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담하기 전에 '당연히 그럴 수 있는' 걱정
한 남자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상담실에 앉아 있다. 푸석한 얼굴과 더벅머리, 구겨진 셔츠차림은 요즘 생활이 편치 않음을 보여준다. 맛이 간 고등어처럼 축 쳐져서는, 콧등에 뿔테 안경이 걸쳐져 떨어 질랑 말랑 하는데도 올릴 생각을 안 한다.
6개월 전에 사업 부도를 겪었고, 어제는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초등학교 6학년, 3학년 두 아들은 아내가 키우기로 했고. 양육비라도 보내야했기에, 급하게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에, 구청담당자로부터 심리상담을 권유받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어딘가 불안해보였을테니까. 그렇게 상담실에 방문한 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혼잣말하듯이 말했다.
“상담한다고 뭐, 달라지나요?”
구청 담당자를 통해 사정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의 질문에 섣불리 답하지 못했다. 공들여 준비한 사업이 무너지기 시작할 때, 어떻게든 막아내려고 마지막 힘까지 쥐어짰을 것이고, 예민하고 뾰족해진 상태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에게 상처 주는 말도 뱉었을 테고, 자신에 대한 실망과 좌절, 세상에 대한 배신감을 잔뜩 느꼈을 그에게, 어떤 위로인들 마음에 가서 닿을까 싶었다.
‘그래도 힘을 내야지요.’ 같은 말은 전투력을 상실한 군인에게 ‘죽기 싫으면 나가서 싸워!’하고 외치는 것처럼 폭력적으로 느껴지리라. 그렇다고 '아뇨. 상담은 이런 거예요. 당신한테 필요해요.’라고 영업사원처럼 떠들 일도 아니었다. 정말 몰라서 묻는다면 ‘전문가 패치’를 장착하고 미주알고주알 떠들겠지만, 그는 몰라서 질문한 게 아니었다. 그저 ‘냉소’였다. ‘내가 발버둥 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다 부질없어. 상담도 시간낭비야.’
냉소적인 사람에게는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아니, 대화 자체가 되지 않는다. 어떤 말을 해도 ‘다 소용없어!’ 한 마디면 끝나버리니까. ‘해봤는데 잘 안됐잖아. 이젠 끝이야. 되는 게 없어.’
절망 끝에 냉소가 있고, 냉소가 다시 절망을 부추긴다. 그래서 더 나빠진다. 나쁘다는 걸 알지만 멈춰지지도 않고. 냉소는 마음 구석구석을 사악하게 내리쬐어 버리니까. 희망이 자랄 땅이 메말라버릴 때까지.
그는 그동안 많이 노력하고 애썼을 거다. 편하게 쉬고 싶지만 그러지 않았을 거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어떻게든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겠지. 살기위해, 이루기 위해, 때로는 자존심을 다 내려놓고 누군가에게 굴욕을 당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노력에 배신당했을 때, 아무리 애를 써도 이룰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 냉소적으로 변한다. ‘어차피 안 돼, 안 된다고!’
냉소라는 건, 어쩌면 ‘부단히 애써온 내 마음이 심하게 토라진 상태’ 인지도 모른다. 세상에 대해 삐져버린 상태. ‘나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큰 욕심 부리는 것도 아니고, 그저 먹고 살자는 건데, 어떻게 날...’ 냉소가 ‘대놓고 토라진 마음’이라면, 우린 그 마음에게 어떻게 해줘야 할까?
어느 날 우리 아이가 토라졌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하고 슬쩍 물어본다. 아이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입만 삐죽. ‘장난감이 망가졌어? 엄마한테 화났어?’ 이것저것 예시를 들어도 속 시원히 말해주지 않고, 안아주려고 하면 온몸을 꽈배기처럼 뒤틀면서 툴툴 거린다. 밤고구마 백 개를 한 번에 먹은 듯 갑갑하지만, 이때는 일단 한 발 물러나야 한다. 어떤 방법도 소용이 없음을 알아버린 '냉소' 앞에서는 어떤 노력도 무시당하기 쉬우니까. 그냥 이렇게만 말한다. ‘엄마 여기 있을 테니까, 네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와. 엄마는 네가 왜 화났는지 궁금해. 엄마가 다 해결해주지 못할 수도 있지만 노력할거야.’
마음이 ‘냉소’로 가득할 때, 토라진 아이를 달래듯이 스스로 이렇게 말해줘야 한다. ‘나 여기 있을 테니까, 필요하면 언제든지 와. 다 해결되지 않을 수 있지만 노력할게. 널 위해서’
그렇게 말하면 ‘냉소’가 뭐라고 답할까? 대개는 끄떡도 안한다. 마음이 그렇게 쉽게 움직여지나, 어디. 마음이 대꾸를 안 한다고 포기하지 말고, 두 번, 세 번, 열 번쯤 얘기해준다. ‘나의 냉소는 나를 닮아서 고집이 세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계속 반복해서 얘기해줘야 한다.
이게 무슨 해결이냐, 그런 소극적인 방법으로 뭐가 되긴 하냐, 의심이 들겠지만, 마음이 세상을 향한 냉소로 가득 차 있을 때는 그 마음에 다가가려는 노력만으로도 충분하다. 오히려 서두르면 탈이 나니까. 힘내라고, 왜 그렇게 나약하냐고, 아직 세상에 기회는 있다고 설교하게 되면, 토라진 마음이 더 단단해진다. 답답하더라도 그냥 버텨주는 거,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거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기분이 '외롭지 않게' 함께 있어주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아참, 망연자실해서 상담실을 찾은 그가 어떻게 되었냐면, 상담한다고 뭐 달라지는 게 있겠냐는 말에 “선생님, 일단 안경부터 고쳐 쓰시죠.”라고 말했다. 그는 무의식중에 바로 안경을 추켜올렸고, 그 모습을 보고 안심했다. 안경을 고쳐 쓸 힘이 아직 남아 있으니까. 상담에 대한 희망도, 믿음도 없이 왔지만, 상담자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그는 그래도 괜찮아 보였다.
세상이 날린 어퍼컷을 맞고 정신이 아찔한 상태라 지금은 힘이 빠져있지만, 시간이 지나서 아찔한 기운이 사라지면 분명 알게 될 거다. 자신에게 아직 힘이 남아있음을.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