굴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걸 보니 잘 씻지도 않는 눈치입니다. 뭐라 잔소리를 하면 ‘엄마가 해준 게 뭐 있다고 지랄이야!’하면서 눈을 부라립니다. 딸이 정신이 이상한 것 같습니다. 속이 상할 때면 맞받아치면서 싸웁니다. 머리가 어지러울 때까지 티격태격하다 보면 해가 지고, 일상은 그렇게 반복됩니다.
어머니는 딸을 도와 달라며 보건소 심리지원센터에 찾아왔습니다. 정작 딸은 함께 오지 않았지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심리검사를 해보았는데, 어머니는 우울 증상이 꽤 심각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괜찮다며, 딸이나 어떻게 사람 구실하게 만들어달라고 했습니다. ‘누구 먼저’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어머니의 우울은 딸에게 영향을 줄 거고, 딸의 우울이 다시 어머니를 자극할 테니까요.
“장에 안 나가는 날 있으세요?”
“화요일. 장이 다 쉬어서 사람이 별로 없응께.”
“그날 보건소 오세요. 저랑 얘기도 하고, 물리치료실에서 무릎 찜질도 받으시고요.”
“.... 공짜요?”
“그럼요. 나랏돈으로 하는 거예요. 어머니 평생 열심히 살면서 세금 낸 거, 그 돈으로 하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마세요.”
다음 주 화요일, 어머니는 딸을 데리고 상담실에 왔습니다. 딸이 심리지원센터에서 상담하는 동안 어머니는 보건소 2층 물리치료실에서 찜질을 합니다. 그리고 딸의 상담이 끝나면, 이번에는 어머니가 상담실에 들어오고, 딸은 1층 대사증후군실에서 운동처방과 영양 상담을 받았습니다. 보건소 심리지원센터는 이런 게 좋았습니다. 마음과 몸을 함께 다독일 수 있다는 거요.
누구나 심리상담을 하려면 나랏돈도 필요하고, 체계적인 협업도 필요합니다. 물리치료, 사회복지, 간호, 영양, 어느 하나 소홀하지 않게 연결되어야 해요. 나이가 들수록 마음의 문제가 몸의 신호로 드러나게 되거든요. ‘나는 괜찮다’며 살아오신 어르신일수록 ‘몸은 안 괜찮아’라고 격렬하게 신호를 보내는 경우가 많아요. 소화가 잘 안되거나 밤에 잠을 설치거나 하면서요. 그런 면에서 보건소 심리지원센터는 참 좋았습니다. 물리치료사, 사회복지사, 영양사, 의사가 한 건물에 있으니까요.
또 하나 좋았던 건, 상담료가 유료였다면 만나지 못했을 삶을 많이 접했던 겁니다. 어떠한 이유로든, 누군가에게 돈을 주고 상담하는 자체가 생소한 분들이 ‘심리상담’을 하면서 나아졌습니다. 혹은 덜 나빠졌죠. 때로 어떤 분들에게는 더 나빠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변화입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누구나, 아무 조건 없이 상담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살이나 자해처럼 꼭 위기 상황이 아니더라도, 내 문제가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여도 부담 없이 상담을 신청했으면 좋겠습니다. 상담은 다친 후에 바르는 연고이기도 하지만, 다칠까 봐 입는 ‘보호대’이기도 하니까요. 뭐든 알아야 덜 다치고, 조심하게 됩니다. 까진 상처는 아무는 데 오랜 시간과 고통이 수반되니, 사실 최대한 상처를 덜 받는 게 좋지요.
이 글은 심리상담에 관심이 있지만 아직 접해보지 못한 분들을 생각하면서 썼습니다. 혹은 상담을 몇 번 접했던 분들이 심리상담을 하면서 느꼈던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썼습니다. 제 경험이 아직 미천하고 배울 게 많은지라, ‘심리상담’에 대한 글을 남긴다는 게 부끄럽습니다. 부족함이 드러난다 해도, 어느 지점에서든 누군가에게는 분명 도움이 되리라는 마음으로 용기를 냅니다.
있는 그대로,
‘누구나’ 사랑스러운 존재임을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삶의 어딘가에서 계속 애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