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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계현 Oct 22. 2021

카페에서 늘 앉는 자리를 빼앗겼다면

[심리상담 안내서] 예민함이 '문제'가 되지 않도록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6시간, 소소한 집안일을 해치우는 3시간을 빼고 나머지는 카페에서 글을 씁니다. 제가 원해서, 제 마음대로 하는 시간이지요. 어린아이를 돌보는 엄마에게는 정말 소중한 시간입니다. 하루 대부분이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니까요.


늘 가던 카페로 갑니다. 1층에서 주문을 하고, 커피를 받아 들고는 2층으로 향합니다. 2층 귀퉁이에 있는  ‘ㄱ’ 자 모양으로 되어 있는 자리를 좋아하거든요. 구석에 짐을 두기도 좋고 의자 밑에는 콘센트도 있지요. 자리가 널찍해서 양반다리로 앉아 글을 쓰는 제게는 최적입니다.


그런데 오늘, 그 자리에 누군가 앉아 있습니다. 잠시 길을 잃었습니다. 멈칫. 주변을 살펴보니 구석지고, 콘센트가 가깝고, 의자가 편한 자리는 이미 찼습니다. 남아 있는 자리는 가운데 자리, 작은 테이블 자리입니다. 가운데 자리에 앉으면 주변 소리가 신경 쓰이고, 작은 테이블 자리는 노트북을 놓기 불편해서 싫습니다.


내가 늘 앉는 자리에 누군가 앉아 있을 때, 괜히 기분이 안 좋습니다. 카페 자리를 전세 놓은 것도 아니면서, 원래부터 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뭔가 빼앗긴 기분이 듭니다. 예민함은 이럴  드러납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부터입니다.


예민하게 뭔가 건드려졌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1번, 남아 있는 자리 중에서 제일 나은 자리에 앉습니다. 테이블은 작지만 콘센트를 꼽을 수는 있습니다. 대신 노트북을 무릎에 올려놓든지, 커피를 빨리 마셔서 치워버리든지 해야겠습니다.


2번, 남아 있는 자리 중에서 제일 나은 자리에 앉지만, 뭔가 빼앗긴 기분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내일은 빨리 와야겠다’고 다짐합니다.


3번, 내가 늘 앉는 자리 맞은편에 앉습니다. 그 자리는 콘센트도 없고 자리도 좁습니다. 불편하지만 상대방을 야금야금 야리면서 불편하게 만들어야겠습니다. 저 사람이 자리를 뜨면 빨리 앉아야지요.


4번, 내가 늘 앉는 자리 맞은편에 앉아서, 친구와 시끄럽게 통화를 합니다. 재미있든 없든 신나게 웃어젖힙니다. ‘이 구역 미친년은 나다’ 정신으로 환호성도 지릅니다. ‘내 자리’에 앉은 그 사람을 훼방 놓으려는 거지요.


몇 번이 가장 친숙하신가요? 사실 전 네 가지 모두 해당됩니다. 마음이 편하고 안정되어 있을 때는 1번입니다. 주어진 상황을 빨리 받아들이고 적응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소심하게 우울해 있을 때는 2, 과하게 우울하거나 화풀이가 필요하면 3, 4번도 가능합니다(사실 4번은 상상으로만 해봤네요. 소심쟁이라).


정도 차이는 있지만, 예민함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마음에 뭔가 거슬려서 신경을 쓰는 거니까요.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예민함은 ‘문제’가 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예민함을 문제로 키우지 않으려면, 평상시 마음 상태가 중요하지요. 마음이 편하면 뭔가 거슬리는 상황에도 너그러워지거든요. 열 가지 보물 중에서  잃어버리고  가지만 남아도 감사하는 마음이 드는 거죠. 주어진 현실을 빨리 받아들이고 적응하려고 하니까요.


그럼 어떻게 살아야 마음이 편할까요?


세상 일이 다 내 마음 같지는 않은데 말이지요. 크게 생각하지 말고, 딱 하나부터 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뭐든 간에, 하는 순간 살아있는 느낌이 드는 , 숨구멍 하나만 만들어보는 거죠. 세상이 갑갑하게 돌아가도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 산소를 넣어줄 그런 구멍이요.


그런 숨구멍이 하나 있으면, 마음이 뾰족하다가도 금세 풀어집니다. 뾰족해졌다가 풀어졌다를 반복하면서 오히려 힘이 생기죠. 그러니 뾰족해지는 걸 겁내진 마세요. 그리고 숨구멍을 찾읍시다. 그래서 오늘도 전 글을 씁니다.


결국 3층 테라스로 나왔습니다. 북한산 찬 바람을 맞으면서 무릎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글을 썼습니다. 춥네요. 정신이 번쩍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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